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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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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수농업현장을 찾아서(마지막 회)
지역 독창성을 관광화로 이끌다

 

일본 우수농업현장을 찾아서(마지막 회)

 

지역 독창성을 관광화로 이끌다

일본 선진농업현장에서 성공사례를 듣다

 

다섯째 날-➁오쿠니마치(목혼관) 견학

오지 산간촌에 불어온 문화의 새바람

오쿠니마치는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삼나무를 이용하여 강철제의 이음쇠로 조립하여 트러스공법으로 만든 일본 최대 목조 건물이다. 1988년 5월말에 개관한 오쿠니마치는 메스컴을 타면서 일본전체를 놀라게 만들었다. 사실 이런 시설물이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서 만들어졌다면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쿠니는 인구 1만 미만에 불과한 작은 농촌지역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시설물이 알려지면서 일본 전체에 큰 반응을 일으켰다. 오쿠니 지역이 산림으로 유명한 것을 말해주듯, 주변이 전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맘껏 쾌적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일본의 건물들이 거의가 목조건물이지만, 이곳 목혼관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목재기둥에서 웅장함이 느껴졌다. 이곳에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젊은 리더로부터 브리핑을 들었다.

농촌지역에 만들어진 이러한 기념비적인 시설물은 메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후 주민들 스스로가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각종 이벤트를 통해 지역 활성화 발판을 마련했다.

전통적으로 임업과 농업에 국한되었던 오쿠니 지역이 시민대학의 요람으로 성장하기 까지는 이 지역 젊은 리더의 등장과 연관되어 있다. 큐슈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고향에 돌아와 의회의원과 4년간의 의회의장직을 했던 미아자끼 노부토시씨는 당시 41세였다. 구마모토현의 각 지역에서 활력과 개성이 넘치는 지역 만들기의 갖가지 사업들이 시작될 때 이 젊은 리더는 자신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이용하여 유연의 자연을 이용하는 독창적인 지역 만들기를 시작했다. 이후 오쿠니마치에서는 지역에서 나오는 양질의 목재와 온천을 이용해 지역 활성화를 모색했고, 행정에서 의욕적으로 기획에 참여하면서, 지역 산업을 진흥시키는 사업들이 종합적으로 이뤄지고 거대한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현재 이 지역 온천은 큐슈지역에서 한 번 오면 다시오고 싶은 온천으로 손꼽히고 있다.

오쿠니마치는 산골지역의 특수성에서 독창적인 것을 찾아 그것을 이용해 교류의 폭을 넓히는 사고방식을 택하여 농촌을 활성화했다. 이 지역의 독특한 목조 디자인은 하나의 예술작품들이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지난 15년간 지역 활성화의 일환으로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의 새로운 바람은 민간에게 확산되었는데, 카페나 주유소 등 지역의 상가들이 목재를 이용한 예술작품으로 변화되면서 또 다른 관광화가 된 것이다. 또한 그 바람으로 인해 지역 농축산물도 관광객을 통해 판매 길이 열리었고, 관광과 연계된 지산지소의 장소가 되었다.

지금 오쿠니마치는 각종 회의, 연수, 공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전국적인 큰 행사인 일본 농구 리그전들이 개최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며, 도시사람들을 끌어들여 시민대학을 운영하는 것, 학교와 연계하여 농박 체험 장소로 활용하는 등 오지마을에 새로운 문화의 바람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또 다른 농촌의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섯째 날-➂우스키 농가 민박

고령화 농촌, 외지사람과 함께하는 즐거운 생활

대도시 중심에 있는 관공서의 농업 브리핑부터 시작한 일본 여행은 점점 일본의 농촌으로 향하고 있었다. 11월2일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은 농박이었다. 큐슈 오이타현에 있는 우스키시는 인구 45,000명의 도시로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지역이지만, 우리는 이 지역의 농촌마을 노쯔마쯔마을로 향했다.

농박을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이곳 농박 형태는 2002년 부녀자들의 움직임에서 시작됐는데, 그 이면에는 캇쵸무씨라는 독특한 사람이 있었다.

