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길목에서 「우리들의천국」을 꿈꾸는 사회
-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중심으로 -
장 여옥
한 달이 넘도록 촛불집회가 집행되고 있다. 한 자루의 촛불을 통하여서 자신들의 타는 마음을 밤이 새도록 태우고 싶은 염원이다. 연약한 불꽃을 한데 묶어서 우리들이 추구하는 행복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밝히고 싶어 한다.
거리의 민중들은 암흑을 걷어내고 싶다. 어두운 정치 ․ 경제 ․ 사회 ․ 교육 등의 상황을 태워 버리고 싶은 바람이다. 이 밤을 밝혀 찬란한 우리들의 세계를 건설하고자 한다. 나(피지배자)와 너(지배자)가 이 땅에 함께 공존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이상향으로만 머물 것인가? 불평등이 자리하지 못하고 소외가 없는 세상이 바로 유토피아에 해당한다. 유토피아에 대한 현대인의 갈망은 고대인의 정신적 구조와 유사할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이상적인 세계를 동경해 왔으며, 철학과 문학에서 이념적 혹은 예술적 형상으로 표현되어 왔다.
우리의 고장 이웃에 자리한 장흥군 대덕면에서 태어난 작가 이청준은 소록도를 중심으로 한「당신들의 천국」(1976년)을 통하여서 우리들의 사회에 오늘도 질문을 예시하고 있다. 그는 섬진강 서쪽지역의 남도소리로 흥행을 하였던 영화「서편제」의 원작자이며, 영화화 되었던 ‘밀양’의 원작으로「벌레이야기」등의 주옥같은 작품을 우리들의 시대에 선물하고 있는 작가이다.
「당신들의 천국」에 나타난 작품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작품의 주인공인 현역 군인 조백헌이 나병 환자들을 수용한 소록도 병원 원장으로 부임한다. 그는 부임인사도 하지 않고 환자들의 자유의사를 알고자 하며, 예전 원장들과는 다른 자세로 섬을 돌아본다.
원장을 안내하던 보건과장은 그가 일제 강점기의 주정수 원장과 같은 사람은 아닌가 의심한다. 주 원장은 자기신념을 위해 섬을 낙원으로 꾸미려다 원생에게 살해 되었다.
강한 추진력을 가진 조 원장은 축구팀을 만드는 등 5천여 명의 원생들과 섬사람들의 마음을 얻은 다음 바다를 막아 간척지를 만드는 엄청난 일을 저돌적으로 추진한다. 일명 오마도 간척사업이다. 원장의 강한 의지와 신념으로 착수하게 된 간척지는 원생들의 목숨을 건 노동으로 그 모습을 간신히 드러낸다. 하지만 땅은 올라왔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정부는 육지주민들과 합세하여 그들의 땅을 빼앗으려 음모를 꾸미며, 원장은 전임발령을 받게 된다.
조원장은 5년 후 평범한 한 사람으로 돌아온다. 그는 실패한 간척지 대신 건강인 서미연과 음성 환자 윤해원을 혼인시킨다.
「당신들의 천국」에서 조백헌 원장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획하였던 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조 원장은 과거의 원장들이 조성하려 하였던 천국을 꾸미고자 하였던 것은 아니다. 섬사람들이 구차하게 생을 지탱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확실한 터전을 만들어 주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들만의 완전한 삶의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곧 낙원이라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배자의 권력으로부터 출발한 낙원 건설이란 권력자의 왕국일 뿐이었다. 지배자가 이룬 왕국은 곧 피지배자의 지옥이라는 등가성이 성립된다. 조원장은 천국건설을 패배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패배는 섬사람들의 승리로 이어진다. 조원장은 자유인으로 승리를 꿈꾸며 섬으로 들어간다. 자유와 사랑의 실천적 화해라는 소명감으로 귀환한 것이다. 그는 그토록 섬을 위해 헌신하면서 사랑하여 섬사람들로부터 믿음을 얻지만 그들에게 자유를 주는데는 실패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일반인 조백헌은 열정적인 축사를 연습한다. 건강인 서미연과 음성환자윤해원의 결혼을 통해 육지와 섬을 잇는 둑으로 여긴다. 1970년대의 한국사회는 그들에게 낙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상인들의 횡포는 그들을 더욱더 고립되게 만들어 버렸다. 섬사람들이 추구하며 만들었던 낙원은 층위가 있는 사회구조에서 우리들의 천국은 사라져 버린다. 당신들의 천국만 자리하게 된다.
「당신들의 천국」은 사실주의 소설로서 전남 고흥군에 소재한 소록도 이야기이다. 1916년 자혜병원을 출발점으로 하여 오늘날 국립소록도병원에 이르는 한센병전문병원이 있는 곳이다. 개원 이후 원생들은 일제치하에서 군수물자 생산에 동원되었고, 병원 확장을 위한 강제노역으로 인해 참혹한 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때에 세계 최대의 나요양시설로 만들겠다는 4대 수호(周防正季) 원장은 원생들을 노예로 부리며, 마침내 자신의 동상을 세워 원생들에게 참배까지 하도록 한다. 1942년 6월 20일 원생의 한 명인 이춘상이 살해하게 된다. 해방 후 병원의 운영권을 둘러싼 참사가 있기도 한다. 오마도 간척공사는 1962년 당시 병원장이던 조창원 원장에 의해 추진되었는데 원래의 목적은 음성치유자가 정착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연재해와 예산부족 등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서, 애썼던 원생들의 기대와 다르게 사업 주체가 전라남도로 이전 되었고, 1988년 난관 끝에 공사는 완공되었지만 소록도 주민과는 상관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 현재에도 조창원(영남의료재단 복지의료센터 원장. 78세)원장은 간척지의 정당한 분배를 위해서 그 진실규명을 하고 있다.
「당신들의 천국」은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과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한 인간의 의지를 보여 주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그것은 1970년대의 권력관계를 반영하면서 그것을 넘어서 왜 우리가 지상에서 ‘우리들의 천국’을 만들지 못하는가를 고민하도록 만든다. 자유와 사랑과 믿음이란 구조적 관계성을 이해하기는 쉽지만 실천이란 우리들 인생사의 숙제로 남는다.
우리사회는 ‘우리들의 천국’이 도래하도록 촛불을 밝혀가며, 우리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힘의 질서는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인간들을 억압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정치적 집단들은 ‘당신들의 천국’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우리들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예측 불허한 세상사에서 보이지 않는 힘에 억눌림을 당하는 우리의 삶은 결코 유토피아를 이룰 힘을 억압받고 있지만, 거리에 민중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어보려 안간힘을 쏟는다.
우리들의 인생사에서「우리들의 천국」은 과연 존재 할 수 있을까?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