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데미안’을 통해 보는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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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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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을 통해 보는 학교폭력

 

 

이현숙의 문학 돋보기

 

‘데미안’을 통해 보는 학교폭력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고 검찰과 경찰이 나서고 있다. 각 학교마다 수시로 학교폭력 강의를 하고 각종 행사를 통해 학교 폭력을 뿌리 뽑을 태세다. 이런 현상이 학교에서의 폭력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되지만, 학교 폭력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일부 말썽꾸러기 학생들로 인해 수업이 방해 된다는 말도 많이 들어왔고, 선생님들이 제자들에게 꾸지람도 못하고 아예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푸념도 들었다. 사실 그러한 일들은 몇몇 아이들 때문에 일어나고, 드러나면 학교 전체가 문제덩어리처럼 비춰지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학창시절 힘으로 친구를 눌러온 아이가 사회에서 진정 올바르게 살 수 있을까 싶다. 약하고 여린 친구를 괴롭히다 못해 사회 폭력배와 같은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행태에 대해서 치가 떨리고 무섭기조차 하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친구로부터 당한 폭력이 바로 그것이다. 싱클레어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무리에 끼고 싶어 친구들 앞에서 거짓말을 한다. 친구들의 우두머리격인 프란츠 크로머에게 인정받고 싶어 자신이 과수원에서 사과자루를 훔쳤다고 그럴듯하게 꾸며댄 것이다. 우리 주변 십대 아이들의 모습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친한 친구와의 사소한 장난이 점점 심해지면서, 장난을 거는 학생은 대수롭지 않게 괴롭히거나 나중 즐기면서 괴롭히는 쪽이 되고, 피해 학생은 괴로워도 참다가 결국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이런 일들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친구간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아이들 사이에는 고자질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학교 내에는 일진이라는 조직이 형성되어 조직에 필요한 아이들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 조직자체가 결국 힘으로 모든 것을 좌우지하기에 사회 폭력배가 끼어들게 되고 지속적으로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형성하게 된다. 싱클레어처럼 친구들 무리에서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 생각지 못할 일들을 벌일 수 있다는 점이다. 크로머는 싱클레어의 거짓말을 이용해 도둑으로 몰며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자신에게 바치기 위해 싱클레어가 집에서 저금통을 훔쳐온 일을 가지고도 심적 압박감을 주며 협박한다. 크로머는 싱클레어에게 자기가 할 심부름을 시킨다든가 친구로서 굴욕감을 느낄 괴로운 일들을 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싱클레어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방황한다. 결국 부모님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죄책감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공포에 짓눌리면서 신체는 점점 나약해지고 꿈을 꾸다가도 헛소리를 하는 정신착란 증세를 보인다. 이와 같은 일들, 아니 더 잔혹한 일들이 우리 아이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가슴이 미어진다.

그러나 싱클레어는 다행히 데미안을 만나면서 겉으로는 크로머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란 존재는 크로머라는 악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천사의 상징이자 구원자나 다름없다. 친구에게 고통당한 어렸을 적의 상처는 평생 모든 일상을 지배하면서 종종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고 사회 부적응을 낳게 한다. 이처럼 동료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지만, 추악한 인간상을 통해 이미 마음 자체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상태여서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못한다. 주변 모두에게 적대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싱클레어가 계속적으로 정상적인 삶에 동화되지 못하고 갈등할 때마다 데미안을 떠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나는 종교적 선과 악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새롭게 변화해보려는 싱클레어의 자아 발견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나는 학생들의 자살 사건을 읽어 내릴 때마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 아이가 친구들 앞에서 받았을 수치감과 고통을 헤아리면 가슴이 미어지고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 아이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더라도 사회가 지금처럼 학교폭력 근절을 외치고 있을까 싶으면서 그 아이들이 환생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있을 수 없는 생각이 간절했다.

남자 아이 셋을 키우다보니 종종 학교에서 있었던 신체적 폭력 또는 언어폭력에 대해서 들어왔다. 그렇지만, 내 아이가 아니라면 그냥 듣고 넘기는 정도로 생각하기가 쉬웠다. 왜냐하면 괜히 나섰다가 학교를 시끄럽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더 컸기 때문이다.

오래된 일이지만,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폭력장면을 전화 해온 적이 있었다. 나는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폭력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말해주었고, 선생님이 잘 해결 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나중 집에 돌아온 아이는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며 씩씩거렸다. 자신이 왜 반성문을 써야 하는지 너무 분하다는 거였다. 폭력을 당한 아이와 폭력을 행사한 두 명의 아이, 우리 아이까지 교무실 복도에 세워놓고 선생님이 슬리퍼 발로 찬 거였다. 아이가 화가 난 이유는 발에 맞은 일보다는 선생님의 해결문제에 있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선생님께 먼저 알려야 한다는 이유였다. 아이의 말을 듣고 나도 속으로는 무척 화가 났지만 선생님께서는 다른 속뜻이 있을 것이니 분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다독거렸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일을 다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경험 외에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는 작고 큰 아이들의 폭력 사건을 듣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다.

학교 폭력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이 늘어난 다는 것은 아이들 주변에 아무도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자살충동을 느낀 학생이 응답자 10명중 3명이라고 하니 놀랍다. 그 중 내 아이도 포함될 수 있다는 통계다.

학교폭력에 대한 강의도 중요하고, 사회 캠페인도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지속적인 예방이 필요하다고 본다. 성장과정에 있는 십대 아이들은 어른의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통해 크로머에게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듯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데미안 같은 신적인 강한 존재가 곁에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

자신의 소중한 자아를 발견하게 하는 데미안, 누군가로부터 자신이 뜨겁게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닫는 하는 데미안,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희망 세계를 알게 하는 데미안이 되어주어야 한다. (강진고을신문기자, 소설가,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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