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열두 살 소녀의 증언
김 동 심
한국문협,광주문협,
모란촌 문학동인회원
‘나주부대 민간인 35명 처형’이란 제목의 조간신문을 읽었다.
6.25전쟁, 나주부대 다 잊은 듯 살아가지만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아릿한 전쟁의 기억은 시뻘건 강물이 되어 가슴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사람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스러지는 것이 예사였다. 논둑밭둑에 사람시체가 널브러져있었고 사람을 개 끌듯이 끌고 다녔다. 돌멩이를 던지고 몽둥이로 때렸다. 장터에서는 목을 메달아 구경을 시켰다. 내 고종 사촌 언니는 경찰부인이란 죄로 대창으로 찔러 죽였다.
서로 사는 곳이 다르고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족끼리 소름끼치는 살상행위를 무참히 저질은 것이 한국전쟁이었다.
초등학교 오학년 여름 전쟁이 났다. 우리가족은 친척이 살고 있는 바닷가 내사리 마을로 피난 갔었다. 아버지를 본 마을 사람들은 ‘저 양반 식구는 오십 명이나 된다.’고 말할 정도로 대가족이었다. 많은 가솔과 함께 피난살이하기도 힘들었다.
인민군은 들어오지도 않고 읍내는 조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우리가족은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마당에는 잡초가 우거져있고 흰나비 떼는 을씨년스럽게 너울거리고 마을은 죽음처럼 조용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겁먹은 듯 놀란 동네 아저씨가 인민군이 트럭타고 우슬재를 넘어왔다고 아버지께 말했다. 담 너머 군화 발소리가 나고 뒷집에서 말소리가 시끌벅적했다.
아버지는 인민군이 쳐들어온 것으로 확신하고 어머니께 빨간 천을 찾으라고 했다. 사다리를 딛고 뒷집의 낌새를 알아보던 아버지는 암만해도 말씨가 우리 편인 것 같으니 붉은 천을 어서 숨기라했다.
대문을 박차고 들어온 군인 서너 명이 아버지에게 총을 들이댔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분을 말하고 부친상을 당해서 고향집에 머물다 전쟁을 맞았다고 하신 것 같았다. 어머니가 시원한 우물물을 들고 나오니 ‘당신 먼저 먹어보시오.’했다. 어머니가 한 모금 마시니까 그때서야 벌컥벌컥 마시고 아버지와 악수하고 돌아갔다. 하마터면 우리는 인민군인줄 알고 붉은 천을 들고 환영할 태세였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사방에서 총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방문 앞에 솜이불을 쳐놓고 우리들을 이불로 둘러씌우고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오메, 오메 큰일 났소, 상호 아부지가 총 맞아 부렀소.” 방에서 뛰쳐나왔다. 총알이 핑핑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할머니와 부모님은 작은댁으로 갔다.
큰 언니의 시어머님이 아들집에 왔다가 전쟁이 터져 우리와 함께 피난생활을 하며 함께 지냈다. 한창 젊은 아들을 헛간 나뭇가리 속에 숨긴 사돈은 헛간을 들락날락 하다가 또 다른 군인들 눈에 띄었다. 그들은 두말없이 바로 헛간으로 들어갔다. 노랗게 질린 사돈어른은 “토끼풀 줄라고 헛간에…” 말도 채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다. 사돈의 아랫도리는 흥건히 젖어있었다. 형부는 검불나무 사이로 빤히 군인들이 보였고 총검으로 겨드랑사이, 머리 위, 가랑이사이를 몇 번 찔러보더니 “아무것도 없다.” 하면서 나가더라고 했다. 형부의 목숨은 분명 하늘이 도우셨지 싶다.
마루에 앉아 벌벌 떨고 있는 우리들을 쳐다본 그들의 눈은 토끼눈보다 더 새빨갛고 살기에 차있었다.
큰 언니는 오금이 저려 발을 뗄 수조차 없었다. 총소리가 그친 후, 우리 삼남매는 작은댁으로 갔다.
작은 아버지는 우물 옆에 쓰러져있고 머리에서 흐르는 시뻘건 피가 도랑에 흥건히 고여 있었다. 그날 작은집에서 세 명의 남자가 죽었다. 문간채에 살던 열여섯 종국이 동생, 아래채에서 사는 치과의사, 작은아버지.
사람들은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겁에 질려 있었다. 작은아버지 머리에 난 총구멍을 할머니는 솜으로 막고 있었다.
형 종국은 군대에 가서 죽고 동생은 무담시 총 맞아 죽었다. 두 아들을 다 잃고 홀로된 그 어머니의 슬픔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으리라.
우리와 알고 지내던 집에서는 아들을 총살시키니 ‘이놈들아 나도 죽여라’소리친 그 어머니마저 총살시켰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전쟁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포와 증오를 심어준 비극이었다.
과거사 진상위원회는 나주 경찰관들이 후퇴하면서 인민군을 피하기위한 자구책으로 인민군으로 위장했고 민간인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고 한다. 그러면 왜 그들은 양민을 학살하였단 말인가. 분명 인민군이 진격해 오기 전, 이미 인민군으로 위장한 채 해남에 진입해 환영대회까지 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인민군으로 잘못 알고 속아서 행동하다 죽었음이 분명했다.
정부가 들어선 후 아버지는 동생의 죽음을 항의하러 경찰서에 갔었다. 해남경찰서 공안과장을 하던 사람이 전쟁 후 경찰서장이 되어 왔었다. 아버지에게는 미안하게 되었다고 사죄하면서, 그 당시 피난가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은 인민군을 환영하기위해 남아있는 빨갱이로 오해하고 남자는 총살시켰다는 경찰서장의 해명이었다.
초등학교 오학년 열두 살 소녀가 겪은 ‘나주부대 학살사건’을 증언한 내용이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과거사위’는 나주부대 민간인 학살사건이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하면서 피해유가족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보도내용을 보았다. ‘35명 살해’ 이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다. 내 듣기에는 백여 명이 총살되었고 군청 뒤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고 들었다.
우리들이 사회주의에 눈 흘기고 등 돌렸던 것은 북한의 체제 속에서 살아보면서 인민재판, 사상개조 등 북한 통치에 실망해 어느 체제가 우월한지 스스로 터득하지 않았는가.
6월이 돌아오면 시뻘건 피로 얼룩진 그날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하다. 머리에 구멍이 뻥 뚫린 채 눈을 감지 못하고 하늘을 응시한 작은아버지의 모습을 잊지 않고 있다.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 전쟁 속에서 먼저가신 이들과 만날 날도 머지않다.
오늘, 우리들은 정확한 진상과 진실을 밝혀 죄 없이 죽어간 그들의 혼령을 위로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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