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바타-
조 수 웅
문학박사, 전라남도문인협회회장, 저서:실속이와 아부 외6권
A : “게오르기 「25시」마지막 장면에서 원인 모를 미소를 짓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현대의 위기를 상징하는 인간상이다. 이러한 현대인들은 이제 편협한 공간에서만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공간의 확대를 시도했다. 토마스 만(Thomas. Man)의 「마의 산」이 지니는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지상의 시민사회에서의 공간이 아니라, 지상 5000피트의 지점에 있는 하늘 위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의 사회는 현실사회의 허상(虛像)인 사회다. 이 허상의 사회는 현실 이상의 현실적인 실감을 갖는다.”
B :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인터넷 저편에서 자신을 부르는 문자에 이끌려 전화선을 타고 현실에서 디지털 세계로 넘어간다. 실제로 디지털 세계에서는 상상이 곧 현실이다. ‘총’을 외치면 1개 사단을 중무장하고도 남을 양의 무기가 쏟아지고, ‘쿵후 매뉴얼’을 입력하면 몇 시간 만에 쿵후의 최고수가 된다. 최근 아바타가 단순한 가상공간의 캐릭터 구실을 뛰어넘어, 이처럼 네티즌들이 초고속통신망을 타고 가상공간으로 넘어가는 매개체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바타를 통해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벽을 허물고 있는 것이다.”
A : “허상의 세계에 필연적으로 결부된 것은 시간성이다. 현대인들은 공간의 비좁음 말고도 시간의 결핍을 절감한다. 이 「마의 산」은 그것을 구원하기 위해 시간을 새로이 설정한다. 말하자면 노령화된 현실사회의 시간을 젊음으로 회복시켜보려는 노력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좁은 3차원의 세계는 4차원세계까지 확대된다. 그리고 이 시간의 개입으로 공간은 현실적인 데만 머물지 않고 무한대로 확대되어 간다. 그러니까, 과거와 미래 사이를 내왕하는 시간 안내자에 의해 마침내 공간은 종횡무진으로 확대된다.”
B : “아바타 채팅 사이트 팝플을 접속하면 화려한 유람선이 뜬다. 이 유람선이 바로 디지털 생활로 안내해주는 가상 주거공간이다.”
A : “마르셀 푸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리차드슨 「솟은 지붕들」이, 이 시간의 안내를 받아 상념과 인상의 연대기적인 과거의 질서를 일거에 파괴한다. 사건에 중점을 두지 않고 외려 자극과 기분이나 감정과 관념연합 등이 하나의 장면을 형성함으로써 과거처럼 소설의 맥락이 정연하지 못해 난해하다.”
B : “팝플은 이른바 ‘리얼라이프’를 표방한다. 현실생활의 모든 공간과 인간의 모든 행동을 그대로 옮겨 논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개인방은 아이템을 사서 만들기에 따라 신혼방도 되고, 교회도 되고, 비디오방도 되고, 찜질방도 된다. 거기서 생활하는 아바타는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도 하고, 텔레비전을 본다.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변기 위에 걸터앉기도 한다. 거품 가득한 욕조에서 목욕할 수도 있고, 목욕이 끝나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수도 있다.”
A : “푸루스트는 상기(想起)작용에 의한 회상을 젊은 날의 체험이나 어렸을 적 인상과 현실적 인상에다 두어 시간의 확대, 나아가서 공간의 확대를 꾀한다. 이에 비해 조이스는 「율리시즈」에서 특정한 하루(1904년 6월 16일)나 사회 상황에서부터 1000년 전 또는 그 이전의 신화까지 내왕하는 시간확대를 제시한다. 푸루스트는 어제와 오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 운동을 하면서 ‘콘프레’에서 ‘파리’까지의 공간이었으나, 조이스는 행위와 회상, 감수와 일탈 사이의 동요를 신화와 역사까지 확대한다.”
B : “팝플의 ‘오마이갓교회’에선 매주 화요일 저녁 8시마다 예배가 열린다. 신도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간에 맞춰 들어와 함께 예배를 본다. 한쪽에선 문자채팅으로 찬송가를 부르고, 방 주인인 목사는 설교를 한다. 커뮤니티게임 사이트 ‘엑스러브’에서는 아바타들이 결혼한다. 화창한 봄날의 야외식장으로 꾸며진 예식장을 들어서면 근사한 턱시도와 화려한 웨딩드레스로 장식한 신랑신부가 손님을 맞이한다. 신랑신부는 결혼반지도 교환하고, 결혼식이 끝나면 신부는 친구들을 향해 부케도 던진다.”
A : “시공의 확대는 환시(幻視)적인 세계 곧 ‘저승’이나 ‘유령의 세계’에까지 몰입한다. 나만의 아바타는 기어코 카자크가 쓴 「흐름 뒤란의 도시」나 바르진스키의 「죽은 사람의 나라로」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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