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이현숙 기자의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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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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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기자의 횡설수설
아름다운 강진만들기

<이현숙 기자의 횡설수설>

아름다운 강진만들기

 

도시에서 타지생활을 하는 사람에 비해 시골에서 타지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애로점이 있다. 그 애로점을 들자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와 동떨어져서는 결코 충족된 삶을 살 수 없다는 통념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상의 삶과 결부된 인과관계에서 느끼는 회의가 먼저 다가온다. 이처럼 도시는 대부분의 사람이 타지생활인 것에 비해 시골은 지역 토박이들이 사회를 형성하고 있어서 쉽게 섞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작은 지역일수록 조직처럼 얽혀 있는 지연 학연 등 각종 사사로운 모임까지 끼리끼리 어울린다. 그래서일까 누굴 만나더라도 어느 마을 출신인가. 아버지가 누구신가. 또는 누구와 동창인가, 등등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기에 외지 사람의 소외감은 일시적이지 않고 오래토록 지속된다. 이런 지역색깔은 지자체가 되면서 더 짙어진 느낌마저 든다.

최근 귀농인구가 늘고 있다는 소식들을 많이 접하면서, 그들이 도시 타지가 아닌 시골 타지에서 적응하는 문제가 나에게는 작아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나 또한 20년 가까이 타지 시골에서 살아오고 있지만 타지사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때때로 느끼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도 얼마 전 귀농 친구가 생겼다. 내가 귀농 친구라고 칭하는 것은 나이가 동갑이라는 친근감에서 붙인 호칭이기도 하지만, 나도 타지에서 살면서 극복한 일들이 많았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물론 주부가 고향에서 결혼하여 줄곧 사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남편이나 아내 둘 중 한 사람이 고향이거나, 친척 등이 이웃해 있는 경우는 많다.

이웃에 있는 그녀는 물론 남편을 따라 귀농했고, 농촌에서의 새로운 삶을 위해 여러 가지 고심을 하고 있다. 마침 그 집의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동갑이라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공유하면서 대화가 시작됐다. 부부가 아직 사십대 후반이라 귀농하여 열심히 노력하면, 나중 도시에서보다 행복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한껏 갖고 있다.

그런 그녀의 농촌 적응을 보면서 나의 첫 시골생활이 자꾸 떠올랐다. 도시에서만 자랐던 나는 사실 농촌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 그래서였을까,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농촌총각의 말이 모두가 신기하게만 들렸었다.

당시 지금의 남편이 있다는 전남 강진을 알기 위해 지도를 펼쳐보았더니 저 남쪽 끄트머리에 있었다. 눈에 사랑의 콩꺼풀이 쓰였던 나는 어느 날 봄 남편을 따라 강진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날 창밖으로 보이는 질펀한 평야에는 초록빛 잔디가 싱그럽게 펼쳐져 있었는데,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상상을 하던 나는 계속적으로 펼쳐진 잔디밭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고민 끝에 옆 남자에게 조심스레 물고 말았다.

“저 논에 왜 저렇게 많은 잔디를 심어 놓은 걸까”

이때 남자는 속으로는 한심스러웠겠지만, 조금은 어이없는 표정, 조금은 다정다감한 말투로 그 모두가 보리밭이라고 말해주었다.

남편 또한 이곳이 고향은 아니다. 농대를 졸업하고 인연에 따라 강진에 와서 농사를 짓고 있었고, 나 또한 어쩌면 그에 맞는 신부였다. 내가 신혼생활을 한 마을은 그야말로 오지의 산골마을이다. 상사로 군대를 제대했다는 70대 할아버지, 귀가 많이 먹은 할머니, 아들 며느리는 서울로 돈벌이를 떠나고 셋씩이나 되는 초등학교 손자들을 돌보는 할머니, 술주정뱅이 아들의 횡포에 지쳐 며느리는 도망가고 남은 남매아이와 할머니, 혼자살고 싶어 돌아와 혼자 사는 할머니, 한마디로 처지가 곤궁하다 못해 소외된 사람들뿐이고, 그 집들에서 키우는 개와 강아지 숫자가 어쩌면 더 많고 씩씩해 보였다.

지금은 모두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는 분들로서 가난해도 정만은 듬뿍했던 분들이었다. 그 분들은 마당에 풀 한포기 나기가 바쁘게 뽑아내는 부지런함이 있었으며, 허리가 지팡이처럼 굽어도 일을 마다하지 않고 돈을 소중히 여기는 분들이었으며, 감자 몇 개를 쪄도 이웃과 함께 먹을 줄 하는 그야말로 강진의 인심을 그대로 갖고 계신 분들이었다. 그러나 불과 18년 이후, 어르신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그 곳에는 이제 잡풀만 가득하고 동네는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그곳에서 6년 가까이 생활하고 읍으로 나왔지만, 그 동네는 우리 아이들의 고향이자 나의 첫 신혼생활의 터전, 그리고 나에게 농촌생활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던 어머니들이 묻힌 아름다운 곳으로 남아있다.

물 좋고 산 좋은 농촌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시집와 다문화가정을 이루면서, 농촌은 새로운 변화시대를 맞고 있다. 따라서 이제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농촌의 길은, 서로가 협력하여 아름다운  마을들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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