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남미륵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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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하훈(강진고을신문 대표이사) |
내가 큰누님을 15년 만에 만난 것은 남미륵사에서였다. 교통으로 따지자면 두 시간 거리 밖에 되지 않는데도 15년이란 세월을 훌쩍 넘겨, 그것도 고향의 사찰에서 조우(遭遇)를 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추석 명절 벌초도 못한데다 음력설에도 조상 성묘를 못한 것이 못내 서운해 음력 정월 대보름에 때를 맞추어 고향엘 내려갔었는데, 김달옥이란 면장 친구가 평소 이장(移葬) 문제를 남미륵사 주지 스님과 의논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했기 때문에 그곳을 찾아갔다가 뜻밖에도 큰누님을 만나게 된 거였다.
큰누님과는 어린 시절부터 지방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촌수로는 사촌지간이지만 친동기나 진배없었다. 더구나 내가 큰누님의 아버지인 큰아버지 밑으로 어린 시절 양자(養子)를 갔기 때문에 족보로도 한 부모를 가진 남매지간이기도 했다. 나이 차이는 여섯 살 차이였는데, 큰누님이 해 준 밥과 늘 빨아서 다리미질을 해준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모친의 정도 유난히 느꼈던 큰누님이었다.
그런 큰누님은 내가 10여 년 동안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의 기제사를 모실 때 반드시 참석해 하룻밤을 묵어가곤 했다. 그리고 시장에서 어물전을 하며 고생스럽게 살아도 제찬 값이라며 두툼한 봉투까지 선뜻 내놓곤 했었는데, 선대(先代)의 제사를 합사제(合祀祭)로 지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예 발걸음을 끊었던 거였다. 5대조부터 고조, 증조, 조부, 양부 내외분 모두를 음력으로 9월 보름날 한 날 한 시에 합사제로 모시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부터였다. 할머니가 살아생전 대소가와 함께 의논을 해서 결정한 일인데도 큰누님은 당신의 부모를 따로 모시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참석은커녕 전화 한 통화도 하지 않았다. 미상불 큰누님 뿐 아니라 친동생들까지 참석 횟수를 줄여나가더니 최근에는 별별 핑계를 대며 전화로 체면치레를 하는 정도여서 큰누님에 대해서는 출가외인이라는 생각과 함께 서운한 감정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런 큰누님을 고향의 남미륵사에서 만나게 되다니······.
미륵대종 남미륵사 5km.
그날 내가 영암 월출산을 벗어나 강진군(康津郡) 경계선에 들어섰을 때 ‘날씨보다 마음이 더 따뜻한 고장입니다’란 구호가 육교 위에 걸려있었고, 그 아래에 남미륵사 입간판이 서 있었다. 동백꽃과 백련결사로 유명한 백련사나 벽화로 유명한 무위사 같은 명찰(名刹)이 있는데도 유독 남미륵사 입간판만 눈에 툭 띄는 것이어서 최근 이름난 사찰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읍내를 지나 남미륵사가 있는 군동면소재지에 들어섰을 때 ‘청정지역에 화장장 건립 웬 말이냐’ ‘화장장 건립 결사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확성기를 단 봉고차가 왔다 갔다 하며 면 청년회의 이름으로 화장장 건립을 반대한다는 녹음테이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주일 마다 한 차례씩 배달되는 주간 강진고을신문을 통해 고향소식을 접해오면서 전국 이·통장연합회 소속의 강진군 이장단이 화장장 건립 운동을 6개월 이상 펼쳐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후보지로 지정된 곳에서는 반대 투쟁을 결사적으로 하고 있었다.
“화장장을 설치를 하게 되면 굉장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반대하고 난리야?”
면장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자마자 김달옥에게 물었다. 사실 고향땅에 화장장 하나 쯤 있는 것도 무척 편리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온 터였다.
“정작 대다수 군민들은 찬성을 하고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싫다는 거지.”
“아무래도 혐오스러운 건물이다 보니 그런가보지?”
