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산다는 것 박 근배
동일종합건재, 동일골재 대표
유년시절이 너무나도 그립게만 느껴진다. 자유롭고 걱정 근심 없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불혹의 길목에 들어선 지금, 좀 더 긍정적이고 좀 더 높은 이상을 가졌더라면 오늘 날 내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해 본다.
사실 내 유년시절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고통스러움 그것이었다. 서러움과 서글픔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놔두지 않았던 그 시절, 그래서 다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내 삶을 바꾸고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후회스러운 일이 많기 때문이고, 다시 유년시절로 돌아간다면 후회 없는 그 시절을 다시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할머니의 끊임없는 노역의 모습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 선명하기만 하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논밭으로 종일 다니며 일만 하셨던 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삼백육십오일 어느 하루 허리를 눕혀본 일이 없었던 분들이었다. 고기 한 근, 좋은 옷 한 벌 맘껏 먹어보지도 못하고 입어보지 못한 분들이었다.
물론 내가 유년시절로 돌아간들 그 분들에게 뭐 하나 해드릴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잘 사는 세상이다 보니 내가 조금만 노력해도 잘 해드릴 것 같은 착각은 아닐런지. 하지만 왜 유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은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 어려웠던 시절, 좀 더 속 차리고 어른스럽게 행동하지 못한 후회스러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모님과 할머니의 부지런함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오늘 날 내 모습은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면서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성실히, 그리고 몸이 부셔져라 일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렇게 속없이 보내버린 유년시절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 더 악착을 떠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당신의 분신으로 생각하며 끝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할머니. 내 어머니! 세상을 강인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묵묵히 일하는 것으로 보여주셨던 내 아버지! 지금은 모두 떠나고 안 계시지만 항상 내 가슴 속에는 그림자처럼 남아 있다.
며칠 전 일이다. 오랜 만에 고향 선배님이 고향을 찾아와서 대뜸 내게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들려달라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까 그래도 너는 밥술이나 먹고 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몹시 당황하고 말았다. 누구처럼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남들처럼 모아놓은 것도 아니며, 그저 조그만 가게 하나 가진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솔직히 몸 둘 바를 몰랐다. 약주만 한 잔 하자며 그냥 넘어갔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그런 말도 다 듣고 살날도 있는가 싶어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선배님이 돌아간 뒤로 이상하게도 나는 내 지난날을 반추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과연 나는 내 삶을 후회 없이 살아왔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야망과 꿈을 갖기 마련이겠지만 나는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하고. 그런데 자꾸만 유년시절이 떠오르면서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시점부터 후회 없이 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아릿하게 슬픔 같은 것이 이슬비처럼 적셔오면서 몇날 며칠이고 무슨 홍역처럼 나를 괴롭혔다. 지금까지 그저 앞만 보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문득문득 유년시절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나도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는가 싶다. 하지만 또 어쩌겠는가. 과거는 지나간 것, 다가올 세월 또한 열심히 사는 것이 사람 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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