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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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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고사성어(7)

이야기가 있는 고사성어(7)

투향(偸香)

 

김현임 수필가
‘향기를 훔치다’라는 뜻의 투향을 치자 화면에 투향(投鄕)이 떴다. 고향을 위해 제 온 몸을 바치겠노라는 어느 정치가의 구호 같은 말 아닌가. 하지만 사랑하는 이는 언제나 ‘마음의 고향’ 닮은 푸근함을 주는 대상이니 그대라는 내 영혼의 본향을 향해 온몸 던지기인 사랑의 언어로 투향(投鄕) 역시 그다지 어긋나지는 않는 듯하다.

며칠 전 한 커플이 탄생했다. 미국 사관생도들의 전통 예우인 아치 이룬 검(劍)터널의 예전(禮典), 그 축하를 받으며 활짝 미소 짓던 신랑신부는 장교 출신으로 둘 다 여성인 레즈비언 부부다. 동성애를 결혼으로 인정할 지 여부가 대선의 승부를 가를 정도로 첨예한 이슈가 되는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인륜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반발하는 보수단체들의 기세에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라는 결혼의 전통이 무너질 기미는 이곳에서도 충분하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은 지난달 7일 표준국어대사전(웹사전)에서 연인의 뜻을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남녀’에서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두 사람’으로 바꿨다. 그 뿐 아니다. ‘이성에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인 사랑도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수정되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연애도 ‘연인관계인 두 사람이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으로, 애인도 ‘이성 간에 사랑하는 사람’에서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등재되었다니,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들의 사전적 정의가 남녀 간의 관계에만 한정돼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무시한다며 국민신문고를 통해 표준국어대사전의 사전적 정의를 개정해 달라는 제안이 받아들여진 결과란다.

어쨌든 이 추운 겨울, 어느 때보다 매력 넘치는 상대를 택해 그 향기를 훔치려는 아름다운 도둑들은 도처에서 극성을 부릴 것이니 그 어원을 살펴보자.

진(晉)나라 한수(韓壽)는 미남이었고 세도가 가충(價充)의 속관(屬官)이었다. 한수를 마음에 들어 한 가충이 한수를 집안으로 불러 자주 얘기를 나누었는데 가충의 딸이 한수를 향해 연정을 품게 되었다. 그녀는 그 애절한 마음을 시로 엮으며 번뇌했다. 그를 눈치 하녀가 한수를 만나 제 아가씨의 속사정을 넌지시 내보였다. 고운 자태 지닌 대갓집 규수의 아리따운 마음을 거절할 사내가 있을까. 일사천리, 이내 둘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사랑과 재채기는 속이지 못하는 법, 아버지 가충은 딸의 행동이 요즘 들어 예전 같지 않음을 기이하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속관들과 얘길 나누던 중 한수의 몸에서 명향(名香)의 향기가 풍겼다. 그것은 왕으로부터 하사 받아 딸에게 선물한 귀하고도 귀한 향수냄새 아닌가. 가충은 짐작되는 바가 있어 딸의 시녀를 추궁해 사실을 알아냈다. 현명한 아버지인 가충은 일체의 사건을 비밀에 붙인 채 딸과 한수의 결혼을 진행했다. 그 후부터 남의 집 딸과 은밀히 사랑하는 것, 물론 몸과 마음을 나눈 운우지정(雲雨之情), 그 경지의 사랑을 투향이라 하게 되었단다.

사랑의 장면으로 떠오르는 영상이 한 둘일까.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라이안의 처녀’는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1970년 대 영화다. 빼어난 풍광의 해변도 그렇지만 흠모하는 노(老)선생님을 몰래몰래 뒤따르며 모래 위에 패인 선생님의 발자국만 골라 딛던 라이안의 어린 처녀, 그녀의 레이스 장식의 양산이 내겐 아직도 선명하다. 또래 총각들에게는 콧방귀를 뀌던 그녀는 길고 긴 구애 끝에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지만 이내 시들해진다. 말이 없고 종일 희귀 식물채취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는 고전음악에 심취되어 지내는 선생님과는 애초 그 분이 하셨던 염려대로 펄펄 끓는 뜨거운 피를 가진 어린 제자가 맞을 리가 없다.

 

아름다운 비명

박선희

 

바닷가에 앉아서

파도소리에만 귀 기울여 본 사람은 안다

한 번도 같은 소리 아니라는 거

그저 몸 뒤척이는 소리 아니라는 거

바다의 절체절명,

그 처절한 비명이 파도소리라는 거

 

깊은 물은 소리 내지 않는다고

야멸차게 말하는 사람아

생의 바깥으로 어이없이 떠밀려 나가 본 적 있는가

생의 막다른 벽에 사정없이 곤두박질쳐 본 적 있는가

 

소리 지르지 못하는 깊은 물이

어쩌면 더 처절한 비명인지도 몰라

깊은 어둠 속 온갖 불화의 잡풀에 마음 묶이고 발목 잡혀서

파도칠 수 없었다고 큰소리 내지 못했다고

차라리 변명하라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저 파도 소리 때문인 것을

 

너를 사랑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섬마을 전체가 은밀히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가담되어 있는 상황에 주둔군 인 영국군 장교와 사통(私通)이라니, 돌멩이 세례와 머리카락이 잘리는 수모를 당해 피투성이가 된 그녀를 온 몸으로 감싸 안은 선생님, 마을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었던 남편 덕분에 그녀는 죽음 직전 사람들의 몰매에서 풀려났지만 결국 섬에서 추방당한다. 자신의 격정을 사루기 위해 노을 지던 해변을 내달리던 여자의 긴 드레스자락, 절름발이 장교로 분한 크리스토퍼 죤스의 눈동자가 주던 상처 받은 자의 스산한 분위기 탓이었던가. 마가렛 꽃 휘늘어진 해변에서 벌이던 그들의 정사(情私)마저도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그러안던 선생님의 폭 너른 사랑과 함께 내겐 사랑의 전형으로 오래오래 각인되었다.

옛날에는 우거진 뽕밭에서 사랑이 많이 이루어져 상중지약(桑中之約)이라고도 했다던데... . 언젠가 돌아가 그 품에 안기리라 벼르던 고향의 뽕나무 밭만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었나, 동성 간의 결혼이 공공연히 이루어질 만큼 사랑의 변화도 만만치 않다. 그보다 갈수록 계산속으로 치닫는 요즘의 사랑의 풍속도에서 상대의 고결한 향기를 욕심내어 제 것으로 소유하려는 투향이 낡은 단어로 전락할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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