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이네 집
김명희(수필가·모란촌문학동인회 사무국장)
내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 우리 마을에서 제일 가난한 집이 바로 한옥이네였다. 한옥이 엄마는 아들이 마실을 가면 절대로 그 집에서 잠을 못 자게 했다. 이유인즉 저녁에 자다가 오줌을 누면 그걸 받아뒀다가 감자밭에 거름을 하기 때문에 이웃집에 잠을 자고 오는 날은 거름이 그만큼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우리 형제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한옥이네 아이들은 흙 밭에서 흙 집어 먹고 딩굴딩굴 살아도 살만 통통하게 찌고 아프지도 않더란 핀잔을 듣곤 했다. 한옥이 엄마는 겨울이 채 다가기 전에 겨우살이 식량이 떨어져 어머니께 옹둥이에 보리쌀이나 쌀을 봄에 일해주기로 하고 가져가는 것을 늘 보았다. 가끔씩 아버지는 한옥이 집에 먹을 것을 좀 보내라고 하며 넉넉한 식량을 건네주셨다. 아버지의 후덕한 마음은 그에 그치지 않고 떠돌이 장사꾼이나 동네 손님이 오면 사랑방을 통째로 내주시고 며칠씩 묵어가게 하기도 했었다. 그런 반면 가을이면 콩을 치거나 팥 같은 걸 거두고 나서는 형제들에게 그릇 하나씩 나눠주면서 온 마당에 튕겨나간 낟알들을 줍게 하신 알뜰한 양반이기도 하셨다.
한옥이네는 일반 가정과 다른 이상한 광경이 있다. 다 쓰러져간 오막살이 초가집이 산 밑에 있었는데 허름하기 그지없는 그 집은 ‘ㄱ’ 자형 부엌 한 칸에 방이 세 칸이었다. 그 작은 집에서 할아버지도 큰마누라 작은마누라를 보고 한옥이 아버지도 큰마누라 작은 마누라를 보았으니 부자가 내리 처첩, 한 집에서 살고 있는 셈이었다.
먹이 찾는 쥐가 가래톳 설 만큼 궁핍한 형편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식솔들이 살았는지 어른이 되어 지금 생각해보니 아리송하기 만하다. 한옥이 엄마는 불결하기까지 했다. 말을 할 때마다 침이 튀어나오고 입가에 노상 묻어있는 하얀 거품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한옥이네는 생활이 더 어려워져서 살길 찾아보고자 서울로 이사를 했고 그렇게 한옥이네는 우리 식구들에게 잊혀 갔다. 그리고 몇 십 년이 지난 후, 낯모른 청년이 우리 아버지를 찾아 와 공손히 절을 했다. 누구인가 묻는 아버지를 향해 우리가 배고플 때 쌀 주고 보리쌀 주신 걸 면목 없이 받아먹은 ‘해남 양반’ 아들인 한옥이라는 소개와 몇 번이고 머리 숙여 감사를 전했다그리곤 팔목에 시계를 풀어 아버지께 채워 주면서 고생한 만큼 이제는 서울에서 이렇게 잘 살고 있다면서 한 번은 꼭 고향을 찾아와 인사드리고 싶어 왔노라고 옛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또 감사하며 두둑한 봉투도 하나 챙겨주고 갔었단다. 어릴 때부터 두 눈이 부리부리하고 야무지게 생겨 ‘뚱굴이’란 별명을 가진 한옥이는 그 집 아이들 중 한가락 하게 생겼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더니 과연 인물값을 하는가보다.
그 뚱굴이가 풀어 채워준 시계를 차고 아버지께서 면사무소에 일을 보러 가셨는데 “어르신 그 시계 누가 사다 줬어요? 아주 비싸고 좋은 시곈데요? 동생이 서울에서 성공했다더니 동생이 보낸 건가요, 어르신 아드님이 해주신 건가요?”
하고 물어 아버지는 비로소 그 시계의 진가를 아셨단다.
누구나 가난하고 남의 눈총을 받고 살았던 어려웠던 과거사를 돌아보고 싶지 않았으련만 그 정을 잊지 못해 찾아 온 한옥이. 그 갸륵한 마음이 애잔하고 기특했다는 우리 아버지의 회상이셨다.
한옥이는 착하고 공부도 잘했지만 초등학교만 나오고 진학을 못해 울 아버지의 소개로 광주에서 큰 그릇 가게를 하던 우리 고모네에서 점원 생활을 했다. 성품이 워낙에 착하고 성실해서 고모 내외분을 비롯해 상가 사람들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좋은 품성으로 성장했단다.
몇 년 전 고향 모임을 계기로 서울에 갔었다. 거기서 생판 모르는 40대 남자가 나한테 ‘누나!’라고 반갑게 부르면서 손을 덥석 잡았다. 누나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은 여기서도 잘 듣고 있었단다. 깜짝 놀라며 누굴까 한참 쳐다보는데
“나 모르것소? 나 한옥이요.”
“우모매~! 나는 전혀 몰라 보것네.”
이런저런 옛 기억을 더듬던 중 조금씩 옛 모습이 보였다. 아이구 그 착하디 착했던 눈이 큰 그 머시매가 아닌가!
열서너살 때인가? 계면쩍게 웃으며 다가오던 순한 얼굴의 머스매.
“나 누나한테 누나라고 하면 안 되것어요?”
“내가 손 위니까 당연히 누나지 뭐냐?”
“그래도 누나한테 허락받고 누나라고 하고 싶어.”
어린 나이에도 이렇게 진중하기까지 했던 한옥이는 나염 공장 공장장에 이어 이제는 영업 부장으로 승진이 되었단다. 가난에 찌들었던 그 창백한 촌 머스마가 매끈한 서울 중년 신사가 되어 반가운 만남을 하고보니 옛날의 그 시간들이 선명하게 스쳐간다.
소풍가는 날이면 엄마는 오징어를 잘게 잘라 기름에 튀겨 설탕과 엿을 발라 깨를 많이 뿌려 달고 고소하게 군침이 돌만큼 맛나게 만들어주셨다. 거기에 포인트로 계란 지단까지 부쳐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특별하게 예쁜 도시락 이었다. 그 특별메뉴 맛있는 도시락을 어떻게 아껴먹을까 궁리하느라 나도 아직 손대지 않았는데, 동변상련이었는지 친구였던 가난한 집 딸 정애가 내 특별 반찬을 집어다 꼭 한옥이를 먼저 주곤 했다. 어린 마음에 속이 상했지만 단 한 번도 내색을 못하고 당하고만 지냈던 일이 생각나 살포시 웃음이 났다. 한옥이와 묵은 담소를 나누면서 스치는 이런저런 옛 필름 중 가장 선명한 화면이다.
한옥이와 나의 묵은 이야기 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시는 온화했던 우리 아버지도 이제 저 먼 곳으로 가시고,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나이의 우리는 아름다운 옛 추억을 끊임없이 나눠가졌다. 이제는 다시 갈 수도 없고 잊고 살다가 가끔씩만 꺼내 회상하던 내 어린 시절과 고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전경이 아스라한 행복을 가져다 줬다. 시간이 다 되어 이제 헤어져야할 때, 우리들의 이야기로 추억들이 가득 어려 있는 그 자리를 뜨기가 너무도 아쉽고 또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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