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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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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어온 길 윤재준 (주)선도소프트 사장 회고록 (28회)

내가걸어온 길 윤재준 (주)선도소프트 사장 회고록(28회)

4인 회사

다산 시스템은 1984년 5월 네 사람으로 출발했다.  사장인 나와 비서, 행정, 및 재무를 총괄하는 여직원과 판매, 교육, 및 기술 지원을 하는 두 사람이 회사 구성원이었다.  가난한 집에도 숫젓가락, 밥솥, 및 모든 살림살이가 필요하듯이 네 사람 회사인데도 회사로서의 각 기능이 필요했다.  네 사람 모두 어느 누구도 회사를 창립하거나 체계적으로 운영해 본 사람이 없었으므로 서류, 규정, 및 프로세스를 하나씩 만들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실수와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렇다고 비용을 지불하면서 컨설팅 회사에 맡길 형편도 못 되었다.  여직원도 경험이 없는 고교 출신 여자로서는 너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은 여직원의 업무가 서툴고 자주 바뀌기 때문에 서울 여상 취업 담당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졸업생을 부탁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에는 서울 여상은 국내에서 제일 우수한 여자 상고였기 때문이다.  취업 담당 교사는 몇 가지를 나에게 물었다.  여직원의 키, 외모, 및 출신지에 대해서 상관하느냐는 것이다.  내가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졸업생인데 마침 일년 정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보내 주겠다는 것이다.  며칠 후 면접을 해보니 강진 이웃인 해남 출신으로 키는 작지만 영리해 보여서 바로 채용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여직원이 입사 후 서류를 정리해 보니 5개월 동안에 다섯 명의 여사원이 갈리고 본인은 여섯 번째 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최소 일년은 채우고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다짐한 모양이다.  일년을 다짐했던 여직원은 그 동안 결혼하고 회사의 우여곡절 어려움을 25년째 나와 같이 하면서 지금은 비서 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창업 후 몇 개월이 지나 고향 인맥으로 도암면 계라리에 고향인 J 씨가 합류했다.  회사를 설립하면서 광주 큰집 매형에게 빌린 이천만 원은 금방 소진되었다.  그래서 J 씨가 회사 운영 담당 이사를 맡으면서 자금을 조달했다.  J 씨도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사업에 대한 판단은 뛰어났다.  내가 시작한 CAD/CAM 이 새로운 기술인데다 전망이 있는 사업으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J 씨의 자금도 주변 사람들에게서 빌린 사채였으므로 사채 이자를 지불해야 했다.  J 씨도 이 사업에 대한 매력 때문에 쉽게 뛰어 들었지만 회사 자금이 금방 바닥나고 채무자들에게 시달렸다.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 않기 때문에 J 씨 집에 와서 죽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광주 매형께서도 회사가 어려워지자 돈을 갚으라고 아침 저녁으로 독촉했다.  뿐만 아니라 광주 친형님에게서 동생의 빚을 대신 갚는다는 각서를 받아내서 교사인 형님을 졸라댄 모양이었다. 

 

마침 정부에서 벤처 캐피털 회사를 만들어서 기술과 사업 전망이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사람을 돕고 있는 중이었다.  벤처 캐피털 회사는 KTDC (Korea Technology Development Corporation) 였다.  KTDC 로부터 투자 자금을 얻어 쓰려고 거의 2년 동안 쫓아다녔지만 헛수고였다.  실무자가 전자 공학을 전공했는데도 CAD/CAM 과 그 전망을 잘 몰랐다.  회사가 3년째 되던 1986년에는 창원에 있는 금성사 공장으로부터 AutoCAD 75대를 주문 받았다.  하지만 자금이 없어 납품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CAD 와 그 전망을 알만한 사람을 찾아갔다.  내가 KIST 에서 근무할 때 실장이었던 이경서 박사였다.  이 박사는 부친께서 국제화재, 도큐 호텔, 및 아남 산업을 소유하고 계셨으므로 어느 정도 자금 여유가 있으신 분이다.  또한 서울 공대 기계 공학과에 다니다가 미국 유학을 갔으며 미국 MIT 에서 기계 공학 박사 학위 취득 후 귀국하여 KIST 및 ADD 등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박사는 CAD/CAM을 잘 아는 분이며 새로운 기술 산업이라고 판단되었는지 어렵지 않게 현금 투자와 KTDC 자금에 대해 보증을 해주셨다.  이렇게 해서 회사는 다시 돌아가게 되었지만 회사 소유권이 나에게서 아남 산업으로 옮겨졌다. 

