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산책>
귀환(歸還)하는 것들의 아름다움
윤민화(본지 서울·경기기자)
길을 걷는데 헌혈의 집이 눈에 들어온다.
참석하는 모임에서 헌혈증을 모은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은 참 산뜻하고 경쾌한 분위기였다.
대학 다닐 때 학교로 온 헌혈차에서 간단히 팔만 걷어올려 헌혈을 해 본 터라 헌혈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질문들에 어리둥절했다.
요 근래 감기약을 먹었는지, 위험 지역에 다녀왔는지, 어떤 성분이 들어간 약을 먹었는지... 상당의 문항에 답하고 나서 간호사에게 다시 한번 검검을 받은 후에야 헌혈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휴~ 다행이다. 슬그머니 이런 절차가 꽤 까다롭다 했다가, 금세 생각을 돌이켰다. ‘혈’을 받을 사람을 생각해보면, ‘묻지마’ 피보다는 까다롭고 까다로운 문을 ‘통과한’ 피가 훨씬 이롭겠다 싶다. 또, 내심 이 절차들을 무사 통과했으니 내 육신이 참 대견스럽다는 생각까지 곁들어진다.
그런데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니 참 검붉다.
좀 더 깨끗한 피를 뽑았으면 하는 요량으로 간호사에게 물어본다.
“언제 피를 뽑아야 가장 깨끗한가요? ” 돌아오는 간호사 말이 인상적이다.
“이 피는 귀환하는 피라서 그래요. 글쎄요. 언제 뽑아야 깨끗하다 할까요? 몸 안에 있는 피는 생성되기도 하지만 온 몸을 돌고 있으니 언제라고 할 수는 없겠는데요.”
‘귀환’하는 피. 그러니까, 어딘가(골수라고들 한다)에서 나서 몸 구석구석을 휘휘 돌며 내 몸 안에 것들을 살리고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귀환하는 피라 이거지. 그래 너가 내 몸 안 찌꺼기를 거두고 이산화탄소가 끼어들어 이리 검어졌다 하더라도 마땅히 할 일을 하고 돌아가니 너는 참 자유롭겠다.
이 일로 한동안 ‘귀환’-이 단어에 붙잡혀 있는데, 어느덧 세상이 낙엽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생각해보니 저들도 귀환을 준비하고 있구나.
나지막이 말 걸어본다. “너희들도 귀환하는구나?”
몇 해 전 두륜산 기억이 떠오른다.
대흥사를 넘어서 힘겹게 땅을 보며 오르다 때마침 눈을 들어보는데, 가슴이 멎고 발이 멈춘다. 어찌 이 지경까지 아름다울꼬. 얼마나 맑던지. 물든 잎사귀 때깔 너머로 세상이 훤히 비췰 지경이다.
그래 너희들. 못다하였다 하여 미련도 없이, 잘못하였다 후회도 없이, 제 몫대로 살아냈으니, 투명하여 평온하여 제 빛으로 돌아가는, 귀환하는 너희들은 이리 제 다 아름답구나.
내친 김에 한마디 더 물어봅니다. “우리도 너희와 같을 수 있겠니?”
지금쯤 고향 강진에도 지천으로, 사방으로 물들어가고 있겠지요.
“우리도 그들과 같을 수 있겠지요?”
문득, 묻고 싶어지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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