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79회)
군동면 시목마을
강남윤할머니(95)
“말도 못허게 미워, 그란디 누구든지 돌아다니다가 본 각시한테로 와서 죽드만.”
강할머니는 대구면 산동에서 태어나 10살에 부모를 따라 군동 관덕으로 이사하여 살다가 18살에 결혼했다. 시목마을로 시집온 강할머니는 시집온 날부터 순탄치 못한 시집살이를 시작했다. 시집에는 홀시어머니에 시아제 한명과 시누이 둘이 있었다. 장남이었던 남편은 한 살 위였지만 무뚝뚝하고 무섭기만 했다. 첫날 남편의 손을 보니 한 쪽 손이 잘리고 없었다. 그 모습이 소름이 끼쳤던 강할머니는 물러나 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시집이라고 보낸 곳이 가난한 홀시어머니에 오른손마저 잘리고 없는 신랑이라니, 이처럼 속여서 시집을 보내다니, 중매쟁이와 친정식구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날 도무지 앞날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시집온게 시어머니가 아랫방 구들장을 깨불어. 생전 시어머니와 자고 살었제.”
시어머니는 다음날 아들과 며느리가 따로 잘 수 있는 아랫방 구들장을 깨버리고는 한방에서 자게끔 했다. 방 한칸에서 시어머니와 동생들까지 함께 살아야 했던 것이다.
“남 인정도 사정도 없어, 생전 가슴이 두근두근허고 살었제.”
첫날 남편의 손을 보고 놀란 강할머니는 남편에게 정이 들지 않았다. 그 손이 몸에 닿는다는 생각을 하면 무섭고 소름이 끼쳤다. 그나마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도 아니었으니 없는 정이 생길일은 만무했다. 남편은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낫으로 손을 베었다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그 손보고는 정이 떨어지더만, 밥차려주고 얼른 내빼불고 생전 넘보듯이 했어.”
그런 며느리의 행동을 눈치를 챘는지는 몰라도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하는 것 마다 미워했다. 한번도 입에 좋은 소리를 담아내는 것을 본 적이 없던 시어머니였다. 강할머니는 동네 베는 모두 맡아서 할 정도로 밤낮으로 일을 하며 힘든 시집살이를 일로 잊으려 애썼다. 결국 참다 견디지 못해 보따리를 싸들고 친정으로 찾아갔으나 친정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전에 텔레비서 본게 꼭 나 같은 사람나오더만······.‘
친정에서는 남부끄럽다며 어서 돌아가라고만 했다. 그래도 참다못해 다시 보따리를 싸들고 가지만, 언제나 도로 마찬가지였다. 죽지 못해 힘겨운 발걸음을 돌려 한발한발 시집을 향해 걸어오지만 어떻게 걸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남편은 아들이 세 살이 되었을 때 만주로 떠났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세월을 보내던 남편이었기에 어디로 가거나 말거나 이미 남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7년 후 돌아온 남편은 별 달라진 것이 없이 계속 밖으로만 나돌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떤 섬에서 따로 살림을 차리고는 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래도 여자는 안미워, 남자가 밉제. 여자? 어찌게 생겼기는 사람같이 생겼지.”
강할머니는 평생을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면서 아이처럼 웃는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면 죽음 외에 갈 곳이 없었던 할머니들의 모진 삶이 강할머니의 주름진 입가의 웃음에서 엿보인다. 삶을 초월한 웃음일까.
남편이 데려온 여자는 한동안 집에서 같이 살았다. 그러다가 다시 섬으로 들어가더니, 남편은 몇 년이 지난 후 아들을 하나 데리고 나왔다. 알고 보니 함께 살았던 여자가 낳은 아이도 아니고 옆에 살던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다.
“그 애를 중학교때도 데리고 왔는디, 지가 그냥 도로 가불더만. 근디 그 아들이 지금도 찾아옴서 어매라고 부르고 잘해요.”
평생을 시어머니와 한방에서 살아왔지만, 도란도란 말을 나누어 보지 못하고 살았다는 강할머니다. 시어머니도 83세까지 살았으니 오랜 세월을 시어머니와 한방 거처를 하며 살았다.
“그러면 그런갑다. 저러면 저런갑다. 그렇게 살지. 시방 사람은 하루도 안살고 내빼불어.”
남편은 평생을 바깥으로만 나돌았다. 어쩌다가 아들 하나를 두었지만, 그 뒤로는 남남으로 살다시피 살아온 것이다. 결혼식은 올렸지만 정담어린 말 한마디 몸짓한번 나누어 본적이 없는 남편은 어느 날 집에 돌아오더니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말도 못허게 미워, 그란디 누구든지 돌아다니다가 본 각시한테로 와서 죽드만.”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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