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 시대
성전면 명산리 오산마을 1126번지(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의 고향마을)
문순덕 할머니(93세)
“마음은 모도 심것는디, 오래 살면 자식들한테서 뉘 난께 못써!
최근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특유의 뚝심으로 개혁공천을 단행하고 있는 박재승 위원장의 고향이기도한 성전면 오산마을. 예부터 마을 뒷산의 지맥이 가재의 발과 같다고 하여 ‘가재형국’이라 전해온다. 이 마을의 개촌성씨인 함양박씨는 청주김씨의 사위가 되면서 1500년대 말엽에 처가인 명산리 당산으로 정착하였다가 다시 오산마을로 이거하여 자자일촌을 이루었다. 이 마을은 최근 장수마을로도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산세가 독특한 뒷산은 하늘을 찌를 듯 높고 날카로운 기상이 엿보이지만 마을은 남향에 자리 잡고 있어 부드럽고 포근하게 보인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오산마을에서 인물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문 할머니는 작천 갈동마을에서 16살에 오산마을로 시집왔다.
“공출한다고한게 가스나들 일찍허니 여워부렀소. 시방 사람들에 치먼 애기제.”
홀어머니에 외아들인 집안으로 어린나이에 시집온 문 할머니는 시어머니에게 흠 안 잡히기 위해 하라는 대로만 하며 살았다. 시어머니도 성질이 급했고 남편도 성질이 급했다. 늘 서둘러서 해놓지 않으면 시어머니에게 혼날까봐 부지런히 나댔다. 말대꾸 한번 못하고 그대로 살아야 하는 줄만 알고 살았다. 어린나이에 떠나온 친정이 그리웠지만 가보지 못했다. 눈뜨면 산더미 같이 쌓인 일들을 쉴 틈 없이 했지만 먹을 것은 항상 부족했다.
“제국시상이라 일본사람들이 다 들어가분께, 너물만 묵고 살기도 허고······그때는 반장이 한동네 일가여도 숨겨놓은 나락까지도 모다 찾아 가져갔제. 아들 다섯 키우면서 고상 퍽 했소.”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남편은 늘 배가 아프다고 했었다. 약을 구하기 힘든 세상이었기에 남들이 배 아픈데 좋다는 소다를 먹게도 하고 소라를 말려서 가루로 내어 먹게도 하였다.
“지금 같으면 맹장이나 된가 모르겄소. 늘 배 아프다고 하더니 가붑디다. 잊어 부러서 몇 살이었는가도 모르겄소. 죽음이랄 것은 몰라, 죽음을 맘대로 못 항께.”
문 할머니는 큰아들이 14살 때 혼자되었다. 남편 없이 자식들 데리고 살 생각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33살에 홀로된 시어머니는 외아들에게서 난 다섯 손자들은 끔찍이 아껴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할머니 제사에는 손자들이 빠지지 않는다.
“등에 코가 누룽지 될 만큼 땅에 안 놓고 키울라고 업고만 다녔제.”
그런 시어머니도 80이 넘게 살다 가셨다. 6.25때는 친정동네로 잠시 피난 갈 때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업고라도 따라오니 그것만이라도 힘이 덜어졌었다.
“마음은 모도 심겄는디, 오래 살면 자식들한테서 뉘 난께 못써.”
젊을 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한결같아서 무엇이든지 하고 싶지만 막상 하려고 보면 기운이 없다며 화병에 꽂힌 몇 송이의 장미꽃을 가리켰다.
“꽃도 보시오. 오래되면 다 사그라지는 것을.”
6.25피난 중에 총알이 머리 위로 아스라이 날아가는 것을 느낀 적도 있었다. 만약 키가 컸더라면 죽었을 것이라며, 그때 죽었으면 내 자식들은 어찌됐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한다. 고생으로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사는 것이 요상하다며 늙어 오래 사는 것이 자식들한테 미안하기만 하다.
“늙은이가 때 되면 끼니만 생각나니, 며느리 고생 시키제, 살라고 바쁘게 나댄디 늙어 도울 방도도 없고 말이요.”
큰아들 부부(박명하73, 임공임68)와 함께 사는 문 할머니는 큰 며느리가 시할머니까지 모시면서 고생이 많았다며 자신까지 오래 살고 있어 짐만 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같이 사나 멀리 사나 자식은 모두 똑같은 마음이라며 다섯 아들을 모두 치켜세웠다. 문 할머니의 바람은 형제간에 언제까지나 우애 있게 지내는 모습이다. 한때 문 할머니는 의정부에서 크게 식당을 하는 셋째네 손자들을 돌보아주기도 했다. 그때 손자들을 보면서 자신은 도대체 어떻게 아이들을 낳고 살았는지 아무 기억이 없었다며, 여자 혼자 7식구 먹여 살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여러 번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 판사가 두 명씩이나 나왔다요. 언젠가 큰 시험에 붙었다고 잔치도 했었는디, 그 사람인가 모르겄소, 오래 된 일이제.”
혹시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문 할머니는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었다.
“봄 날 다 되았네.”
따스한 햇볕이 창문으로 내리쬐자 문 할머니가 창 밖의 햇살을 보면서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힘든 세월 어디 크게 한번 웃어 볼 날이 있었을까. 고왔을 것 같은 얼굴인데도 웃는 얼굴은 마냥 어색했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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