“정작 해당 마을에서는 대환영을 하고 있어. 그 주변마을에서 필사적으로 반대를 하니까 문제지. 그나저나 고향에서 면장질도 못해 먹겠어. 날더러 화장장 건립 운동을 돕는다고 욕들을 하는 모양이야.”
김달옥은 불쾌하다는 듯 입술을 꽉 오므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공무원이니까 중립을 잘 지켜야겠지.”
“그런데 남미륵사를 함께 가지 못해 미안하게 됐어. 갑자기 화장장 건립 주민 찬반투표 실시에 따른 확대간부회의가 있어서 말야.”
“투표로 결판을 낼 모양이지? 알았어, 저녁에 집에 찾아갈게.”
김달옥과 헤어진 나는 남미륵사를 향해 차를 몰았다. 남미륵사는 탐진강물굽이를 거슬러 장흥읍(長興邑)을 향해 달려가다가 군동평야가 끝나는 지점에 있었는데, 2차선 지방도로에서 500여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교통 하나는 편리한 곳이었다. 처음 가보는 사찰이었지만 평소 고향의 지역신문에 자주 기사나 광고가 나온 터라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늘 지역신문에서 보아온 그 아미타황동불상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동양에서 제일 크다는 황동불상은 높이가 무려 16m나 된다는데, 멀리서도 그 위용과 웅장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역시 소문대로 대단한 신흥사찰이었다. 지지난 달에는 도지사가 전격 방문해 사찰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는 신문 기사가 떠오르면서 대작불사(大作佛事)를 해낸 주지 스님의 능력에 그저 입이 딱 벌어졌다.
남미륵사 입구를 향해 걸어갔을 때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거대한 두 개의 코끼리 석상과 돌로 만들어진 불이문(不二門)이었다. 반송과 철쭉이 양쪽으로 서있고 오백나한이 즐비하게 줄줄이 바투바투 앉아있는 길을 따라 얼마쯤 걸어가자 일주문이 나타났고, 사천왕문과 이층 높이의 범종각을 지나자 본사(本寺)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웅장한 대웅전(大雄殿)이 보였다. 대웅전 주변으로는 응진전, 용왕각, 해수관음보살상, 9층 석탑이 알맞은 위치에 서 있었고, 다시 정원 속에 별장처럼 서 있는 요사채를 돌아가자 이번엔 돌로 만들어진 일주문과 함께 7층 쌍탑의 만불전(萬佛殿)이 나타났다. 지붕 위에 부처님이 앉아 있는 그 안으로 들어가자 입구에서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70대 후반의 노보살이 의자에 앉아 불경을 읽고 있었다. 전기난로에 의지한 채 안경 너머로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는 노보살의 모습이 퍽이나 진지해 보였다.
“주지스님 좀 뵐 수 있을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지 스님이요? 어디서 오셨을까라?”
“안산에서 왔습니다만.”
“오매, 멀리서 오셨구만이라. 하기사 스님 만나 뵐라고 부산이며 경상도 대구에서 찾아오고, 멀리로는 일본에서도 오고 그래라.”
“스님께서는 절에 계시겠지요?”
“아마 안 계실 것이요. 점심참에 어디 다녀오실 데가 있다면서 총무보살님하고 나가십디다.”
나는 행여 여기까지 왔다가 못 만나면 어쩌나 싶어 언제쯤 돌아오시느냐고 묻자 노보살이 고개를 흔들었다.
“스님 가신디는 암도 모르지라. 그저 바람처럼 휙 나가셨다가 아무 때고 돌아오신께.”
“그럼 안 돌아오실 수도 있겠네요.”
“외국에나 나가시면 몰라도 오늘은 대보름이라 금방 돌아오실 것이요.”
“잘 알겠습니다.”
