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초고령화시대
강진군 성전면 수양리
이병재(90세)
“그때 만났다고 히부러 그냥, 인제 나는 할말 다 히부렀어”
평생 수양리에서만 사셨다는 이할아버지께 할머니와는 몇 살에 만나셨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토방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걸어 나가신다.
“성격이 불꽃같애”
동반자인 김분임 할머니(80세)가 할아버지의 행동을 보고서 가만히 말을 이었다.
불꽃같은 할아버지의 말에 잔잔한 호수 같은 김할머니의 느린 박자가 잘 어울린다. 떨어져나간 동그라미의 한 조각을 맞추며 동글동글 굴러가는 공처럼 두 분의 움직임과 표정이 하나의 리듬으로 전달된다고나 할까.
이할아버지는 61세 부터 강진향교 전교를 2년 동안 했었다.
“대한민국에서 내가 교지를 처음 발간혔어, 그 뒤로 전화도 많이 받고, 그런 것이 전국적으로 뻗쳐가고 다른 군에서도 발간허게 되었지.”
이할아버지는 전교를 하면서 교지를 발간했던 점을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하신다. 당시 향교 교지를 발간하기 위해 원로들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결같이 교지는 몇 백 년이 되어도 못 만들 것이라는 대답뿐이었다. 그도그럴것이 일단은 돈이 드는 문제였다. 이할아버지는 사재를 들여 교지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내가 저질러서 시작을 했으나 당금을 받아놓고 본께, 결국 내 돈은 하나도 안 들고 해부렀어, 나는 그러니까 머리만 썼지.”
교지 발간 시작은 이할아버지가 했지만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어 오히려 쉽게 교지를 발간하게 되었다는 애기였다. 이처럼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써야하며,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두려움 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중문우를 알고 선조의 묘도 정화사업을 할 줄 알아야 죽더라도 자손들이 일어나고 우애도 깊어, 내 생각은 그려, 일가간에 우애하고 친구간에 마음을 아는 사람이 국가사업도 할 줄 안다 그말여.”
8남매{큰아들:이광교(55강진교육청),둘째아들 이전교(52광주교육청)}를 키우면서 항상 강조했던 것이 바로 문중간의 우애와 선조들에 대한 위선사업이었다고 한다.
“저그 앞에 보이는 저 집 기와가 그때 한 기와여.”
담 넘어 보이는 오래된 기와집을 가리킨다. 한때 마을이장을 무급으로 맡아 한 적이 있었다. 마을개선사업을 하기위해 이장을 맡으면서 담장사업과 지붕개량 사업을 하여 마을을 모범부락으로 이끌었다. 또한 조선전기 문신인 이선제와 그의 자손 등 5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수양리의 수암서원을 문화재로 승격시켰다. 이할아버지의 공적은 이미 수암서원 입구의 공적비에 새겨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90의 연세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이 넘치는 이할아버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다. 바로 머리로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탁월한 실천가의 모습이 엿보인다.
이할아버지는 평생 소식을 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하루에 먹는 밥량은 보통사람 한 끼니 정도이며, 매일 술은 두 세잔씩 하신다면서 할머니께 술 한잔 챙겨오라고 한다. 여러 가지 뿌리를 넣어 담갔다는 약주를 따라주신다. 맛이 좋은 술이다.
“들어가 마지막잔이다
날이새먼 구두바이다.“
작은 잔으로 두 세잔의 술을 주고받은 이할아버지가 짧은 노래를 불렀다. 본인은 노래를 잘 못 부르지만 처음에 하면 모두 명창이라며 먼저 부른 노래이다.
‘노소동락’을 할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할아버지는 상황에 따라서 기분을 맞추면서 즐거운 자리를 만들어 갈 줄 아는 분이다. 100살에 죽더라도 이제 10년 밖에 더 못살지 않느냐며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조용히 가야겠다고 말하며 웃는다.
“내 어젯밤 용꿈을 꿨어.”
마당에 매어 놓은 강아지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오늘 아침 강진 장에 나가 사온 검둥이란다. 기자가 보기에도 아침에 사다 매어놓은 강아지 같지 않고 매우 똘똘해 보인다.
“옛날 어느 관상쟁이가 어떤 내외를 봤더니 매우 빈상이더라 그거여, 그란디 부자로 살더라 그거여, 그래서 도둑질을 해서 산다냐 하고 엿보았더니, 마당에 개가 있거던, 아! 그란디 그 개가 아조 복이 짭짤하게 있어 보이는거여, 그려서 개를 팔라고 혔더니, 안 판다고 하더란거여.”
"저것이 50,000원짜리라요, 강아지 40,000원하고 택시비 10,000원하고.“
할머니가 강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고, 내가 오면서 3,000원짜리 주사 맞혀갖고 왔응게 53,000이고만, 무슨소리여. 내 돈 3,000원 더 들어부렀고만, 그란디 저 놈이 참 맘에 들어, 하얀 양발도 신었잖여, 벗겨지지도 않는 나이롱 양말이로구만.”
이할아버지의 유머에 또 한바탕 웃었다. 처음에 ‘인자 나는 할말 다 히부렀어’ 라고 말했던 이할아버지가 기자에게 술 한잔 더 하자고 잡는다.
“애말이요, 운전히야 쓴단말이요.”
할머니가 할아버지 술잔을 말린다.
“앞에 걸어간 사람들을 알야야 되는 법이여, 그래야 고난이 있다 해도 그런 걸 알아야 발전이 있는 것이여.”
(이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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