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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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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얼 기자의 강진의 민담 다시보기- 48
백련사(白蓮寺) 8대국사

도암면 만덕산에 위치한 백련사(白蓮寺)는 원래 만덕사(萬德寺)로 불리었다고 한다. 백련사는 통일신라 문성왕 때 창건되었다. 무염국사(801-888)가 만덕산의 이름을 따서 만덕사(萬德寺)라 이름 지었다. 백련사라고 부르기 시작한 시기는 고려 의종 때부터 라고 한다. 당시 많은 승려들이 귀족불교에 대한 반발로 서민불교 운동을 일으켜 고려 불교계의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고자 했다. 서민불교 운동은 성전면 백운동 약사암에서 주석중이던 원묘국사가 1236년 백련결사문을 발표하고 백련결사운동을 주도했다고 한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이때부터 백련사(白蓮寺)라고 불리었다고 추정된다. 백련사는 고려 대에 승려들의 수선도장(修禪道場)으로써 수도승들이 많이 모였다. , 수도사찰 수준으로 권위가 있는 절이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로는 백련사의 연못과 관련한 이야기다. 지금은 동백 숲 오솔길을 가다보면 왼쪽에 인공으로 만든 연못이 있으나 전설에 의하면 원래는 요사체가 세워져 있는 자리에 연못이 자리했다고 한다. 고려 때 이 사찰에서 8대국사가 배출되었다. 그런데 국사가 배출 될 때마다 백련사 앞뜰에 있는 연못에서 흰 연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이 현상을 기이하게 보고 흰 연꽃의 이름을 따서 사찰을 백련사(白蓮寺)라 불렀다고 한다. 연못은 조선의 불교 탄압, 임진왜란, 정유재란, 한국전쟁 등 국가 위기 상황이 오면서 사찰이 쇠락하게 되면서 메워졌다. 이 메워진 연못터에 1950년대 말 요사체를 세웠다. 요사체는 대웅전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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