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1만년, 삶의 모든 것을 묻고 답하는
「마하바라따」전 5권 출간
박경숙 작가 강진마량 박종만 옹 8남내 중 막내
「마하바라따」는 인도의 고전문학을 상징하는 대서사시이자 「라마야나」와 더불어 인도의 정신문화를 지탱하고 있는 두 기둥 중의 하나이다. “「마하바라따」 안에 있는 것은 이 세상에도 있고, 「마하바라따」안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도 없다.” 인도 사람들은 이렇게 믿고 있다. 이런 믿음처럼 이 한 권의 대서사시 안에는 인도인의 정신과 사상, 지식과 지혜, 신화와 전설과 역사, 사랑과 죽음, 윤리와 형이상학, 우주관 등이 모두 담겨져 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장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합친 것의 여덟 배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마하바라따」는 어떤 형식, 혹은 특정한 성격의 책이라고 한 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제2권 말미에 나오는 부록1「마하바라따」를 처음 읽는 독자들을 위하여’에서 나온 대목이다. 좀 더 이 부록을 읽어보면 간디가 아침저녁으로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다는 「바가와드 기따」도 「마하바라따」일부이고, 발리우드로 불리는 인도의 영화 산업도 「마하바라따」의 온갖 이야기를 저본으로 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1980년대인 인도의 국영 TV에서 40부작으로 만들어져 80%의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도의 거리를 텅 비게 만들었던 것도 「마하바라따」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이 대서사시는 단순히 옛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삶의 지혜로 남아 있으며,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하나로 통합해 현대에 들어와서도 광대무변한 상상력의 보고(寶庫)이자 결코 마르지 않은 저수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내년 4권 출간에 이어 총 20권 출간 예정
“1998년부터 이 작업을 시작해 총 20권 분량의 「마하바라따」완역을 마친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 원고는 초벌이어서 고치고 다듬으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출판사에서는 빨리 해달라고 재촉하지만 지난 9월에 5권을 냈고 내년까지 4권을 낼 계획입니다”
옮긴이 박경숙의 말이다. 일류 최고의 고전인 「마하바라따」는 싼스끄리뜨어에서 세계 3번째로 완역을 했고, 그 기간만도 2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20년간 싼스끄리뜨어 번역과 공들인 주해로 그 엄청난 일을 해낸 박경숙 작가는 강진 마량면 하분마을에서 태어났다. 현재 살고 계시는 박종만(82세) 옹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박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소설가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특히 좋아하는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였다. 하지만 어둡고 칙칙한 주제와 내용보다도 밝고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작품을 더 좋아하게 되어 「마하바라따」를 번역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만큼 밝고 맑은 세상과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천성이 박 작가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고향마을이 눈에 선해요. 어렸을 때 엄마가 마량 장에 가시면 된재 마루까지 따라 갔어요. 힘들어서 마량장까지 따라갈 엄두를 못 내고 그 마루에서 한나절 엄마를 기다리곤 했는데, 왜 과자를 안 사가지고 왔느냐는 질문에 ‘아야, 오늘 장에 과자 파는 아저씨가 죽어뿌럿어야.’ 하고 말하면 ‘으짠다고 하필이면 장날 죽어뿌럿으까이’하고 못내 서운해 했던 계집아이였지요. 그 때 엄마를 기다리며 한없이 바라보던 그 마량 앞바다는 호수 같았는데, 지금도 늘 떠오르곤 해서 일 년에 한 두 차례는 반드시 가보곤 합니다”
그런 박 작가는 하분 마을이 장흥 대덕과 경계인데다가 마량초등학교가 너무 멀어 대덕신리초등학교와 대덕중학교. 관산고등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언니들이 결혼해서 부산에 살고 있는 인연으로 부산 동아대학교 독문학과를 다녔다.
인도로 건너간 사연
박 작가가 인도로 건너간 사연은 어느 한 스님과의 조우 때문이었다. 법명이 현음 스님으로 송광사와 광주 증심사에 계신 분이었는데, 대학을 졸업한 후 우연히 만났을 때 부처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박 작가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상태였고, 막연하게 신은 두렵고 무서운 대상이었다. 그리고 소설가의 꿈을 갖고 있었는데 그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부처는 인류 스승 중에서도 아주 훌륭한 분이지. 부처는 45년간 4만8천 법문을 설하셨지만 열반할 때에는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뚝 떼었어. 사바세계의 중생을 위해 부처는 설파를 해온 셈이지. 그런 부처의 인간적인 면을 써보라. 인간으로서 훌륭한 분이셨지만 지금까지 그 분의 얘기를 쓴 책은 없느니······.”
