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기자의 횡설수설1
나는 친절한 기자인가
친절해 보려고 애쓰지만, 기자라는 직업이 친절한 직업은 못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대한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대한다 해도 취재 대상자가 까칠하게 대할 때면 여간 무색해지기 일쑤다. 그렇다 해도 뭐라 할 수 없는 것이 일반인이 내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도 없는 것이고 정보를 꼭 알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욱하는 감정을 삼키며 나긋나긋, 상냥하게 대하려 애써본다. 그럴 때 ‘친절’ 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어쩌면 우리 군 슬로건의 하나가 친절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내가 공무원도 아닌데 왜 친절이라는 단어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는가. 물론 공무원만 친절해야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기자를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모든 일이 군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누구보다 공무원이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공무원을 많이 접하게 되는 나는 친절이란, 어쩌면 일의 열정과 비례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에 열정적인 사람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에게 최대한 친절하며 적극적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신문사에 제보할 것이 있다며 전화를 해오거나 장문의 편지를 보내오거나 또는 직접 찾아오는 분들을 보게 된다.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민원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이거나, 행정적인 오류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누군가를 칭찬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민원처리에 불만을 갖고 찾아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민원이나 행정적인 오류보다는 자신들을 형편없이 대하던 공무원의 태도에 무척 화가 나 있다는 점을 보게 된다. 많지는 않지만 신문사까지 찾아와 애기할 정도가 되었다면, 그 사람들의 가슴은 피멍이 들대로 들어 있는 경우이다. 쉽게 말해 그 피멍이란 바로 공무원의 불친절에서 느꼈던 울분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분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관심 있게 들어주기 위해 애쓰는 방법을 택했다. 몇 년째 해결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다 마지못해 찾아온 사람도 있다. 알고 보면 청와대, 권익위원회 등 여러 곳에 장문의 탄원서를 보내보기도 했고, 어떤 이는 소송까지 해보기 위해 변호사와 상담도 했다고 한다. 몇 년씩 쌓인 서류를 내보이며 한참을 설명한다. 그렇지만, 오래토록 이어온 그 서류를 내가 단번에 숙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그 사람의 말이 다 옳다 해도 행정적이 오류가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를 잘 들어줄수록 상대방은 억울한 여러 사정을 계속 털어놓는다. 그리고 담당자에게 멸시 당하듯 했던 분위기를 군의 최고 수장에게 화살을 돌린다. 나는 그런 때 친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최대한 친절해야 한다. 친절은 바로 인내다.’ 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에겐 억울한 이야기를 최대한 들어주고 호응해주어야 한다는 것. 누군가에 화가 나 있는 사람에겐 더한 욕이라도 곁들여 해주는 것. 잔뜩 준비한 서류를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성의껏 서류를 읽어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말은 내가 내용을 충분히 알아야 하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나서 담당자에게 내용을 파악해 보고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것. 그러나 행정이라는 것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수준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 등을 말해주는 정도다. 결국 당장에 해결의 실마리 하나 건지지 못하고 돌아서는 사람이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가 위로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인구 4만이 겨우 넘는 작은 군이다. 그 가운데서 구지 강자와 약자를 따지자면 나는 공기관에 있는 사람들이 강자이고 일반인이 약자라 생각한다. 그 약자의 대부분이 농민이다. 그 중에서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7%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 공무원들의 말 한마디와 표정하나가 얼마나 중요한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강진에 관광 오는 외부인들에 대한 주민들의 친절 또한 매우 중요하지만, 민원으로 인해 지역민에게 볼멘소리가 많이 나온다면 일을 잘한다고 할 수 없다. 물론 막무가내기로 따지며 화를 내는 사람에게는 해볼 도리는 없다. 나도 그런 사람들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매번 느끼는 것은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일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상대방의 고통과 아픔을 공감하는 대화와 위로가 힘든 상황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절한 사람은 결국 일에서도 큰 성과를 보인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 또한 정말로 친절한 기자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껏 공무원은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고 친절하지 못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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