나는 참배하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약간 숙여보이고는 만불전 안으로 들어갔다. 이층 높이의 만불전은 말 그대로 수 만 개의 손바닥만한 황금색 부처님이 사방으로 층층이 즐비하게 앉아 있고, 바닥 한 중앙에는 신라의 왕자로 중국에 건너가 등신불이 되었다는 김교각지장왕보살이 2m 높이로 모셔져 있었다. 천정에는 섬뜩할 만큼 무섭게 지옥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절로 오금이 저려왔다. 나는 김교각지장왕보살께 합장을 한 다음 108배를 올렸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절을 찾을 때면 곧잘 108배를 올리곤 했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지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스님이 올 때까지 경내를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에 아미타황동불상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녹슬어 검푸른 황동불상은 윤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만 우선 그 거대한 크기에 신심이 절로 일어날 것 같았다. 게다가 황동불상 주변으로는 수 많은 석불이 서 있는가 하면 옷자락이 금방이라도 휘날릴 듯 정교하게 만들어진 와불석상도 보였다.
‘역시 듣던 대로 대단한 스님이구나.’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내려오는 순간, 또 하나의 웅장한 건물과 마주쳤다. 그 또한 이층 높이의 건물이었는데,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지 오색찬란한 단청이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의 관음전(觀音殿)이었다. 한옥으로 지어진 관음전은 아름드리 돌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그 기둥마다 꿈틀거리는 용이 조각되어 있었다. 용은 지붕 위에도 살아있는 듯 두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어서 일반 절과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였다.
관음암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 옆문에서 젊은 보살 한 분이 나왔다. 나는 얼른 합장을 하고 물었다.
“보살님. 언제 이 관음전이 세워진 것입니까?”
“1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안에 좀 들어가도 되겠지요?”
“처음 오신 것 같은데 제가 안내 해 드릴게요.”
젊은 보살의 안내로 관음전에 들어간 나는 삼존불이 모셔진 양쪽으로 33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고, 그 앞으로는 꽃 공양을 했는지 꽃이 만발한 화분이 100여 개 놓여져 있어 관음전이 마치 꽃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다.
“이 많은 관세음보살님은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입니까?”
삼배를 올린 다음 내가 물었다. 백(白)·청(靑)·적(赤)·황(黃)·흑(黑)의 오방색(五方色)으로 그려진 각 관세음보살은 등 뒤로 관음경이 적힌 배경까지 하나의 구조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개 주목나무로 조성되었어요. 시베리아에서 여기까지 가져온 주목나무랍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나무지요.”
젊은 보살은 자랑스럽게 말하고 나서 33인 관음보살이 모셔진 맨 끝에 주장자를 든 스님상을 가리켰다.
“이 스님상이 주지스님상입니다.”
“아, 네.”
“영락없이 돌로 만든 것처럼 보이지요?”
그녀의 말대로 스님상은 회색빛깔이어서인지 돌을 깎아 만든 것처럼 보였다.
“제 눈에는 돌처럼 보입니다만······.”
“돌이 아니라 나무랍니다.”
나무인데도 돌로 보이는 장인의 솜씨가 감탄스러웠지만 그보다도 내가 만나고자 하는 스님이 일반적인 스님이 아니라는 점에 더욱 확신하고 있었다. 말로만 들어오다가 직접 남미륵사에 와서 현장을 보고 난 느낌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큰 불사를 하게 되면 돈이 많이 들텐데요.”
“당연하지요.”
그녀는 너무도 촌스러운 질문을 한다는 듯 쿡쿡 웃어보였다.
“일반 신도님들의 보시를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할 것 같고, 대체 스님께서는 어디서 이 많은 돈을 구하셨길래······.”
이 말을 해놓고는 또 촌스러운 질문을 하고 있구나 싶었는데, 그녀가 선선히 그 내력을 설명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어떻게 천문학적인 돈을 만들어서 장엄불사를 했느냐, 그 점을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지요. 사찰의 규모를 보았을 때 누구나 궁금하실 거예요. 지난 번 도지사님이 방문했을 때에도 그 질문을 하시더군요. 그러니까 스님께서는 20여 년 전 조그만 법당 하나를 가지고 수도를 하고 계셨는데, 그 무렵 국내 전자회사를 운영하는 회장님의 부인과 아들이 갑자기 쓰러져서 일어날 줄을 몰랐답니다. 그래서 서울대 병원에 입원을 시켰지만 병명이 나오질 않았다는 거예요. 너무도 황당한 일이어서 몹시 당황하던 중에 이 곳 주지 스님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나 봐요.”