박 작가는 스님에게 물었다. 그 분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인도에 가라. 인도에 가서 빠알리어를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초기불교경전의 빠알리어를 공부하면 인간적인 부처를 쓸 수 있다는 것이었고, 몇 년 공부하면 되겠느냐고 묻자 2년 정도하면 된다는 말에 그만 마음이 동하고 말았다.
하지만 부친이 허락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부친에게는 그녀가 8남매 중 막내였으므로 가장 안쓰럽고 짠하게 여겨지는 자식이었다. 그래서 비자 만들어놓고 아버지 저 인도로 떠납니다, 라고 쪽지를 남겨놓은 채 훌쩍 떠났다. 언니들의 도움이 컸는데, 부친은 막내딸의 인도행을 알고 집안이 난리가 난 것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이 당연한 일이었다.
박 작가는 인도에서도 뿌네라는 큰 도시에 정착했다. 그리고 인도에 있는 대학을 기웃거리면서 1년 반 가량 인도의 이곳저곳을 다녔다. 타고난 역마살 때문이기도 했지만 인도란 땅은 모든 게 생소했고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박 작가는 그렇게 동가식서가숙으로 떠돌아다니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다. 당시 남편은 인도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생명에 대한 지식)와 요가를 공부하고 있었다. 남편은 만나자마자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다며 박 작가를 채근했다. 다시 뿌네로 돌아와서 공부할 마음을 다잡았다.
인도의 빠알리어와 싼스끄리뜨어를 통해 인도 문화와 문학공부
그런데 언어를 모르고서는 대학에 바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대학예비과정으로 기초적인 공부가 필요했다. 4년간 공부를 한 끝에 뿌네대학교 대학원 빠알리어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이미 싼스끄리뜨어의 매력에 빠진 상태였다. 싼스끄리뜨어가 주는 언어의 유희는 박 작가를 현혹시켰던 것이다. 언어를 알아가는 기쁨, 그것은 실로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기쁨 그것이었다. 그래서 졸업한 이듬 해 다시 싼스끄리뜨어과 석사과정울 마쳤다. 그렇게 공부를 하는 사이 첫째와 둘째를 낳았다. 남편이 아기를 봐줘서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이 세상 누구보다도 최고의 외조를 해 준 셈이었다. 박 작가는 석사과정을 마치기가 무섭게 「인도의 신들-베다, 이띠하사, 빨리어 비교연구」로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박 작가는 국비 장학금을 탔고, 언니들의 도움 또한 컸다.
박사학위 논문을 마치고나서 박 작가는「마하바라따」번역을 시작했다. 두 번째로 대학원을 졸업하던 1998년 일이었다. 새물결 출판사 사장은 안도까지 와서「마하바라따」초벌원고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고 고장 계약하자며 덤벼들었다. 그래서 선인세로 받은 돈이 1억 원 가량 된다. 「마하바라따」를 번역하기 이전에 박 작가는 고서 두 권을 번역했는데, 왕과 산골처녀가 사랑을 해서 지금의 인도 조상이 되는 이야기인 「샤꾼딸라」와 풍요의 신 ‘꾸메라’의 저주로 신통력을 빼앗긴 ‘약샤’가 아내와 떨어져 살게 되면서 아내에 대항 절절한 그리움을 구름을 통해 전하려는 연작 서정시「메가두따」였다.
