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80회)
칠량면 현천마을
위복례(83)할머니
“나를 안 데려가는 영감이 미웁소”
“일제 때 공출간다고 열일곱살 먹던 해 3월에 시집왔어요.”
위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가 여운대로 살았다고 말하면서도, 그런대로 편하게 살았다고도 했다.
“나는 그냥 우습게 살었어요.”
편하게 살았다고 하면서도 우습게 살았다고 하는 말이 바로 이어져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시집와서 얼마 후 재금을 나갈 때에도 논 몇 마지기와 함께 넉넉한 세간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부지런한 위할머니는 베짜는 솜씨가 남달라서 베를 팔아서 논·밭을 늘려갔다.
“해마다 베를 팔아서 논을 사고 까끔도 사서, 그냥 부자가 되어가더만.”
명지베, 모시베, 미영베를 많이도 짰지만, 그 일로 살림이 늘어나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재미가 있었다. 결혼하자마자 일본으로 징용을 떠난 남편은 4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남편이 돈이라도 벌어왔느냐고 무었더니 위할머니는 정색을 한다.
“아, 지랄이요. 살아서 온 것만도 다행이제. 애기도 안 생기고 그냥 가부렀어요. 안죽고 온게 반갑기도 허제.”
이장일을 여러 해 맡아했던 남편은 마을일과 집안일도 잘 꾸려 나가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항상 신사차림으로 면 출입을 많이 하는 남편이었지만, 아내에게는 자상하고 인정도 많았다. 2남2녀를 두었지만, 두 번의 조산으로 실패를 하고 둔 아이들이어서 남편은 아이들을 끔찍하게 생각했고, 아내를 대할 때도 마치 아이를 대하듯이 했다. 아직도 순박하기 그지없는 표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위할머니다. 윗어른과 남편을 대할 때는 항시 조심하는 마음으로 대하며 행동했다는 위할머니를 시어머니는 이뻐 하였고 칭찬을 하였다. 그러던 남편이 5년 동안 병치레를 하고 47살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5년 동안 병원을 오가는 동안 살림은 하나둘 없어졌다.
“애기들도 고생했어요. 우리 큰 아들이 포도시 방하나 부엌하나 짓어 놓고는 군대 갔어요,”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논밭은 물론이고 집까지도 없어졌으니, 그야말로 살길이 막막한 처지가 되었다. 위할머니가 지치고 힘든 때 찾았던 성모마리아상이 서랍장 위에 있고, 벽에는 성당에서 영세를 받던 날 기념사진과 가족사진들 손주들 사진이 줄줄이 걸려있다.
“아조 살림을 다 없애 불고 그랑게, 어서 돌아가시면 쓰겄다고 말이 들린디 그때는 안좋습디다. 그런디 나중 생각헌게 그 소리가 맞더만요.”
좌골신경통이라는 병으로 두 다리를 점점 못쓰게 된 남편은 먹지도 못하고 뼈만 앙상하게 남더니 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내가 복이 없고, 너그도 복 없응게 아부지가 그러고 빨리 돌아가셔 부렀다고. 애들한테 말했어요.”
모든 것을 잃은 슬픔이 있었지만, 아이들과 살아야 했기에 다시 일어나 일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경운기 사고로 손을 다쳤다. 경운기 머리를 돌리다가 오른손을 쳐서 검지손가락 절반이 잘린 상태로 의료원으로 갔다. 병원치료에도 검지손가락은 자꾸만 썩어 들어가며 낫지 않았다. 그러다가 버스 터미널에서 만난 아저씨 한분이 손가락을 보고서는 지렁이를 잡아 으깨어서 붙이라고 일러주었다.
“지렁이를 잡아 찍어서 붙였더니 계속 썩어 들어가다가 벗겨짐서 아물더만요.”
위할머니는 요즘 그 오른손이 무척 시려워서 고통스럽다.
“이런적이 없었는디 며칠 전부터 밥이 안 넘어가고 온몸이 말도 못허게 쑤시고 저리고 아파요. 그런디 요 손이 더 시려워서 힘들고만요.”
위할머니의 손이 매우 아파 보였다.
“누가 장애인인가 뭔가 허라고 헌디, 알아야 허지요.”
위할머니가 딸이 보내왔다는 귤을 한사코 내오셨다.
“어매 우리 딸 같이 잘 헌 딸 없소. 그런디 무던히 몸이 아프면 딸한테 전화해서 신경질내요. 확실히 딸은 있어야 쓰겄습디다.”
몸이 너무 아픈데도 어서 안 데려가는 영감을 원망도 하는 위할머니다.
“이녘 식구가 데려간다고 허더만, 어찌 우리 영감은 안 데려간가 모르겄소. 아따, 인자 영감이 미웁소 미워.”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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