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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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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목에서
아! 숭례문

 

                                                                                                               삶의 길목에서

      김현임(수필가)                                                                                    아, 숭례문!

                              

  망연자실, 통탄, 처참...... . 연이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이 낱말들에서 자유로울 이가 과연 있을까? 오늘 밤 텔레비전의 뉴스에서는 처참한 주검으로 널브러져 있는 숭례문을 위한 진혼제, 이른바 국보 1호의 넋 달래기 공연을 하는 사물놀이패의 모습까지 등장했다.

  ‘참혹하게 스러진 숭례문을 국장으로 치러서 조의를 표하고 610살의 숭례문이 숨을 거둔 날을 문화재 사망일과 국치일로 제정해 역사와 민족 앞에 석고대죄 해야....... .’는 꽤 오랜 세월 동안 문화재 지킴이의 선구자 역할을 해 오신 이의 통한의 일갈이다.

  묵묵히 계심만으로도 든든하던 분. 존경하고 숭앙해 마지않던 크고도 큰 어르신의 급작스런 유고였다. 시간에, 돈에,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쫓겨 살아가던 우리가 잠시 망각하고 있는 사이 한없이 자애로우셨지만 한편 한없이 근엄하시던 그 분은 당신 스스로를 태워 우리에게 준엄한 경고의 종을 울리시길 결심이라도 하셨던 것일까. ‘아무 말도 없이 아무 요구도 없이 때론 위엄 있게 때론 쓸쓸하게 그저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충분하던’ 이라고 쓴 한 시인의 숭례문을 위한 애도사 구절이 명치에 아프게 박힌다.

  우리의 선조들의 얼을 고스란히 담고 있음은 물론이요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문화유산인 아름다운 건축물 숭례문. 그 보물을 우리는 너무도 허술히 방치했다. 목조건축물의 특성상 내부에 쌓인 먼지에 작은 불꽃만 튀어도 큰 화재로 연결된다는데 비치된 소방도구래야 겨우 소화기 8대와 상수도 소화전이 전부였고 밤 8시 이후로는 관리자도 전무하였다. 어디 그 뿐인가. 말 그대로 우리의 보물 제 1호의 그 중요한 경비와 관리 용역을 맡은 경비업체에게도 수고 치하의 경비제공은커녕 알량하게도 봉사의 사명감을 내세웠으니.

  화재 후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관할 관청들의 행태야말로 우리의 울화를 터트리기에 충분하다. 소방청은 내부도면이 없었다는 발뺌이요, 문화재청은 어떻게 그 귀한 문화재를 처음부터 해체한 다음 불을 끄라고 할 수 있었겠느냐는 변명이다. 발화 5분 내의 조기진압이 그 목조건물의 명운을 좌우한다는데 체계적 위기대응의 매뉴얼조차 없이 그야말로 우왕좌왕, 우물쭈물하는 사이 이런 엄청나고 어처구니없는 국치의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재빨리 발표한 ‘십시일반 국민성금모금운동’ 제안이 그렇잖아도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국민들의 가슴에 기름 묻힌 솜뭉치를 던진 셈이다. 정부는 뜻밖의 거센 역풍에 당황해 단 하루 만에 철회하는 朝令暮改의 전형을 보이더니 이어 발표한 후속조치가 국민들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최대한 이른 시간에 복원하겠단다. 솔직히 나는 무섭고 두렵다. 새 정부 출범을 코앞 둔 시점에 벌어진, 재앙에 가까운 사건에 어찌 떨리고 겁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발이지 너희 너무 무리해 치닫지 마라.”

  “한 걸음 한 걸음 살피며 신중히 걸어라.”

아연실색 참담함에 빠진 내 귓가에 역력히 들리는 소리다.

  오류가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두 번 다시 그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 치열히 노력하는 삶이 가상한 이유다. 1300여년 명성을 떨치던 법륭사 벽화가 완전 소실된 충격이었단다. 그 불이 일어난 1월 26일을 아예 ‘문화재 방화의 날’로 정했다던가. 전국에 산재한 모든 산사와 사찰 등 주요 문화재를 대상으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상 상황을 설정해 거의 실전에 가까운 소방훈련을 해 오고 있다는 일본이다.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고 싶었다는 숭례문 방화범의 진술과 너무도 닮았다. 교토에서 금빛 찬란한 자태를 뽐내며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는, 중심 건축물인 3층 사리전의 금각 때문에 정식명칭인 녹원사 보다는 금각사라 불리웠다는 그 절의 방화범은 스물 한 살의 행자승, 그는 ‘나를 냉대한 세상에 복수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던가. 당시 3000만엔의 국민성금으로 비교적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 옛 모습을 되찾은 듯 하였으나 황급히 서둔 복원으로 군데군데 금박이 떨어져 나가는 흉한 몰골에 ‘흑각’이라는 야유를 받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후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게 되기까지 무려 반세기가 소요되었다.

가까이 지내고 싶을수록 그에 걸 맞는 격식과 절차의 예를 갖추어야하는 건 인간관계만이 아니다. 반가운 옛 어른을 뵈온 듯 잰 걸음으로 다가간 문화유적이다. 그러나 묵직한 쇠통에 봉쇄된 육중한 대문, 그래서 서운히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발걸음을 해 본 이는 절감한다. 선조들이 남긴 향기로운 문화유산을 마음껏 거닐며 어루만지고 누리고 싶은 마음이 누구라고 간절하지 않을까. 개방에 앞 선 철저한 준비과정은 문화재라는 큰 어르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절차다. 낙산사 마루에 앉아 바라보던 푸른 동해의 신비함이라니! 그런데 화마에 사라진 천년고찰, 그 낙산사뿐 아니다. 둘러보면 우리 주변엔 화재나 도난, 손괴로부터 지켜야할 문화재가 숱하다. 이번 숭례문의 소실은 섣부른 개방이 부른 인재라는 뒤늦은 질책이다. 전문가의 조언으로는 최소 비용으로도 얼마든지 조기진화가 가능하단다. 열 탐지기 같은 자동기계 설치가 그것이다. 이번 기회에 문화재 관리와 아울러 소중한 우리 선조들의 얼을 보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대응장치가 필요한 지 철저하고 또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화염에 무너져 내리는 아, 숭례문! 그를 속수무책 바라보는 심경은 의연한 자태의 크고 크신 어르신, 그 분의 처절한 다비식을 눈물로 목격하는 충격이었다. 당신의 몸을 불태워 그 분이 우리에게 전하려했던 큰 경고의 메시지가 사리로 남았음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 영롱한 사리를 내 가슴의 사리함에 고이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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