나는 그녀의 말에 마음속으로 옳거니, 하고 중얼거렸다. 친구 김달옥의 말대로 대단한 스님이 되기까지의 내력을 들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서였다.
“전자회사 회장님은 마침 이곳이 고향이고 해서 주지 스님을 만나 자초지종 말하고 나서 도움을 청했는데, 스님께서는 보름 전에 돌아가신 부친의 묘에 시신이 없어졌다고 진단을 했답니다.”
“그래서요?”
“스님의 말대로 당장 파헤쳐보았더니 세상에······. 구렁이 세 마리가 시신을 삼키고 있더랍니다. 머리카락과 발톱만 남겨놓고요. 그날로 이장을 하고나자 거짓말처럼 부인과 아들이 아픈 몸을 털고 있어났답니다. 그 뒤로 그 전자회사 회장님은 남미륵사에 천문학적인 돈을 대주어 이처럼 웅장한 불사를 할 수 있었답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나서 관음전의 천정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천정화는 팔 폭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녀가 왼쪽부터 설명을 해나갔다.
“스님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어요. 첫 그림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그린 거구요, 둘째 그림은 도를 구하기 위해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방황하는 모습이구요, 셋째 그림은 발음당이란 법당을 짓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넷째 그림은 드디어 깨우침을 얻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다섯째 그림은 엄청난 불사를 시작하는 모습인데, 여섯째 그림에서는 그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일곱째 그림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오연히 병자나 노인들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모습입니다. 여덟째 그림은 드디어 성불하는 모습입니다.”
“대단한 스님이십니다.”
“저도 평소에는 불교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물론 신자도 아니었는데, 스님을 만난 뒤로부터는 아예 일주일에 두 차례씩은 남미륵사를 찾아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까요.”
“참, 한 가지 묻겠습니다.”
나는 남미륵사에 온 용건을 조심스럽게 끄집어냈다.
“혹시 스님께서는 지관 노릇도 하시는가요?”
친구 김달옥의 말대로라면 땅 속을 파헤쳐 보지 않아도 수렴(水簾)인지 충렴(蟲廉)인지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사(自然死)를 했는지 병사(病死)를 했는지 아니면 자진(自盡)을 했는지 정확히 알아낸다는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젊은 보살의 말대로라면 기인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역신문에서 자꾸 남미륵사 기사가 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 하나는 해년마다 산사음악회와 더불어 영산대재를 지낸다는 점이었다. 또 불교 TV가 와서 촬영을 할 정도였고, 각 종파의 종정스님까지 대거 참석했다는 내용이었는데, 한 번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나 지낸 스님도 참석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우리 고향에 그 같은 스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거였다.
“실은 그 일 때문에 전국적으로 다니십니다.”
“그럼, 저도 조상의 묘 이장에 대해 상담을 해도 스님께서 들어주실지 모르겠습니다.”
“저야 모를 일이니까 이따가 스님이 오시면 직접 여쭤보세요.”
