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편 덕충부
흐르는 물에는 자기의 모습을 비춰 볼 수 없다.
노나라 왕태의 이야기다.
왕태는 형벌을 받아 발 하나가 잘린 사람 즉 올 자이다. 이런 왕태에게 따르는 무리가 공자의 제자와 맞먹을 정도로 많았다.
상계는 공자의 고향 노나라에서 공자를 능가할 정도로 이름이 높은가를 묻고 있다.
상계가 공자에게 물었다.
왕태는 외발인데 따르는 무리가 선생님과 노나라를 양분할 정도로 많다고 합니다. 또한 왕태는 강의나 토론을 하지 않아도, 빈 손으로 가서 한 아름 앉고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는 말이 없는 가운데 가르침이 있고,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마음에는 이루어진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선생은 성인이시다. 나도 아직 그를 만나보지 못했지만 장차 스승으로 섬기려 하는데, 나보다 못한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노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을 이끌고 가서 그분을 따르려 한다.”
상계가 말 했다. “그분은 외발인데 선생님 보다 훌륭하다니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의 마음 씀씀이는 뭔가 다른 데가 있는 가 봅니다.”
“사람들은 죽고 사는 문제를 가장 크다고 한다. 그러니 생사의 문제 에서도 동요하는 일이 없고, 천지가 뒤집힌다 해도 꼼짝 않는다. 만물의 진실을 통찰하여 현상의 변화 같은 것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일체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면서도 근본이 되는 도를 잃지 않는다,”
상계가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중니가 대답했다.
“틀린 것에서 보면 간과 쓸개도 초나라와 월나라만큼이나 멀지만. 같은 입장에서 본다면 만물은 모두 하나라네. 왕태 같은 분은 눈으로 즐기고, 귀가 좋아 하는 것을 모른다네, 만물은 똑 같은 것이라고 볼 뿐, 바깥모습의 변화 따위는 보지를 않아. 그래서 발이 하나 잘려도 옷에 묻는 흙을 털어내는 정도로 생각 할 뿐이야.”
상계가 말 했다. “그 분은 지혜로운 마음을 터득하고 터득한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가는 등, 자기 수양만 했을 뿐인데 왜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들까요.”
공자가 대답했다.
“사람이란 흐르는 물에는 자기 모습을 비춰 볼 수 없어. 고요한 물에서만 자기 모습을 비춰 볼 수 있지. 그러므로 오직 정지하고 있는 물만이 자기 모습을 비추고자 하는 사람들을 멈추게 한다. 땅의 식물 중에서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사철 푸르다. 목숨을 받은 인간 가운데, 오직 순임금만이 홀로 천성을 옳게 지녀 올바르게 살고, 또한 백성들을 올바르게 인도 했다. 타고난 대로 살면 두려움이 없다. 한 사람의 용사가 명예를 얻고자 수많은 적군 속에 뛰어든다. 명예를 위해 자기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구하는 것도 이와 같은데, 천지를 지배하고 만물을 포용하여 육신을 임시 거처로 여기며 자기의 귀와 눈을 장식품으로 생각하고 만물이 하나임을 깨닫고,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런 왕태를 따를 뿐 그가 무엇 때문에 사람을 모으려 하겠느냐?”
신도가 또한 올자다. 자산과 함께 백혼무인 밑에서 배웠다.
어느 날 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나가면 자네는 남고,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남겠네.”
다음날 다시 스승의 집에서 함께 만났는데 자산이 거듭 다짐 하였다. “어제 내가 먼저 나가면 자네가 남고, 자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남겠다고 했네. 지금 내가 먼저 나가려 하니, 자네가 남겠나. 어찌 하겠는가? 그런데 자넨 일국의 재상을 보아도 비키지 않으니 자넨 재상과 맞먹겠다는 건가?”
신도가가 대답했다. “선생님의 문하에 재상 따위가 어디 있는가?”
“자네가 아무리 재상이라 할지라도 남을 함부로 깔보아서는 안되네. 이런 말이 있네. 거울이 깨끗하면 먼지가 끼지 않고 먼지가 있으면 거울을 밝게 볼 수 없다고 말일세. 오랫동안 현인과 같이 있으면 자기 허물이 없어지네. 그런데 자네는 선생님한테 큰 도를 배우고 있으면서 아직도 이런 말을 하니 제대로 된 사람인가?”
자산이 비웃었다. “자넨 벌을 받아 올 자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요임금처럼 선하게 살려고 하는데 자네의 덕을 돌아보고 좀 반성 하는 것이 어떤가?”
신도가가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여 자신의 발(올자)을 베이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기는 쉬우나, 한마디 변명도 없이 이왕 발을 베이게 된 이상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이다. 덕이 높은 사람만이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 할 수 있지. 인간은 결국 예(羿) (전설상의 명궁)의 과녁 안에서 노니는 것과 같네. 화살이 맞지 않는 무사가 있고 화살이 맞는 무사도 있을 것이니 그것은 각자의 운명이라네. 세상에는 자기 발이 둘이라고 해서 나를 비웃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운이 좋은 것이라네. 그럴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선생님 앞에만 가면, 깨끗이 잊게 되니 선생님의 덕이 내 마음을 씻어주는 것이라 생각하네. 가르침을 받는지 19년이 되었지만 한 번도 선생님 앞에서는 자신이 불구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네. 지금 우리는 마음으로 사귐을 맺어야 하는데 육체의 겉모습만 문제 삼는다는 것은 잘 못이 아니겠는가?”
자산은 승복하고 태도를 고쳐 잡고 말했다.
“잘못했으니 그만 해 두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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