캇쵸무씨는 이 마을에서 만담을 잘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찾아온 사람들에게 우스운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점점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놀고 자고 가거라로 시작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이 체류형으로 바꿔지기 시작했다. 나중 캇쵸무씨가 지역 어머님들을 꼬드겨 시작한 농박이 하나둘씩 늘어나게 되었고, 부녀회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캇쵸무씨의 만담이라고 하는 스토리는 지금도 이곳 이시타마 노리코 부녀회장이 들려주고 있으며, 그 이야기의 하나는 이런 것이다. 그러니까 캇쵸무씨가 말 등에 짐을 싣고 길을 가던 중 말이 짐이 무거워 제대로 걷지 못하자, 불쌍해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짐을 들고 말에 올라타고 가더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형태의 다양한 캇쵸무씨 만담을 통해 웃음학교를 만들어 서로 공유하고, 외부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교류하는 등, 새로운 스토리를 엮어 농박을 재밌게 이끌어 가고 있었다.

농촌에 젊은이가 부족하기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에서 농박을 이끌고 있는 부녀회원들도 나이가 지긋해 보인다. 일본여행 중 오사카 중심부나 지역직매장이나 어디에서든 노인들의 모습이 흔하지만 차림도 깔끔하다. 일본은 이미 1885년에 초등교육에서 무상교육이 되었기 때문에 문맹은 오래전에 퇴치되었고, 전체 노인들의 수준이 꾀 높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비해 우리나라는 1959년에서야 초등무상교육이 실시됐기 때문에 노인들의 의식수준이 일본 보다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일본을 여러 면에서 따라잡고 앞지르고 있는 우리나라의 빠른 경제성장에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지역 농박의 형태는 집집마다 독창적인 방법으로 농박을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공무원가정, 미장원가정, 농부가정 등 다양한 가정의 농박이 되는데, 우리나라의 농박과는 형태가 달랐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박은 행정에서 개입하지 않으면 어려운 농박임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행정개입이 전혀 없는 민간 농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각 가정집에서 있는 그대로 체험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농박 개념은 돈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고령화된 농촌 사회에서 본인 스스로의 외로움을 관광객들로부터 덜고, 외지인들과 교류하며 오히려 즐거움을 찾는 형태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점이다. 따라서 우스키 농박은 농박 신청이 들어오면 순서에 의해 정해진 농박 가정으로 보내지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와도 또 다른 농박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일본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이날 오후 5시경 마을 회관에 도착하자 각 농박 가정에서 마중 나와 환영해주었고, 우리는 정해진 가정으로 셋 넷씩 묶어져 흩어졌다. 나와 함께 네 명의 여자는 한 팀이 되었고, 마중 나온 노부부의 소형차에 나눠 타고 따라갔다.

67세, 65세 노무라상 부부는 1남 2녀의 자녀를 두었으나 모두 출가하고 연금으로 생활하면서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를 다니고 있었다. 농박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 부부는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기본적인 한글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저녁상을 할머니가 정성껏 준비해왔는데, 처음엔 따뜻한 녹차와 마른과자와 귤을 내오시더니 이어 익힌 야채 모듬반찬과, 훈제고기와 생야채 모듬, 나중에는 카레라이스와 직접 만드셨다는 카스테라와 감을 차례로 내오셨다.

저녁식사를 하기 전 소주를 드리자 할머니가 정종을 꺼내 오시며 우리에게도 한잔씩 권하셨다. 우리는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 때문에 온갖 몸짓을 섞어가며 소통하기에 바빴다. 두 분도 한국말이 적힌 종이를 들여다보며 대화를 했고, 우리도 준비한 쪽지를 들여다보며 대화를 했는데, 말이 통하면 밤새도록 애기할 것 같았다. 할머니가 우리나라의 드라마 이산과 대장금을 재밌게 보셨다고 하시자 우리 팀의 막내인 연옥씨가 싸이 춤을 선보여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뤘다.

그래서 농박을 하는 사람에게는 농촌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지만, 맞이하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보다 더한 즐거운 일이 없을 듯 했다. 할머니가 그동안 다녀간 농박인들의 인사말이 적힌 노트를 보여주며 메모를 부탁했고, 우리는 각자 인사말을 남겼다.

우리가 머문 방은 다다미방으로 불을 넣지 않고 온풍기를 돌려 집안을 따뜻하게 하는 난방형태였다. 벽에는 조상들의 사진이 걸려있었고, 조상신을 모시는 신사가 갖추어져 있었는데 과일과 꽃이 놓여 있었다. 아침에 밖으로 나와 돌아본 주변은 우리의 농촌과 다를 바 없이 논과 밭으로 이어져 있었으며, 띄엄띄엄 일본식 2층집이 보였다.

