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 시대
“보고 잡으면 뭣할라요, 땅 속에가 있는디요.”
훈풍에 피는 꽃은 매화꽃인데
오늘날 피는 꽃은 신랑신부라
유리창 밝은 방에는 신랑이 놀고
만화방창 꽃 속에는 신부가 노네
천하의 만물이 변할지라도
당신과 나는 변하지 맙시다.
강진읍 덕남리 춘곡마을
한아지 (98세)
춘곡마을은 도암면의 명산인 만덕산이 동쪽으로 뻗어 내린 끝자락에 포근히 자리 잡고 있다. 강진읍의 마을 중에서 만덕산 정상과 가장 가까이 있으며 전통적으로 장수마을로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 2001년 12월 KBS 장수노인의 실태와 비결이라는 프로에 방영되기도 하였는데, 만덕산에서 발원한 철분이 함유된 약수와 오염되지 않은 환경이라고 밝혀졌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마을주변 어디엔가 목이 마른 말이 마실 물을 찾아 헤매는 형국이라고 하는데, 마을에서 만덕리 백련사와 다산초당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이 질마(안장)를 벗어놓고 물을 찾아 내려가는 형국이라 하여 질마재라 부른다. 자생식물로 아름다운 해송과 야생 녹차. 비파차. 수십 종의 산나물이 뒷산에 산재해 있어 좋은 자연환경이 바로 이 마을의 장수비결이 아닐까 싶다.
훈풍에 피는 꽃은 매화꽃이라
오늘날 피는 꽃은 신라신부라
유리창 밝은 방에는 신랑이 놀고
만화방창 꽃 속에는 신부가 노네
천하의 만물이 변할지라도
당신과 나는 변하지 맙시다.
처녀 때 불렀다는 노래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양 볼이 붉으스름하게 홍조를 띄우고 있었다. 할머니가 노래를 잘 부른다 해서 들려 달라 했더니,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서도 한 곡 불러주었다. 할아버지도 90세까지 사셨다하니 평생 이 마을에서만 살아오신 두 분을 볼 때 환경적 영향을 빼놓을 수 없겠다.
강진 목리가 친정인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쌀밥만 먹고 살았다고 한다. 부친이 일본사람과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데, 시집오기 전까지도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잘 살았다고 말했다.
“우리 클 때는 이웃집도 못 가게 했어 딸들은 말여.”
춘곡마을로 18살에서 시집와서야 이웃들의 어려운 생활을 알게 되었다는 할머니를 보며 남다른 복을 가지고 태어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세월이 흘렀을 뿐 마음은 18살 새색씨 같은 마음일까. 할머니의 노래에서 청순미가 흐르는 소녀를 보았다.
“속 안 썩였어. 욕 한자리 안하고 살았어. 영감이 성인군자여.”
자녀는 1남1녀를 두었다. 결혼 후 10년간이나 아이가 생기지 않았는데도 두 분은 전혀 자식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할아버지가 9남매의 막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90살 먹도록 살았는디 뭐가 보고 싶어요, 생전 욕 한자리 안 듣고, 지천 한번 안 듣고 살았는디······ 보고 잡으면 뭣할라요 땅속에가 있는디요.”
그렇다고 해도 혹시나 하고 할머니 몰래 할아버지가 바람한번 피우지 않았을까? 라고 물으니 내가 그것까지 어떻게 아느냐며 시종일관 웃던 할머니가 가는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오래돼서 몰라, 모른당께······.”
“100살 먹도록 산께 애가녹아, 아무것도 성가신 것이 없는디, 전 사람들 말에, 늙은이 웃 는 것은 배기도 싫고 말 허는 것도 배기 싫다고, 그것을 다 알고 있응께 그런갑소. 노인 들만 있는 방을 열어보고 젊은이들이 아무도 없다고 하는 것을 보고 살아서인지, 지 금은 땅 밑으로 갈 것 밖에는 암 생각을 안 해요.”
금강산 버께보살
성불불사 나오실 때
저녁공양 곱게 하고
자연자시에 열반 합시다
지금도 아침마다 관세음보살을 한다는 할머니는 많은 절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지금도 절이라고 하면 눈이 번뜩 뜨인다고 하는데, 절에 가면 맘이 편하기 때문이란다. 살아오시면서 왜 고생이 없었겠냐 싶지만, 말씀 하시는 것으로 봐서는 근심걱정 하나 없이 사신 분 같은데, 왜 평생 절을 찾아다니며 의지해야 했을까. 관세음(觀世音)이란 세상의 소리를 말한다 할 때,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고통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는 할머니의 보이지 않는 고통은 무엇이었을까를 기자는 곰곰 생각해보았다. 할머니가 고생이라고 말한 것은 외아들이 19살에 무릎을 다친 일이다. 다친 부위가 여러 번 재발하곤 해서 맘 고생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고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부모가 자식 걱정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런 일을 고생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라고 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무심이 부처다’라고 말한 성철스님의 대중법어가 떠오른다.
“아들이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란 생각밖엔 안 들었지.”
잠이 잘 오지 않아도 텔레비전은 취미가 없어 잘 틀지 않으며, 지금은 눈을 감고 있어도 아무 생각이 없고 오로지 아들 며느리 잘 되기를 생각 한단다. 장흥에서 우체국을 정년퇴임한 아들이 사오는 생선을 좋아하고 식사는 하루 세끼 꼬박 꼬박 챙겨 드신다. 지금도 밭농사 500평에 고추 콩 깨 등의 작물을 심어 자식들에게 보내는 일이 낙이라면 낙이어서 틈나는 대로 밭일을 한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