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舊迎新 하는 心想
박 양 배 (수필가)
일년이라는 세월이 가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게 된다. 연말연시는 송구영신의 생각으로 살아온 한 해를 다사다난의 해로 생각하고, 다사다망의 해로 살아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보내는 해를 위한 행사로 忘年會를 갖게되면 무엇인가 시글버글한 느낌을 받지만 오는 해를 위한 望年會를 생각하면 꿈꾸는 새 해를 설계한 조용한 생각이 든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밤이 되면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는 대 그믐밤을 장식하는데 듣는 순간 일년의 세월이 얼씬하면 가고 온다는 생각에 젖어 인생이란 세월의 강물에 이는 세파를 헤치면서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떠나는 항해의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종착역을 향해 혼자 호젓이 떠나는 길손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끔 젖어든 짓은 노년을 맞는 탓인가 싶다.
일년이라는 기간을 따지고 보면 종착과 시발의 순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 별개의 시간처럼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한 획을 그은 연장의 순간에 불과함을 알게된다. 제석의 종은 백팔번뇌를 없앤다는 뜻으로 백팔번을 치는 사찰의 종도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듣는 제야의 종소리는 각자 나름대로 삶을 가꾸었던 이에게 한 해를 보내면서 반성을 하고 고통을 잊음과 동시에 힘차게 내 딛는 새로운 해에 희망을 불어 넣어준 마음속의 각오를 갖게 해 준다.
우리가 듣는 종성도 여러 가지를 들을 수 있다. 흔히 두부장수들이 왔음을 알리려고 흔드는 손 종이 있고, 지난날에는 미화원들이 수레를 끌어 쓰레기를 처리하라고 울려주는 손 종소리는 재촉하는 느낌을 주었다. 종소리를 생각하면 인생에 기억되는 것은 나무망치나 쇠방울을 통해 울리는 학교 종은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학생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싫증이 나는 소리가 아닌가 싶다.
지난날에는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가까워진 연말연시에는 어른들과 친구간에 주고받는 인사장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면서 그 동안의 안부를 묻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기원했던 것이 비록 하나의 형식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세모와 연초에 연례행사처럼 해왔던 것이 지금와서 너무 변해버린 문안인사를 보고 정이 너무 번해버렸음을 생각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또한 세밑에 들려온 소리들이 나이가 변함에 따라 받아들인 느낌이 달라진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송년호에서 마지막 묵은해의 중요뉴스와 사건들을 읽어보면 분명 들었던 일이지만 새삼스러운 것은 나이를 잊고 살면서 일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몸소 틀어놓은 둥지인 공간을 새로운 곳으로 자리하기 위한 바쁜 몸부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들이 듣도록 울리는 종소리가 새벽녘인 서종이면 세상의 생물들이 잠을 깨어서 시작하는 하루를 계획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함을 알리는 무언의 지시로 본다면 세밑의 자정에 들려온 소리를 반성을 통한 발전을 다짐하자는 새로운 새해의 출발 신호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내 자신은 물론 내 가정 그리고 이웃과 국가들이 금년에는 보다 행복지수가 놓아져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세상이 기약되거나 서광이 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꾸어본다.
그러나 제야의 종성을 들으면서 생각난 것이 있다. 교수신문이 매년 말에 조사한 금년도의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사자성어를 응답자의 43%가 선택한 것이 조선중기 유학자인 이율곡 선생이 동호문답에서 군자와 소인을 가려내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제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형태로 보인다는 뜻을 지닌다고 말 한데서 비롯된 뜻으로 일을 순리대로 하지 못하고 억지로 하거나 바른길을 좇아 순탄하게 못한다는 뜻인 방기곡경(蒡岐曲逕)을 선택한 것을 보거나 전경련이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도 응답자의 87% 이상이 우리사회가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는 실정으로 사회 갈등이 심각하다고 반응 한 것을 보면 우리의 우선과제가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있다.
우리사회가 이렇게 갈등의 환경 속에서 살아 가야하는 근본원인을 찾아보고 해소를 위한 노력은 정치적인 이념 갈등이 첫째로 꼽힌다.
우리 어릴 때부터 일상생활에서 가치관 교육을 통해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의식을 배제해야 하고 작은 이익에 욕심을 갖기보다는 의리를 생각할 줄 아는 이른바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사고를 습관화 시켜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 일어날 것이다.
제야의 종소리는 분명 한 해의 끝이면서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이중성격(二重性格)을 지닌 이 종은 하나의 수단으로 두 가지의 효과를 동시에 내는 이른바 이중효과의 종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새해에는 간절히 바라건대 가정을 위시로 지역사회는 물론 국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좀더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모든 일이 충분한 토의와 합의를 통해 말 없는 가운데 마음과 마음의 뜻이 서로 통한 이른바 심심상인(心心相印)하는 공동사회가 형성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싶다.
묵은해를 보내면서 국가의 중대사건을 간추려 살펴보면 좋은 일보다는 궂은 일들이 많은 것을 곧 알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국태민안을 희미한 꿈으로 꾸었지만 연말을 당하여 살펴보면 여전히 같은 길을 되풀이하고 말았음을 지각했을 때 실망의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슴아픈 일은 지역, 종교, 종파, 세대, 정당, 종파간의 반목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들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속에서 한 끼가 어려운 이웃이 있음을 국정에 참여한 정치인들이 무슨 일에 욕을 톡톡히 당하여 다시는 아니할 만큼 정신을 차리게 되는 이른바 정 다시다의 기회가 오면 국민은 행복에 젖게 될 것이다.
새해를 맞아 내 자신부터 현재의 위치에서 지난 일년의 세월을 어떻게 활용하여 보냈느냐를 생각해 보고 일방통행으로 지시 명령보다 쌍방통행으로 서로 뜻을 아우러지는 길로 나서는 해로 희망과 행복을 다지는 2010년이 기약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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