아침을 먹은 후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소형차에 나눠 타고 다시 마을 공민관으로 모였다. 이날은 마침 이 지역 축제가 있는 날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었다. 일본에는 지역마다 축제가 많지만, 외부에서 연예인을 초청하여 구경하는 식은 아니고, 지역사람들이 직접 참여하여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날 축제준비에 바쁜 사람들의 움직임을 창밖으로 보면서, 또 우리가 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 있는 농박 주인들의 훈훈한 미소에서 또다시 긴 여운이 남았다.

여행 마지막 날-유후인 마을 시찰

빈촌을 최대 관광지로 만든 신화

이제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각 팀별로 농박을 한 후 다시 모인 연수단은 이시타마 노리코 부녀회장으로부터 이 마을 농박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들었다. 이후 관광버스에 오르자 각 팀별로 농박 가정에서 있었던 일화들을 발표하기에 바빴다. 농박 가정의 형태는 모두 달랐지만, 똑같이 느낀 것은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한 농박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스키 농박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농박이었다면, 이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농박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즐기며, 소통함으로써 또 다른 삶의 재미를 찾고 있었다.

관광버스는 빈촌을 일본 최대 관광지로 개발했다는 유후인으로 향했다. 여기서 한 가지 관광버스 기사의 친절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관광버스 기사는 우리가 타고 내리는데 편리를 주기 위해 언제나 먼저 내려서 맨바닥에 한 칸을 더 마련하여 친절을 베풀었다. 또 도로의 모든 차량들은 한결같이 깨끗했는데, 버스 기사 역시 틈만 나면 차를 닦았다.

일본 여행 세 번째 날 밤 한큐훼리를 타고 건너온 큐슈지역의 아소산, 오쿠니, 우스키시 등은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산언저리 등에서 뿌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일본의 곳곳이 화산활동으로 인해 언제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 또한 천혜의 자원으로 이용하여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무엇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음을 배운다. 아소팜 빌리지처럼 온천을 이용하여 돔 형태의 거대한 숙박시설을 만들어서 온천관광지로서 관광객을 이끌고 있다는 것도 지역의 특색을 살린 관광화의 일환이다.

유후인이라는 곳으로 들어서자 관광차들이 많았다. 토요일이라 더 사람들이 많겠지 싶었지만, 가이드는 평일에도 이처럼 많은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라고 했다. 유후인으로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래서 이 상점거리를 거닐다보면 마치 명동거리를 거니는 것처럼 많은 인파에 놀라지만, 도시와 달리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 날은 마침 가을단풍이 아름답게 수놓아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물이 좋은 유후인은 인구 1만정도의 시골마을이다. 그러나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 늘어나는 빈집이 흉물이 되어갔다. 그래서 더 이상 지역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목소리가 생겨나고, 아름다운 고향을 살려내자는 지역민들의 단합이 새로운 관광지를 탄생시켰다. 미술가들의 힘을 빌려 창조해냈다는 유후인의 전체적인 조화는 하얀 도화지에 수채화 그림을 그려놓은 것처럼 아름답고 신선하다.

하지만, 현재 유후인의 모습은 원래 취지와는 달리 많이 퇴색되고 있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상업화된 상점에는 중국과 동남아의 싼 상품들이 차지하고 있고, 지역의 토속적인 문화는 사라지고 장사를 목적으로 한 상점처럼 변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휴인에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관광이 될 만한 자원이 하나도 없던 산골마을을 이용하여 독창적인 관광화를 이루었다는 점이고, 사람이 떠나는 빈촌을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곳으로 변화시켰다는 것만으로도 농촌 신화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5박6일, 일본 우수농업 현장을 모두 이해하기에는 짧은 기간이지만, 무엇보다도 작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생활방식이 곳곳에서 귀하게 다가왔다. 우리나라의 농업이 아직 일본에 뒤져 있다는 것은, 생산자나 소비자나 모두가 농업이 생명산업이라는 인식이 미흡한 점이라 생각되었다. 일본 선진농업 현장의 경우도 하루아침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주변 환경부터 개선해나가는 것이 바로 친환경의 첫 번째이듯, 농업인들 스스로 해내려는 움직임과 의지가 중요하다.

일본 우수농업 현장을 바쁘게 돌던 연수단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느낀 것을 토론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최종 연수느낌을 발표하는 순간에도 모두는 선진 우수농업현장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모범적인 농업인이 될 각오를 단단히 하였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모은 일정을 함께했던 강진원 군수는“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며“젊은 농업인들이 일본 우수농업현장에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여 지역농업의 선도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하고, 우리군의 농업 발전을 위한 차별화된 전략을 함께 찾는 기회로 삼자”고 당부했다.(일본에서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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