박 작가의 두 자매도 올해와 내년 책 발간
박 작가는 두 자매를 두고 있다. 고등학생인 큰 딸 두 레양, 작은 딸이 두 메양이다. 아버지가 두 경우 씨여서 흔치 않은 두씨 성을 가졌는데, 이름이 모두 외자다. 그런데 큰 딸 두 레는 「마하바라따」와 함께 인도의 2대 대서사시로 알려진 「라마야나」를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고대 인도의 발키미가 지은 작품으로 전해지는 「라마야나」는 싼스끄리뜨어로 되어 있고, 모두 7편 24.000송(頌)이다. 작은 딸 두 메양은 청소년이 읽을 수 있는 짧은 「마하바라따」를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인도에서 태어나 인도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두 자매는 당연히 인도 말을 잘 하지만 한국유학생들이 명절 때면 80여 명 정도 찾아올 만큼 북적거리는 집이다 보니 한국말도 잊지 않고 잘 한다. 어머니 박 작가를 닮아 두 자매도 싼스끄리뜨어를 달통하고 있다는 대목이고, 앞으로 어머니처럼 큰일을 해낼 가능성이 무척 농후해서 인도의 문화와 문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일등전사가 될 것임에 떡잎부터 알아볼 수 있는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리산 기슭에 둥지 틀고 번역 일에만 매진하는 박 작가
박 작가를 만나기 위해 강진을 출발했을 때 오래 된 내비게이션 탓으로 순천에서 구례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금방 나타날 것 같은 남원시 산내면은 어이없게도 천은사를 통과, 구절양장의 길을 타고 노고단까지 올라서야만 했다. 아뿔싸, 가스차는 벌써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였다. 노고단에서 다시 급경사로 이어지는 길을 내처 달려 하늘 아래 첫동네를 지나고 다시 달궁마을을 지나자 박 작가의 집이 나타났다. 남편은 전주에서 요가를 가르치고 있고, 큰 딸 역시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박 작가 홀로 작업 중이었는데,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둘째딸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마침 금요일이기 때문에 남편도 전주에서 돌아온다고 했다.
이제 오십을 한 해 앞둔 박 작가가 인도에서 17년을 살다가 지리산 기슭에 둥지를 튼 것은 3년 남짓 된다. 박 작가를 만나던 금요일 오전까지 인도 빠알리어 사전(738쪽)을 A⁴용지 1.500매로 번역 완성한 날이어서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인도 빠알리어 사전은 그 많은 단어마다 불펜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우선 「마하바라따」5권을 출간했지만 갈 길이 멉니다. 20권 출간이 목표니까요. 내년에 4권을 낼 계획이지만 가장 고통스럽고 어려운 것은 역시 우리말로 옮기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말로 변환시킬 것인가, 아니면 주해(註解)를 달아서 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결국 주해를 달아서 진행하는 것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500 평을 텃밭을 가꾸며 산과 더불어 살고 싶었던 박 작가는 이번 빠알리어 사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으로 인해 이제 텃밭은 잡초로 우거지고 말았다고 한다. 대담을 마치고 방문을 나섰을 때 한뎃솥 위 바람벽에 귀신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무슨 그림이냐고 묻자 화재가 나 시커먼 그을림이 있어 두 딸들이 인도의 신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왠지 화광삼매에 빠져 있는 대예적금강신과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삿된 것을 물리친다는 신중탱화에서의 주인공 대예적금강신과 비슷하게 화광삼매에 빠져 있는 것 같아 박 작가의 집에는 누구나 함부로 얼씬거리다간 큰일 날 것 같았다. 적어도 「마하바라따」총 20권의 번역을 마칠 때까지는. 남원 송하훈 기자
“마하바라따는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책은 아니지만 ‘아바타’를 만든 영화감독이 가장 많이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하바라따」의 기본 줄거리
마하는 ‘크다’ ‘위대하고 대단하다’라는 뜻이며, 바라따는 고대인도 왕족의 이름이다. 따라서 마하바라따를 그대로 풀이하면 ‘위대한 바라따들’이 된다. 본문에 나오는 내용을 곁들여 풀이하자면 ‘바라따들의 위대한 탄생 이야기’가 될 수도 또 ‘〈전쟁을 중심으로 한〉바라따들의 엄청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언뜻『삼국지』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마하바라따』의 뼈대가 되는 이야기는 오늘날의 인도 북서부에 위치한 고대 왕국을 중심으로 바라따 족에 속한 사촌지간의 까우라와와 빤다와들 사이의 불화로 인한 왕권 다툼이다. 이 뼈대에 문화적 기름이 풍부한 인도라는 기름진 땅을 토대로 수세기 동안 신화와 종교와 사상이 덧대지면서 살이 붙고 근육이 이루어져 피가 통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는 누구도 넘어뜨리지 못할 ‘마하바라따’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제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중심 뼈대는 이 대서사시의 5분의 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대서사시는 중간 중간에 무수히 많은 전설, 로맨스, 종교, 철학, 도덕, 법 제도, 사회 제도, 의학, 천문학, 형이상학 등에 관한 무수히 많은 설화들이 촘촘히 종횡으로 아로새겨져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우주적 규모의 신비한 이야기의 성좌를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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