나는 스님을 만나서 선대 묘 이장 문제를 전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결심했다. 뭔가 영험한 스님이 나서준다면 금시발복도 기대해 볼만 하다는 엉뚱한 기대감도 생겼다. 그동안 해년마다 열 개도 넘는 봉분들의 벌초 문제로 늘 곤욕을 치렀던 나였다. 어린 시절, 마을에서 문전옥답이 가장 많은 탓에 유일하게 와가(瓦家))에서 살았던 나는 일찌감치 종손으로 정해지고 말았다. 큰아버지가 6.25 때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화순 어느 산골 마을에서 경찰의 손에 의해 총을 맞고 사망하는 바람에 종손이 된 거였다. 그래서 분가를 한 아버지를 따라 살지 못하고 큰어머니와 큰누님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이미 전답은 물론 야산까지도 다 날려버린 뒤여서 더 이상 농촌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큰아버지의 형제간이 육형제로서 논 네 마지기씩과 집 한 채씩 주었던 분가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5급 을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그 때부터 벌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만 했다. 젊었을 때는 일 년에 한 차례씩 고향에 가서 이틀 동안 열 분도 넘는 봉분을 일일이 낫으로 벌초를 했었다.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예초기로 벌초를 해왔는데, 단박에 풀이 베어지는 기계로 해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봉분이 흩어져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멀리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해가 다르게 온갖 잡목이 울울창창하게 자라서 그 옛날부터 마을사람들이 다녔던 길은 흔적조차 없어지고 그냥 걸어가기에도 벅찰 정도였다.
“농협이나 개인이 돈 받고 벌초를 대행해 주잖아요. 거기에 맡기도록 하세요.”
아내는 4년 전 예초기를 짊어지고 벌초를 하러 갔다가 갑자기 땅벌을 만난 바람에 혼쭐난 내게 말했다. 119를 불러 종합병원 응급실에 빨리 갔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더라도 호흡곤란으로 큰일이 날 뻔 했던 일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한 마을에 사는 동구형은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벌초를 하고 귀가를 하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을 뒤로는 더욱 벌초하기가 겁부터 났다.
그러나 아내의 말대로 농협에 맡겨 벌초를 대행케 할 수도 없었다. 가까운 곳은 한 봉에 10만원이었고, 5부 능선은 한 봉에 12만원, 7부 능선은 15만 원 가량 되었는데, 선대의 봉분 절반 정도가 아예 산 너머에 있는 탓으로 위치를 알려줄 수 없었고, 위치를 안다고 해도 그 먼 거리까지 가서 벌초를 할 수 없다는 게 농협 담당자의 답변이었다. 사설로 운영하는 곳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여서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해년마다 하지 못하고 격년제로 해나가고 있었다.
언젠가는 길이 아예 없어진 산에서 인적미답(人跡未踏)의 원시림을 헤쳐 나가듯 벌초를 하러 갔을 때였다. 소나무에 듬성듬성 묶어 놓은 두꺼운 비닐 헝겊을 따라 찾아갔었지만 워낙 풀이 많이 자란 탓에 쉽게 찾을 길이 없었다. 몇 번이고 주변을 살피면서 틀림없이 이 정도 위치가 맞을 것 같은데도 전혀 둥실한 봉분 형태가 나타나지 않아 망연자실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로 발 가까이에 봉분이 있었다. 풀도 많이 자랐지만 봉분에 여러 개의 참나무가 엄지손가락 마디보다 더 크게 뿌리를 박고 있었으므로 쉽게 발견되지 않았던 거였다.
