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85회)
군동면 금강리
오운재(82)할아버지
‘일 안풀린 때 한바탕 웃어버리면 다 해결되지요’
오운재 할아버지는 매주 월요일 아침 강진읍 수성당으로 향한다. 지역 어르신들의 모임터인 수성당 월요일 당번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공무원 생활을 한 때문인지 지금도 정장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예전 출근하던 그 모습 그대로 하나도 변함이 없다.
“옛 일을 어찌 다 기억해요. 다 잊어버렸어요.”
스무 살부터 군동면사무소에 근무했으니 이름만 말하면 어느 집안인지 누구아들인지 금방 알아낼 정도로 꿰고 알아보았다는 오할아버지는 81년도 군동면장으로 퇴직하기까지 지역주민들을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해왔지만 딱 한마디로 대신한다.
“그때에는 전부 손으로 수작업을 했던 시절이지요.”
그리고 60년도에는 새마을 사업으로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고 마을 앞과 안길을 시멘트로 포장하고 농로를 개선하는 일들이 기억이 남는다는 오할아버지는 주민들의 삶이 가난에서 조금씩 벗어나던 그 시절 힘들었지만 이마을 저마을이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하며 빙그레 웃는 웃음으로 옛이야기 대신했다.
그러자 말 수가 없는 오할아버지 대신 옆에 앉아 계시던 김정진(88)할아버지가 말문을 여신다.
“이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이유 두 가지가 있어요. 내가 말해주게요.”
80년도에 ‘에그네스’라는 큰 태풍으로 인해 물난리가 났을 때 있었던 일화였다. 태풍으로 인해 탐진강 재방이 터졌고 그 아랫마을들이 전부 침수되고 말았다. 갑작스런 수해로 물바다를 이룬 마을에서 미처 짐을 챙기지도 못한 체 주민들은 빠져나와야 했고, 빨리 피신하지 못한 사람들은 지붕 위나 나무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주민들이 거의 빠져나왔다고 생각했으나, 명암마을 정씨 집에서 막 아이를 출산한 산모와 아이가 남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면장이었던 오할아버지는 급히 군으로 헬리콥터를 요청했다. 다행히 헬리콥터가 출동하였고 산모와 간난아이가 무사히 구출되었던 것이다.
“아이의 부모가 아이 이름을 지어달라고 해서 홍미라 지어주었어요. 홍수 때 난 아이라는 뜻을 담았지요.”
그 아이가 잘 자라서 도 교육청에 근무한다고 하더라며 밝게 웃는 오할아버지는 아이의 부모가 수해 이후 해남 남창으로 이주하여 식당을 잘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러자 김정진 할아버지가 말을 계속 이었다.
“이 사람 덕분에 남창 가서 잘 먹고 왔어요. 시원찮고 흐지부지한 면장 같으면 헬레콥터 요청해도 안와요. 똑똑한 면장이 한게로 군에서 얼른 헬리콥터 보낸거여요.”
아이의 부모는 이후 해남 남창으로 이주를 했다. 그런데 오할아버지와 친구들 친목모임 때 해남 남창으로 가던 길에 우연히 그 식당에 들렀다가 아이의 부모가 오할아버지를 알아보고 함께 간 모두가 큰 대접을 받았던 일화였다.
“그러니까 ‘생명의 은인’이라고 언제든지 대접한다고 오라한디, 코가 비툴어지게 대접을 할텐디 저 사람이 혼자만 댕긴가 통 안 데리고 가네요.”
김정진 할아버지가 우스개 농담을 하면서 두 번째 이유를 꺼내신다.
“아, 또 이사람 웃음이 만냥짜리에요. 일이 잘 안 풀릴 때 저렇게 한번 웃어버리면 다 해결되아요.”
김정진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웃음은 한마디로 ‘귄 있는 웃음’이다는 것이다. 면장시절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고개 설레설레 흔들면서 ‘몰라’ 하고 웃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것인데, 그만큼 훌륭한 인품임을 모두가 인정했다는 말씀이셨다. 또 한 가지는 북을 잘 쳐서 인근 기생들한테 인기가 좋았다는데, 다시 김정진 할아버지 말씀.
“이것은 참고로 애긴데요. 이쁜 기생들한테 인기가 좋아요. 북을 잘 치거든. 이쁜 기생들 볼라고 북을 배워서 북을 잘 친 거여요. 강진에서만 친 것이 아니라 이웃에 원정 다니면서 북을 쳐요. 혼자만 댕긴 것이 아니라 옆에 사람까지 바람 넣어서 같이 댕겼어요. 허허허.”
창을 하는 사람보다도 오히려 고수가 분위기 조성을 잘해야 청중이 즐겁고 재밌다는 것인데, 고수를 잘해서 창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는 말씀이셨다. 그러니까 오할아버지가 고수로 인기가 있었던 것은 창을 하는 사람의 장단에 잘 맞추면서 얼쑤, 좋다 등의 추임새를 잘 넣어 소리를 신명나게 이끄는 기술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만큼 분위기 조성을 잘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오할아버지는 83년도부터 신전면 영동농장 간척지 70만평을 농지로 전환하던 때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할 때까지 10년간 영동농장의 책임자로 간척지논 조성을 돕기도 했다.
“여담인데요. 김용복회장이 안목이 100배 밝은 사람이라, 오면장을 선택하여 제대로 일을 한것인에요.”
김정진 할아버지의 말씀이시다.
오운재 할아버지는 군동면 금강리에서 18살 동갑 때 결혼한 윤은순(82)할머니와 오순도순 살고 계시며, 자녀는 4남2녀를 두셨고, 문화원 부원장을 지냈으며, 서예 입선을 하기도 했으며, 강진문화원에서 연묵회 회장을 10년간 해오셨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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