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감성시대다
카이스트에서 올해만도 4명의 학생이 자살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써 다 큰 자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공부가 뭐 그리 중요 하기에 목숨까지 버린단 말인가.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고 떠난단 말인가. 어라 못된 놈. 그러나 순간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 만감이 교차한다. 카이스트에 입학한 학생들은 우리나라 최고의 두뇌를 가진 인재들이 모인 집합소이고, 자신감과 자존감 또한 강한 학생들이다. 그런데 희망에 부풀어 문을 두드린 곳에서 그것들은 깡그리 무너져버렸다. 그들이 살아갈 가치를 잃어버리고 심한 자괴감과 우울증에 시달렸을 것은 분명하다. 학습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오로지 공부가 전부일 수 있다. 새벽 5시까지 공부를 하고 2~3시간 잠을 자는 습관은 그저 성적을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결국 공부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삶 자체가 무의미해서 남는 것은 허무만 밀려오는 것이다. 그런 학생의 심리를 이해하고 싶은 것은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밤낮으로 글 쓰는 일에 몰두하다가 작품이 끝나고 난 후 두어 달을 거의 무기력하게 보냈었다. 내가 몰두한 일은 오로지 글 쓰는 일이었지만 정작 너무 힘들고 지쳐있었다. 하지만, 탈고를 한 후 그것 밖에는 할 일이 없다는 사실 앞에 무기력과 허무가 밀려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만이 전부가 아니었고, 또 다른 일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게 전부였던 거였다. 어떤 것에 집착하면 그것만이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져서 다른 삶은 전혀 들어오지 않을 수 있고, 그래서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자살한 학생들이 공부만이 아닌 또 다른 세상에 잠시 눈을 떴더라면 그런 불행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평가는 상대방을 눌러야 내가 앞서 올라가는 것이고,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무한성적경쟁체제에서 징벌적 등록금제는 오로지 돈만이 이 세상의 전부이고 돈이면 모든 게 통한다는 개념만을 심어준다. 이러한 방식의 교육은 인성은 없어지고 학습만이 모든 잣대가 되어버려서 결국 우리 사회 곳곳에 많은 문제점을 양산하게 된다. 상대방을 어떻게든 끌어내려야 내가 올라간다는 사고방식만 팽배해진 사회를 학교에서부터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리더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허구헌날 쌈박질이나 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한 행태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경쟁대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친구를 하나 둘 더 만들어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공부하고 토론하고 그러면서 서로의 발전을 모색하고 도울 수 있는 학교, 그런 학교생활이 비로소 건전한 우리 사회를 만들어 간다. 따라서 학교에서부터 지나친 경쟁으로 몰아붙이는 일은 이기주의 사회인만 양성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요즘 학교에 가보면 인성교육을 최고로 부르짖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인성을 가장 중요시해야 할 리더급 우수 교육집단에서 인성교육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스스로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배우는 일은 책을 통해서이고,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알아 가면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기게 된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에 매달려 책 읽을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 학생들이 대학에 가서조차 학습에만 매달렸다가 사회에 나간다면, 옆 동료를 어떻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겠는가.
최근 작가 이외수씨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소통의 달인에게 듣는 대국민 소통법’이라는 주제로 강의하면서 소통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 번뜩 들어온다. 뜻이 오고가야 진정한 소통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감성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상대평가에 놓인 학생들이 그 누구와 소통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주위의 모두는 소통할 수 없는 경쟁 대상일 뿐이고, 성적 올리기에 급급한 채 감성은 메말라간다. 그는 또 이성중심의 사고로 발전된 문화는 결국 인간에게 감성과 정서가 고갈되는 병폐만 가져다준다고도 했다. 사람과 사람사이, 사람과 사물사이, 사람과 일 사이, 우리는 많은 사이와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그러나 일차적인 관계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이고 그 안에서 사랑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눈뜨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읽고 쓰는 데에 비롯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책 속에 감성이 있고 곧 사랑과 정열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정열은 모든 대상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눈을 갖게 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해준다.
그래서 아까운 젊은 인재들이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 할 대학에서 학습에만 매달려 비극으로 삶을 마무리했다는 점은 이 시대의 큰 문제점이고, 지금 풀어가지 않으면 더 큰 문제를 낳을게 뻔하다. 이외수 작가의 말처럼 지식으로 접근하려 한다면 세상은 각박해질 뿐이다. 미래는 누가 지식을 보유하고 있느냐보다는 누가 감성적으로 뛰어난지가 더 중요시되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아래의 글은 말테의 수기 한부분이다. 얼마나 풍부한 감성을 갖게 하는지 한번 음미해보면 어떨까. ‘사랑받는다는 것은 오직 타 버리고 마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잦아드는 일이 없는 기름으로 빛을 내는 등불인 것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요.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히 지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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