그런데, 그날 낫과 톱으로 주변의 큰 나무부터 제거하다가 멧돼지 똥을 발견하는 순간 머리끝이 철사처럼 곤두섰다. 봉분에서 떠난 지 그리 오래된 똥이 아닌 탓에 말랑말랑한 느낌이었다. 멧돼지가 사람을 먼저 피한다지만 만일 새끼들이라도 대동하고 다니는 어미멧돼지라도 만난다면 뼈 한쪽이 부러질 것만 같은 생각에 온 몸이 오싹해지면서 식은땀이 흘렀다. 멧돼지의 이빨은 군용신발도 여지없이 찢어발기고 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부터 벌초 문제는 내게 어떤 문제보다도 큰 골머리였다. 아니, 그보다도 반드시 이장을 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하지만 그 일이 어디 이웃집 놀러가는 것처럼 쉬운 일인가. 그래서 그동안 벌초를 갈 때마다 이장할만한 땅을 알아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벌초하기 쉽고 교통이 편리한 길 가 밭뙈기나 야트막한 산자락이 좋아보였지만 어디를 가나 마땅한 땅은 없었다. 벌초 문제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문제였던지 맘에 드는 땅이면 매장용으로 이미 임자가 정해져 있었다. 게다가 화장 문화가 차츰 번지고 있는 터여서 그 옛날 마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으슥한 곳이면 으레 상여집이 있었던 것처럼 적당하다 싶은 곳에는 납골당이 서 있는 판이어서 더욱 땅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우리 농촌에서 흔히 남의 돈을 빌려 쓸 때 나락가마니로 가져오되 1년 만에 그 배로 갚아주는 비싼 돈을 쓰다 보니 산까지 남의 손에 넘어가고 만 일이 있었다. 비록 묘 한 봉 쓰지 못할 만큼 악산인데다가 돌밭까지 있을 정도였지만 바로 그 산을 우연찮게 사들이게 되었다. 그 쪽에서는 빚 대신으로 그 산을 사게 되었지만 매장할 만한 흙이 없는 탓에 쉽게 내 손에 넘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푸나무 갈퀴나무 등걸나무 옆가지나무 등 땔감용도로 사용하지 않게 된 것도 매매를 쉽게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산의 아래쪽 100여 평 만큼은 전혀 돌이 없는 부드러운 황토만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그 산 주인은 단순히 악산인줄만 알고 내게 팔았던 거였다. 막상 산을 구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장을 추진해야 좋을 지 고민하던 중에 자자일촌인 고향마을의 문장(門長) 어른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젊었을 때 신 들린 지관과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이장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 왜 잠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느냐는 것이었어. 그래서 내가 물었지. 산이 갈수록 우거져서 벌초하기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했더니 그냥 놔두면 된다고 하더라. 정 찜찜하면 주변의 큰 나무나 쳐주는 정도로 해도 된다고. 아무튼 이장은 하는 법이 아니라고 당부하는 것이었어.”
“신들렸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마 젊어서부터 전국의 많은 산을 다니면서 풍수를 공부한 분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신이 들렸다고 그러더라. 신이 들리면 수명이 10년 정도는 단축된다나. 그런데 산에 들어서면 절로 명당을 향해 발걸음이 옮겨진다는 거였어. 여기다 싶어 좌우를 살펴보면 좌청룡 우백호가 딱 들어맞는 명당이라는 거야. 참 영험한 지관이었는데, 밤이 이슥해서 이제 함께 자자고 했더니 귀신이 자라고 해야 잔다면서 먼저 자라고 그러더라.”
대화는 더 이어졌는데, 문장 어른의 말씀은 최근 이장을 하지 않고 아예 오래 된 봉분을 파헤친 다음 불살라 버리는 일이 많다는 거였다. 이장하는 일이 땅 문제로 인해 쉽지도 않을뿐더러 벌초하기도 갈수록 머리 무거운 일이어서 유행처럼 그렇게 한다는 거였다.
“우리 문중에서도 5부 능선 위로는 아예 벌초를 하지 않고 제각 뒤에다 조그만 돌비석을 세우는 것으로 대신 했다. 지금까지는 문중사람들이 울력을 통해 벌초를 해왔지만 다들 연세가 많으신데다가 젊은 사람들이 없다보니 도저히 그 많은 봉분을 벌초 할 수가 있어야지. 좌우지간 벌초 문제는 보통 일이 아니야.”
문장 어른의 말을 듣고 난 나는 머리가 혼란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장을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그렇고 어떻게 해야 옳을 지 모를 정도로 정확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명색 종손이 된 자로서 봉분을 파헤친 다음 불살라버린 일은 죽어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못난 자손이면 벌초를 하기 싫어 봉분을 파헤쳐버린단 말인가. 천만다행하게도 팔았던 산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다 조상님들이 돌봐 준 덕택이 아닌가 싶어 이장을 결심하였는데, 친구 김달옥이 남미륵사 스님을 소개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정월 대보름달이 장흥 억불산 위로 떠오르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주지 스님이 사찰 입구에서부터 목탁을 치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명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100여 명의 신도들이 그 뒤를 따르며 곳곳에 향을 피우기 위해 바빴다. 신도들은 아예 향을 담은 조그만 손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미리 만들어 놓은 화분 그릇 같은 곳에 한 두 개가 아니라 한 움큼씩 향을 피워댔다. 1시간 동안 경내를 모조리 돌고 난 주지 스님은 관음전 앞에 신도들을 운집시킨 후 나머지 향을 모조리 피우기 시작했는데, 향을 꽂을 그릇이 다 채워지자 아예 바닥에 깔려진 자갈을 파고 향을 피웠다. 그러자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향 연기가 낭자해 하늘을 가릴 정도였다.
