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 시대)
강진군 군동면 라천리 동동마을
안효순 할머니 97세
“나는 큰애기 때부텀 담배를 피워왔어.”
군동면 동동마을은 강진에서 장흥 쪽으로 가다보면 면 소재지를 저만치 두고 왼쪽으로 비파산 줄기 아래 나앉은 마을이다. 마을 초입을 향해 들어갈 때부터 이상하게도 마을이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비단 기자뿐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배산임수형의 마을이기 때문이다. 마을 뒤에는 비파산 줄기가 버티고 있고 마을 앞으로는 군동 평야가 질펀히 펼쳐져 있으며 탐진강 물줄기와 탐진만이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마을이다. 동동마을 앞은 군동평야의 중심부이기 때문에 더 더욱 마을 앞이 훤하다.
“친정이 거시기 저 장흥 우목리여, 그려서 우목이떡여.”
기자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안효순 할머니는 눈썹을 그렸다며 웃었다. 얼굴 전체를 까만 검버섯이 덮고 있었지만 애교가 넘치는 표정에는 여성스러움이 잔뜩 배어 있었다. 아끼던 저고리를 꺼내어 입었다며 저고리 위에 조끼가 잘 어울리냐고 물었다.
“열일곱 살 묵은 것이 얼매나 중심이 있었겠다고, 뭘 알었겄어?”
일흔한 살에 돌아가셨다는 할아버지의 첫인상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할머니의 눈에는 천천히 눈물이 고였다.
“아조 뭐 문쟁이제. 시아버지도 문쟁이였어.”
할아버지가 일본에서 3년간 유학하며 신식공부를 한 지식인이었으며 시아버지 또한 지식인이었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셨다. 친정이 엄청난 부자였다는 안효순 할머니는 시집올 때 벽시계까지 해오셨으며 하인이 열한명이나 등짐지고 따라왔다고 했다. 시댁도 부자이긴 했으나 친정에 비하면 부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단다. 친정아버지가 동네 구장을 18년을 했는데, 그때부터 아버지가 늘 사오던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단다. 큰애기 때부터 피우기 시작한 담배는 지금도 하루 반 갑을 피우고 계시는데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커피는 늘 수시로 마시며, 술 또한 잘 드신다. 특히 빼놓지 않고 찾아 먹는 것은 알부민이라는 영양제이다. 할머니는 오래 전부터 알약으로 된 알부민을 아침, 저녁 식사 후 꼭 두 알씩 드시고 계셨다. 또한 딱지라는 풀을 푹푹 삶아 고아 낸 물을 오랫동안 드셨다고도 했다. 좋아하는 반찬으로는 젓갈이고 쇠고기는 생고기를 좋아한다. 젊어서부터 밥은 한 공기를 다 먹어 본적이 없다고 한다.
“늑막염, 맹장수술, 디스토마까지 걸렸었는디, 뭣 할라고 이리 오래 살 것이요.”
지금도 몸 군데군데 안 아픈 데가 없다며 거죽만 남은 뱃살을 보여 주셨다. 젊어서부터 아픈 데가 많은 몸이었는데 오래 살고 있다면서, 지금도 바깥일을 안 하면 정신이 흐려지기 때문에 밭도 메고 늘 일을 찾아 한단다. 알고보니 할머니의 친정아버지도 88세, 어머니도 77세까지 사신 장수 집안이었다.
시댁은 2대째 독자집안이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내리 딸만 다섯을 낳자 시아버지가 대놓고 나가라고도 했으며 남편에게 새 사람 얻으라고 강요했단다. 시어머니의 구박은 더 심해서 아무 일도 아닌 것 가지고 무던히 미워하여 늘 울고 지냈단다.
“영감이 세상에 나 밖에 없어. 구식이라도 좋게 살았제.”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시댁 어른들이 어떤 말을 해도 할아버지만은 변함이 없었단다. 그래서인지 딸 다섯 이후 잘 생긴 아들을 셋이나 낳았다며 할머니는 다시 환하게 웃었다.
“아이고 아슬아슬해 살아온 거 생각허먼······ 생전 애기배면 빗자루 하나 안 들어.”
시어머니는 할머니가 시집온 후로도 아이를 넷을 낳았다. 친정에서 보리밥 한 번 안 먹어봤던 할머니는 시집와서 보리밥을 먹는 게 제일 싫었으며 시어머니 구박에 호미를 놓아본 적 없이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가끔 며느리가 술을 한 잔씩 하는 것을 알고 “너하고 나하고 둘이 먹자” 하시며 술자리를 만들어서 위로해 주시기도 하셨다고 했다.
“저 선풍기처럼 생긴 난로말여. 우리 막내아들이 사왔어.”
막내아들 송기장( 58살) 김정순( 56 살)부부와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는 앞에 놓인 둥근 난로를 보고 말했다. 방바닥이 따뜻해도 앉아 있으면 추울까봐 얼마 전에 사다 줬다는 빨간색 난로를 보면서 막내아들 자랑이 계속 이어졌다
“쇠뼉다구를 늘 갖고와, 막 떨어지먼 사오고 막 떨어지먼 또 사오고, 그 놈 아니면 밥 못 묵어.”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늘 챙겨 가져다준다는 막내아들부부를 칭찬하던 할머니의 애련한 표정에서 부모의 내리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이 용돈은 잘 주던가요?”
자식들이 달마다 여기저기서 용돈을 보내준다고 자랑하시던 할머니는 잠깐 말을 멈추시더니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돈? 호랑이가 다 물어가부러.”
막내아들이 주었다가 몽땅 도로 가져간다고 하시면서 부모가 되가지고 자식이 돈 필요하다는데 안주면 누구 주겠냐고 하신다. 알고보니 돈 물어가는 호랑이는 바로 호랑이띠인 막내아들이었다.
“가슴이 달아져······. 자석이 맨손으로 나가면 오메 그냥 가슴이 달재. 뭣하네 뭣하네 하고 늘 가져가지만, 돈 나가먼 안 들어와.”
마루로 나가서 사진 찍자고 했더니 다시 옷매무새를 만지며 거울을 들여다보신다. 할머니가 처음 시집왔던 그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참으로 보기 좋았다.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메주덩이들에서 할머니의 부지런함이 엿보였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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