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 시대
강진군 서성리
윤명님 할머니(89세)
“그때는 쌀이 귀한게 촌장에 가서 팔아다가 읍에서 가마니로 묶으고 도시로 보내어.”
윤 할머니는 18살에 30살 노총각 잡화점 점원에게 시집왔다. 남편은 조실부모하고 혼자서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던 총각이었다. 그때 옆집에 살던 호남관(현 명동식당 외할머니)주인이 성실한 청년이라며 중매를 했던 거였다. 윤 할머니는 결혼 후 잡화점을 하던 남편을 돕다가 점점 가게를 넓혀 쌀장사를 시작했다. 쌀이 귀한 시대였던 1940년대 전국에서 쌀을 사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촌장에 가서 쌀을 사다가 다시 팔곤 했는데, 특히 부산 사람들이 쌀을 사러 많이 왔었다.
“곡식이 귀한 시상여, 젊어서 자식들 맥이고 살랑게 왜 고생이 없겄어, 그래도 젊어 고생은 암시랑도 안해······늙어서 내 몸 이기고 먹기 싫어도 묵어야만 산께 그게 고생이지.”
윤할머니는 남편의 장사를 도와 살림을 차근차근 늘려나갔다. 바쁠 때는 끼니를 제 때 먹지 못하고 막걸리 한 사발로 요기를 하기도 했지만 살림이 늘어나는 데 재미가 있었다. 윤할머니의 부지런하고 알뜰함은 피 붙이 하나 없는 외로운 남편에겐 큰 힘이 되었다. 큰딸과 아래로 4남을 둔 윤 할머니는 먹고 살기위해 큰 딸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큰 딸이 애기 키고 살림 다했지, 동생들 다 업어 키고······막둥이는 젖도 못 맥이고 맞겨놓다 시피 했는데 어린것이 오죽했겄어.”
곡식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였다. 겨우 수소문해서 초동마을에 쌀 10가마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하루 종일 걸려 자전차로 한 가마니씩 날라 왔다. 하지만 곡식 값이 너무 비싸 동네 사람들에게 이윤을 붙이고 팔수가 없어 그대로 넘겼다. 타지 사람에게 좀 더 좋은 가격을 받고 팔수도 있었지만 그런 양심으로 장사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장사를 했기에 동네에서 좋은 인심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생전 귀때기 한번 안 맞고 이년 저년 소리도 안 듣고 살았어. 장사의견이 안 맞은 것은 있었어도 징하게 좋게 살았제.”
77세로 돌아가셨다는 남편을 참 좋은 양반이었다고 말하는 윤할머니. 1년 정도 병을 앓던 남편이 ‘이제 죽어도 원한이 없네, 이와같이 좋은 세상 못 다살고 간 것이 원통하네.’라고 말했다며, 자신 또한 이 좋은 세상 더 살다가야 겠다며 웃으신다.
보기만 하여도 넉넉하고 후덕한 마음이 엿보이는 윤할머니를 보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참으로 처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홀홀단신으로 부모 복 없었던 남편에게 모든 역할을 다해주었던 윤할머니. 남편으로 하여금 가난을 이겨낼 큰 힘과 용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식구가 없은께 참말로 외롭더만, 시부모와 산 것이 부럽고 시동생간 오고가는 것이 부럽고, 명절 때 애들 좋은 옷 입혀 데려갈 시댁이 없은게 눈물나고 외로와.”
살림도 늘어나고 아이들은 잘 자라주어 남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그 모든 것을 보여줄 시댁이 없다는 것이 윤할머니의 또 다른 아픔이었을까. 시부모가 있었다면 아마도 며느리를 업고 다니고도 남았을 듯싶다.
함께 살고 있는 큰아들(신중기65)과 함께 살고 있는 윤할머니는 어버이날 아들들(막내아들 신영호)이 꽃다발이고 돈봉투고 맛있는거 잔뜩 사와 즐겁게 보냈다며, 자식들이 모두 효자라며 칭찬을 했다. 작년 겨울부터 무엇이고 먹기가 싫어지더니 기운이 떨어져 마당에서 넘어져 어깨를 다쳐 고생도 했다며, 자꾸 밥이 먹기 싫어진다고 했다. 요즘은 교회에 가는 일 산책과 가까운 노인들과 맛있는 음식 사먹는 일로 즐겁게 지낸다는 윤할머니의 한결같이 웃는 얼굴에서 그저 복이 굴러 들어올것만 같았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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