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의 문학돋보기
주홍글씨를 단 사람들
사회에서 지도층이라고 불릴 명함을 가지고 있으려면 스스로가 얼마나 처신을 잘해야 하는지 알 것이다. 그 처신에 따라서 한 사람에 대한 평판이 생겨나고, 사회적 지위를 갖고자 할 때는 다수의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그 심판은 때로는 너무 가혹해서 알지 못하는 조상이 지은 죄까지 끄집어내어져 한 사람의 현실을 뒤덮어 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이치를 크게 따져보자면 기독교에서는 원죄라 하고 불교에서는 업보라 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조상의 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살아간다. 인간의 삶도 자연의 한 일부여서 고개 숙여야 할 사람이 큰 소리를 내면 끊임없이 괴로움이 뒤따르고 사회전체에 혼란을 가져온다. 원죄나 업보는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다. 그래서일까 필연(必然)의 한자풀이가 큰 의미를 준다. 반드시 필(必)은 마음심(心)에 삐침별 (丿)이 합쳐져서 마음에 깊이 각인 시키려면 반드시 말뚝을 박듯이 해야 된다는 뜻, 즉 반드시, 꼭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 그럴연(然)은 육(肉)과 개견(犬), 불화(火=灬)가 합쳐져서 고기를 태울 때는 연기 나는 것이 당연하다' 즉 우리 속담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우주 자연의 이치에 합당한 것을 일컫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이나 말 한마디가 이 우주에서 얼마나 크고도 멀게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종교에서부터 찾을 수 있고,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종교 안에서 평안을 찾고자 한다.
매일같이 접하는 세계의 많은 이슈들을 제외하고라도 우리나라, 작게는 우리 지역에서 벌어지는 많은 부조리를 접하고 산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 이제는 구지 고등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이것은 정말 아니야, 또는 옳다의 목소리를 낼 줄 안다. 이처럼 사회 이슈가 되는 문제들이 지도층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권다툼으로 먹칠될 때, 그것들이 삶 전체에서 얼마나 큰 몫을 차지하기에 저렇게 아귀다툼을 하는 것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사회의 시끄러운 현상은 어쩌면 예전보다 어느 정도 투명한 사회로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로 더욱더 투명성처럼 가공하고 포장되어진 모습이라고 가정하는 사람도 있다. 부정부패 없는 완벽한 정치권력은 불가능하지만, 국민들의 수준을 깔보는 권력자들의 행태가 도를 넘치면 결국 주홍글씨를 달고 심판을 받는다. 정치권력은 뜻이 다른 개인 또는 집단의 행동을 자기들의 뜻대로 제어하기 위해 힘을 발휘하기에, 사회는 권력을 쥔 자들의 논리대로 이끌려서 국민들의 시각은 주홍글씨를 어느 쪽에 붙여줘야 하는지 흐려지고 만다.
우리 현실에서는 나다니엘 호손의 작품 주홍글씨에 나오는 헤스터 프린처럼 가슴에 A자를 달고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넘쳐나는 것 같다. 그러나 헤스터 프린은 가슴에 단 A(Adultery 간음)에서 오랫동안 조용히 참회하는 삶을 통해 A(Able 유능함), A(Angle 천사)로 바꿔놓는다. 여기서 그녀의 삶을 돌아볼 필요를 느끼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가 다시 사회 속에서 당당해지려면, 그녀의 삶처럼 어느 정도 회개의 시간이 필요함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세간에 존경을 받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 이면조차도 존경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주홍글씨에서 아서 딤스데일 목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누구도 그가 죄를 지을 만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설교는 모든 사람을 감동으로 이끌지만, 정작 자신은 죄의식에 시달리다 어느 날 밤 청중 앞에서 죄를 고백하며 죽어간다. 그 대신 죄의 댓가로 가슴에 A자를 금실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담담하게 앞길을 헤쳐 나가는 헤스터 프린은 정신적인 죄의 근원을 스스로 풀어 버렸다. 호손의 주홍글씨는 청교도적 엄격한 윤리와 굴레 속에서 인간본성을 옥죄고, 이 같은 종교적 관념이 오히려 인간을 얼마만큼 고통 속에 신음하게 만드는지 보여주고 있다.
누구라도 나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어떤 사람에게 죄인이라고 마구 돌멩이를 던질 자신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또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어서, 진정 부합리한 일들이 묵과되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알지 못하는 조상의 속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공금횡령이나 사기 등의 전과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큰 상을 주워지기도 하고, 선거에 당당하게 나오는 모습들을 접할 때, 사회 지도층에서 벌어지는 각종 부패현상이 많은 사람들을 참으로 뻔뻔하게 만들어가는 구나 싶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일터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고, 빈둥거리며 권력 옆을 기웃거리다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적어도 사회에서 인정받을만한 사람이라면, 종교적 죄를 떠나서 인간들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법질서에서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주홍글씨에서는 지배층에 있는 사람들이 청교도적 엄격한 윤리를 악용해 왔듯이, 지금은 인간이 만든 법제도가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해석되고 있어서 때로는 양심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있는 것이 아니구나하고 헷갈릴 때가 있으며, 무조건 추종하고 보는 도덕불감증 증세의 심각성을 느낀다.
주홍글씨는 사실 지나치게 도덕으로 무장한 청교도의 편협한 생활에서 인간미를 찾기 위한 작가 호손의 몸부림이며,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비인간적인 행태를 서슴없이 자행하는 자들에 대한 일갈이지만, 인간의 필연적 인과성을 무시하고는 주홍글씨 A는 바뀌는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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