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문 인생교양칼럼 27
60년 전 세상과 현대생활(現代生活)
이형문(수필가·영랑기념사업회자문위원)
필자가 옛날 같았으면 벌써 고려장 되고도 남을 나이인데 현대의술의 발달로 아직껏 건강하게 살아 갈수 있다는 행복감을 먼저 느껴보면서 솔직한 지금의 심정을 써 봅니다. 세월의 뒤안길로 밀려나 버린 내 어린 유년시절(1945년) 일본이 패망직전 쌀밥, 보리밥 구경도 못하고, 한끼도 제대로 못 먹고 자랐습니다. 집신을(조리) 만들어 신고 다니다가 어쩌다 설날이나 추석에 어머니가 사다준 검정 고무신을 사 주시면 떨어질세라 보물단지처럼 위하며 남 안볼땐 달아질세라 벗어들고 맨발에 걷다가 추운겨울 발가락에 동상까지 걸렸던 기억을 지울수 없습니다. 당시는 호열자병과 피부병이나 벼룩이 많았던 때입니다. 돈 많은 집 애들이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오면 부러움에 선망의 대상이었고, 동지섣달 긴 긴 밤을 지세며 베틀에다 무명옷을 짜느라 어머님은 자지도 않았습니다. 그 옷이 떨어지면 등잔불 밑에서 꿰매고 하여 형이 입던 옷을 대물림을 받았어도 감지덕지 하였습니다. 배고파 꿀대죽은 말 할것도 없고, 씨래기 국, 콩비지 국밥도 모자라 나중에는 산에 가 소나무 껍질을 벗겨 속살을 씹으며 허기를 달랬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여순반란사건 당시 공산당에 가담자를 추려낸다고 500명중에 반수정도가 개죽음을 당하기도하고, 6.25사변 중학생 때 군에 입대 전에 휴전되어 죽음을 모면하였습니다. 학제변경으로 순환이 많았던 때이고, 연필이 닳고 작아지면 대꼬쟁이에 끼어 쓰고, 휴지가 없어 지프랑구로 뒤를 닦던 시절이었습니다.어머니 따라 산에가 갈쿠리로 소나무가래를 긁어모아 한 짐 지고와 시장에다 팔아 그 돈으로 콩나물 장국밥을 먹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에게 그런 말하면 듣기 싫다고 코웃음 칠 것입니다. 우물가 빨래터에 가 오줌을 약에 쓴다고 눠주면 눈깔사탕 하나씩 주던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때의 소꿉동무들은 몇이 살아 있지 못합니다. 그만치 당시 우리나라는 정말 살기 어려운 동화 같은 어린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사람들이 모두가 순박했습니다. 이웃끼리 밤에 자는 사람을 깨워 제사밥도 함께 나눠 먹었고, 공동 수도나 화장실도 함께 쓰고, 지개차가 와 똥을 치운 곳에 냄새를 동리 사람들이 다 나와 바닥을 물로 씻기도 한 흐뭇하고 정이 넘치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 현대생활은 어떻습니까? 물자가 흔하고, 없는 게 없는 세상에 살아갑니다. 이런 시대를 이 나이에까지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복 받은 느낌이나, 반면 생각해 보니 그래도 없이 살았을망정 (情)이 흠뻑 넘치던 그 60년 전 시절이 더 그리우니 왠일 입니까? 그것은 지금 세상이 인정이 메마르고, 따뜻한 이웃이 없어 누굴 잡고 나의 딱한 하소연을 나눌 곳이 없어진 세상입니다. 어제 뉴스에 들어보니 19세 어린 대학생이 애인과 결혼을 반대한다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살인까지 해 버린 끔찍한 패륜아 세상입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고, 돈에 눈이 멀어 보험 때문에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는 막가는 세상입니다. 선생이 학생을 체벌 못하게 하고, 선생이 학생에 얻어맞는 세상입니다. 물자는 흔해도 가짜(짜가)투성이고, 인스턴트 식품 등으로 몸이 병들어 갑니다. 거기다 지구 온난화로 지진, 해일, 폭설, 폭염으로 지구 덩어리가 몸살을 앓고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날만 세면 교통지옥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갑니다. 마치 말세 같은 느낌의 세상인 것 같습니다. 냉장고속에는 없는 게 없이 살아갈망정 잘 먹고 잘 사는 대신 오히려 부자병인 당료나 고혈압 이 더 만연합니다. 병원에 가 보면 부자 병으로 누워있는 사람들이 반수 이상을 차지합니다. 노인들의 복지시설이나 위락 시설이 있다 해도 자식들이 부모를 인정사정없이 귀찮다고 양로원으로 길 거리로 보내 버리는 세상입니다. 그렇게 내 몰린 늙은이들이 서울 한복판 종로 3가 지하철이나 공원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으며, 심지어는 갈 곳이 없어 밤에 추위에 떨며 노숙하는 사람이 수백 명입니다. 요즘 초등학생은 컴퓨터는 물론 핸드폰도 반수 이상이 지니고 다니는 세상입니다. 우리 사는 주위에 좀 정신 못 차리면 코 베어가는 세상으로 사기, 절도, 강도 협잡꾼이 득실거리고, 교통사고는 세계에서 1등 국가가 되었습니다. 정말 양보심이 전혀 없는 부끄러운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중질서나 남을 위해 살아가지 못하고, 연말이면 교회당마다 오색찬란한 네온 불빛이 사람을 유혹하나 회개 하기는 커녕,지옥 갈 사람이 더 많은 세상입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야 하지요? 60년 전 헐벗고,못 먹고 살던 때를 다 잊고 낭비하며 들떠 살아가야 합니까? 정의와 믿음이 하나도 없이 전락해버린 현대세상이 정 말 한심한 노릇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부자나라가 아닌 빚 덩어리 나라입니다. 이제라도 정신을 가다듬고 검소하게 살아 가야하고, 헐벗고 굶주리던 때를 상기하여 새 마음, 새 정신으로 정신 차려 살아가야 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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