“이제 모두 열기구풍선에 불을 켭시다! 우리 소원이 성취되도록 말입니다.”
주지 스님이 열기구풍선을 신도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신도들은 열기구풍선 속에 든 초에 불을 켜자 서서히 부풀어 오른 풍선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붉은 불덩이가 두둥실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신도들이 박수를 쳐대며 환호성을 질렀다. 대보름날 이벤트 행사치고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그 때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한 신도와 함께 열기구풍선에 불을 켜고 있었다. 처음엔 자욱한 향 연기 때문에 또렷이 알 수 없었는데 다시 한 번 확인하려고 바라보는 순간 틀림없이 큰누님이었다. 반가움과 함께 마지막으로 양부모 기제사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 평생 소원이 있다면 화순 어느 골짜기에 누워있을 아버지를 이장해서 남보란 듯이 묘를 멋지게 해놓고 싶단다.
그러나 큰어머니가 살아생전에는 큰아버지의 묘를 해년마다 찾아다니곤 했지만, 그 분이 돌아가신지 20년도 더 된 세월이 흘렀으므로 다시 찾는 일은 불가능한 일일 터였다. 막내 작은아버지가 큰어머니를 따라 큰아버지묘를 다녀왔던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려고 했지만 끝내 찾질 못했는데도 왜 집착을 갖는 것일까.
-둘레석이랑 비석이랑 멋지게 해놓고 해년마다 묘 앞에서 제사도 모시고 싶은데 찾질 못하고 있으니······.
그 때 큰누님은 갈비뼈가 울릴 만큼 한숨을 내쉬며 말했었다.
“아니, 큰누님! 여긴 웬일이세요?”
“동생이야말로 무슨 일이야?”
“주지 스님한테 이장할 묘 자리 좀 봐달라고 왔습니다만······. 소문날 정도로 풍수에 밝다고 해서요.”
그런데 누님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나도 네 큰아버지 묘를 이장해볼까 하고 내려 왔어. 스님께서 하두 신통하다고 해서 말이지.”
이윽고 대보름날 행사가 끝나자 신도들이 제각기 타고 온 승용차를 타고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내 친구가 남미륵사 신도야. 내일 주지스님과 면담을 하기로 했으니까 동생도 낼 아침에 와.”
무작정 남미륵사를 찾았던 것인데 큰누님을 만남으로 인해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친구 김달옥의 집엘 찾아갔을 때였다. 그는 서울에서 사는 후배 김 목사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분위기가 썰렁했다. 김달옥이와는 사촌 간이어서 서로 반가운 대화가 오고 가야 할 법인데도 그의표정이 영 땡감 씹은 표정이었다. 김달옥은 내게 눈빛으로 앉으라고 해놓고 다시 김 목사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동생, 방금 너 뭣이락 했는가? 멧둥을 아예 없애버렸다고 했다구?”
노기가 등등한 김달옥이 김 목사를 노려보며 고함을 쳤다.
“형님. 그동안 벌초하는 일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어려운 일을 자식한테까지 물려줘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벌초 못한 일이 그리 자랑스러운 일일까? 그렇다고 멧둥을 없애버려?”
“네. 오늘 포클레인을 부르고 인부들을 사서 인골을 태워버렸는데, 막상 파묘를 하고나니까 삼분의 일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무슨 일 인줄 아는가? 부관참시(剖棺斬屍)여! 부관참시!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란 말이여!”
