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영랑시문학상 수상소감(본상)(일부만 발췌하여 싣습니다. 편집자주)
모란꽃이 내게 의미하는 것
― 하하하
또 웃었다
꽃과 별이로구나!
김지하(시인)
얼마 전 일이다.
이미 칠십이 넘은, 공부도 많이 한 한 여성이 어느 자리에선가 내게 갑자기 물어왔다.
“고향이 어디시드라.”
“전라남도 목포올시다.”
“개천에서 용 났군!”
허허허.
아직도 이렇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또 웃었다.
‘그 양반 아직 철이 덜 들었군.’
후천개벽 이야기다. 동학의 후천개벽을 『정역(正易)』에서는 특히 ‘기위친정(己位親政)’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기위친정’이란 ‘밑바닥이 임금 자리에 되돌아옴’을 뜻한다. 그래서 재작년 시청 앞 첫 촛불(4월 29일에서 6월 9일까지의 여성, 어린이, 쓸쓸한 대중 중심의 평화 시위)을 나는 특히 주목하여 ‘후천화엄개벽’이라 불러온 것이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26만 명이 한꺼번에 죽은 대해일의 근본 원인이 바로 삼천 년 동안 서남북쪽 ‘기위(己位) 방향으로’ 기울었던 지구 자전축이 본래의 우주 중심 위치인 지구 북극 태음의 물 쪽으로 되돌아오는 대이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십일일언(十一一言)’이라고 하여 지금껏 수천 년 동안 동서양 어느 곳에서도 밑바닥ㆍ꼴찌 취급만 받아오던 여성, 어린이, 비실비실 노인 등 쓸쓸한 대중들이 문득 정치 전면에 올연히 나선다는 『정역(正易)』의 예언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양반이 제대로 알고 나서 한 말은 아닐까?’
나는 뒤이어 버스 안에서 이렇게 생각을 고쳐먹으며 마음깃을 여미기까지 했다.
과연 그럴까?
그런데 지금 또 그 사태다.
우아하고 아름답기로 한국 근대문학에서 제일인 그 영랑시문학상이 그야말로 추접하기로 이름난 김지하 문학, 그것도 ‘촛불’ 언저리의 밑바닥 시집에 불과한 『못난 시들』에게 주어지다니!
허허허.
그래서 지금 내가 자꾸 웃는 것이다.
김영랑의 모란꽃이 거기 관련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모란꽃이 곧 ‘산알’의 상징인 것이다.
왜?
인구에 회자돼 온 영랑의 모란꽃,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열두 구절이 곧 시들어 버린 민족문화의 생환(生還), 옛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와 오운육기(五運六氣)의 원형인 신기론(神氣論)의 그 오랜 선인(仙人) 사상, 그리하여 생명ㆍ평화의 첫 샘물인 묘연(妙衍)과 수왕(水王) 사상의 찬란한 생활을 기다림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한다.
‘산알’의 복승(復勝), ‘다시 살아옴’을 내내 기다림이었던 것이다. ‘산알’은 마치 부처님의 ‘사리’와 같은 ‘원만한 생명의 영(靈)’을 말한다.
‘모란꽃’이 바로 그것이다.
첫 구절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마지막 구절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그 ‘산알’의 봄이 왜 슬픔일까?
하하하.
또 웃었다. 그러나 이번엔 ‘허’가 아닌 ‘하’다.
왜?
‘허’는 음(陰)이고 ‘하’는 ‘양(陽)’이다.
‘흰 그늘’ 이야기다.
봄이 슬픔인 것은 모란꽃이 흰 그늘이어서다.
슬프고 아픈 이에게 봄인 것이 곧 산알 아닌가!
조선의 신령한 생명사상, 생명과학, 생명의 문화와 예술은 모란꽃 같은 산알, 즉 ‘흰 그늘’이다. 그래서 후천개벽의 성배(聖杯)가 되고 ‘밑바닥이 임금 자리로 되돌아옴’인 것이다.
아!
이제 알겠다.
개천에서 용이 나고
‘못난 시들’에게 모란꽃의 그 예쁘고 잘남을 선물한 전라도와 강진과 시와시학의 거룩한 뜻을!
다시 말한다.
산알은 바로 모란꽃이다.
슬픔의 봄!
한반도의 똥구멍이요 꽁무니요 사타구니인 하당의 그 시커먼 회음에서 북극태음의 물을 개벽적으로 흔들어 기위친정(己位親政)의 화백(和白)과 호혜시장(互惠市場)의 신시(神市)와 함께, 전 인류와 중생해방의 흰그늘의 아시안 네오ㆍ르네상스 및 모심의 세계 문화 대혁명을 꽃피울 ‘화당리 솟례’에 이은, 여성 특유의 그 풍류(風流)가 싱싱하고 원만한 산알의 형태로 솟아오르는 것 아닌가!
글이 다 끝난 뒤 우주와 생명에 밝은 한 남도 출신 예술가로부터 희한한 두 마디를 듣는다.
김영랑 시인 고향인 강진(康津)은 ‘화수혈(花水穴)’이란 꽃피는 물자리라고 다산이 말한 바 있고, 스톡홀름 상공은 예부터 북두칠성이 강렬한 자장(磁場)으로 소문난 곳이라 그런 생명의 별 같은 산알이 갑자기 생각난 것 아닌가라는.
하하하.
또 웃었다.
꽃과 별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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