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향월촌> 백한이 / 시와 산문 / 박부민 시인
백한이
아내 손잡고 별난 백한이 구경 왔다
암컷이 알을 낳은 후 기진해 죽자
수컷이 대신 알을 품었단다
후미진 구석에서 며칠째 식음을 폐하고
세상 누구도 위협 못하도록
알 위에 눈 시린 흰 몸을 웅크린 새
시뻘겋게 피 머금은 얼굴로
머릿깃을 파르르 떨며 생땀을 흘려댄다
암컷 그리운 속가슴 활활 지피며
오로지 제 새끼 지키느라 사력을 다해
새까만 긴장을 태우는 절절한 눈빛
사람도 저만 못한 사람이 있으려니
산그늘에 슬쩍 눈길을 숨기는데
구경 온 동네 여인네들 아내랑 합세하여
기특한 백한이 극구 칭찬하다가
돌연 힐긋힐긋 나를 쳐다본다
꽁지 빠지게 총총 뒷걸음질 치면서
괜한 큰 기침 한 번 퍼드덕 날리고는
야아, 그놈 참 사람보다 낫네!
* 백한(白鷳): 닭목 꿩과의 관상용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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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우리 마을에 알을 품는 수컷 백한이가 화제가 되어 구경을 갔다. 그 애틋한 새는 한쪽 구석에서 누가 해코지라도 할까봐 미동도 없이 알을 품고 있었다. 암컷이 알을 낳고 기진하여 죽자 자신이 대신 품었다고 했다.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그 부성애. 초긴장 상태의 표정이 얼마나 진지하고 숭고한지 가슴이 뭉클했다. 음식도 마다하고 오로지 알을 품는 데만 전력을 다하는 그 절절한 모습. 기특한 백한이에 대한 구경꾼들의 칭찬 세례 속에서 불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가정의 달을 지내며 남편으로서 아비로서 제 몫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가족을 위해 온 정성을 쏟고 있는지. 혹 그 새만 못한 마음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가정을 이끄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 백한이의 부성애에 못지않게 가족을 사랑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종종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가족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남자들도 있는 듯하다.
사람도 백한이만 못한 사람이 있겠지만 남자든 여자든 거룩한 책임감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또한 이 땅의 소외된 이웃까지도 많이 사랑하며 살면 좋겠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주어진 책임에 전심을 기울이고 서로가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할 줄 아는 가족애로 활활 타오르는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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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민 시인 / 1996년 계간 <시와산문> 신인상 당선 (조병화 시인 選) 2005년 한국크리스챤문학상 수상. 시집『등불이 있는 마을』(시와문화 2010) 현 남도햇빛교회 담임목사 nasare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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