“형님. 형님도 아다시피 벌초하기가 어려워서 그랬습니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사는데 언제까지 그 일을 할 수가 있어야지요.”
김 목사가 거듭 허리를 숙이며 애써 변명을 했다.
“이 사람아! 벌초를 못하면 못한 대로 가만 놔둬도 언젠가는 멧둥이 없어질텐데 일부로 파헤쳐서 유골을 태운다? 나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네.”
“형님! 성경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닙니까.”
“동생이 미쳐버렸구마. 단단히 미쳤어. 장로로 있다가 목사가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흙 운운 하면서 유골이나 태워버리는 동생이야말로 불효막심한 사람이야.”
김달옥은 김 목사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지만 김 목사는 오히려 그의 말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눈치였다.
“당장 나가소! 다시는 우리 집엘 올 생각일랑 말소!”
김 목사는 김달옥이 앞에서 체면이 구겨진 채 곧장 마을을 떠났다. 밤이 이슥하도록 김달옥과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지만 이미 속이 상해버린 그는 끝내 분을 삼키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남미륵사를 찾아갔을 때 큰누님은 미리 와 있었다.
“큰누님. 큰아버지 산소를 찾으려고 했지만 끝내 찾질 못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일을······.”
“화순 땅에 가서 흙 한 줌이라도 담아가지고 산소를 만들려고 그래. 출가외인이지만 그래야 내 마음의 짐을 벗어버릴 것 같아서······.”
큰누님이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이미 육십 대 후반으로 들어선 누님의 머리는 반백이 다 되어 있었다. 결국 종손인 내가 그 일을 해내지 못하니까 직접 나선 모양이었다.
“동생이 마침 산소자리를 사놨다는 말을 들어서 나 혼자 그냥 내려와 본 거야. 아버지 묘를 찾는다기보다도 허묘라도 만들어드리고 싶어서······. 그래야 아버지의 혼백이라도 고향땅에서 편안히 지내시지 않겠어?”
큰누님은 평생 가슴 속에 얹고 살아온 돌멩이를 내려놓아야만 안심할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저와 의논을 하지 그러셨어요?”
“이번 일로 동생한테 부담을 주지 싫어서 그랬지. 내 힘으로 하고 싶어서······. 아무한테도 허묘를 썼다고 말하면 안 돼. 내 체면도 있으니까·.”
“염려마세요. 저도 큰아버지 묘가 세워진다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애요. 늘 마음속에서 걸렸으니까요.”
이윽고 큰누님과 나는 스님과 마주 앉았다. 차를 권한 스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두 분 다 이장 문제로 절 찾아오셨구만요.”
그저 인사만 했는데도 스님이 먼저 우리들의 의중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이장할 묘가 많아서 묘터를 잡아주십사 하고 왔습니다.”
내가 정중하게 말했다.
“우리가 마음의 짐 때문에 고통을 느끼고 삽니다. 지장경에서 나오는 말입니다만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에 의해 마음의 짐이 되고 있는데, 우리 절에서 특히 영산대재를 지내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스님이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들의 부모님, 친척들은 모두 인연영가입니다. 그 분들을 초청해서 공양을 드리게 되면 어쩌겠습니까? 우리들의 마음이 후련해지고 말끔히 씻어지는 기분이 들것입니다.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고 벌초를 하는 것도 다 그 이유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에는 부모는 물론 조상들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좋은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결코 그들의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마음이 평화롭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불편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
“스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 가만히 있는 묘를 파헤쳐서 도치램프로 유골을 태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함으로써 조상에 대한 부담을 덜어버릴 것 같아도 오히려 죄책감이 무의식적으로 쌓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 어떤 앙금의 역할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상을 잘 모신다는 것, 그것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있는 감정을 녹아내리게 하는 그 어떤 힘이 있습니다.”
말을 마치고난 스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윽고 스님을 모시고 미리 만들어 놓은 산소자리를 향해 차를 몰았을 때,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큰 짐을 벗어버린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끼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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