 

선택과 후회

소유권이 아남 산업으로 바뀌자 임직원들의 태도가 금방 달라졌다.  세력의 변화를 실감 할 수 있었다.  집에서 쉬고 있는 서울 공대 후배인 이태식이를 전무로 두었는데 이 전무는 물론 재무 회계를 맡은 J 씨도 나보다는 아남에서 파견된 김 감사와 회사 일을 의논했다.  김 감사는 나에 비하면 구렁이였다.  실질적인 사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회사 생활도 어려웠지만 40 중반에 외지에 혼자 나와 있는 나의 개인 생활도 한심스러웠다.  가족은 미국에 있고 국내에 집이 없었으므로 하숙 생활을 했다.  그 때만 해도 오피스텔이 없던 시절이라 오히려 하숙이 편했다.  하숙은 방배동에서 시작해서 신당동, 동부이촌동으로 옮겨 다녔다.  하숙을 하다 보니 나처럼 하숙하고 다니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이 박사가 투자한지 3개월이 지나자 나는 권고 사직을 당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회사를 자기 스타일대로 운영하고 싶은데 내가 걸림돌이 된 모양이었다.  회사가 흑자 경영 상태에서 팔아 넘겼으면 나에게 남은 돈이 있었겠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투자자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나는 빈털터리였다.  겨우 회사 운영상 지게 된 나의 빚만 겨우 처리한 상태였다.  이 박사는 나를 쫓아내면서 미국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미국으로 간다면 1~2년 생활비를 보조해 주겠다는 것이다.  40대 중반 나이에 미국에 가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래서 다산시스템에 있는 내 주식을 인수하라고 떼를 썼다.  사실 다산을 그만 둔 상황에서 다산 시스템 주식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강요하듯이 주식 대금으로 6천만 원 가량을 받아냈다.  그때는 야박하다고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경서 박사의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되니 여러 가지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84년 귀국할 때 임기엽 박사는 스탠포드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건국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고창이 고향인데다 스탠포드 다닐 때 나이가 제일 많았으므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이런 인연으로 임교수는 나에게 학교 자리를 권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대학 교수가 된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우선 교수 수입이 많지 않았다.  미국 Florida Atlantic University 에서 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는 동생 윤기향 교수를 보면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경제적으로 항상 쪼들렸다.  대학 교수는 연구에 재미를 느끼고 사는 생활이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직업은 못 된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강의실에 앉아 학생들과 씨름하는 생활이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가치관에는 변함이 없다. 

 

그 때는 시스템 개념과 방법에 대한 접근이 초창기였기 때문에 이 분야 전공자들을 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진 허진규 회장께서 일찍 이 분야에 눈을 뜨시고 시스템 설계 관리에 대한 조직을 구성하고 계셨다.  비슷한 사업이 몇몇 대기업에서도 시작되는 중이었다.  귀국 후 며칠 되지 않아 이런 연유로 금성계전의 최선래 사장에게 남산에 있는 중국집에서 저녁 대접을 받았다.  최사장님으로부터 입사 제의가 있었으나 거절했다.  사실 대기업 임원으로 있다가 50대 중반쯤 해서 물러나면 자기 사업하기도 늦고 다른 취업하기도 힘들다고 생각했다.  우선 대기업 생활이 자신이 없었다.  이러한 모든 기회를 버리고 내 자신의 사업의 길로 들어섰는데 그 길이 어려웠다. 자금과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지만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결정해서 나아가는 길에 대해 한번도 후회해 본적은 없다.  원래 후회를 하지 않는 성격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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