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
성전면 수암마을 윤병현 할머니(103살)
성전면 소재지에서 작천 간 포장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북쪽으로 수암산이 있다. 이 산자락아래 아담에게 자리한 마을이 수암마을이다. 수암산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8명당이 있다. 이중 7명당은 원주이씨, 해남윤씨, 연안이씨 함양박씨, 청주김씨, 광산이씨, 광산김씨 등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거북등이라고 구전되는 하나의 명당이 남아있어 아직도 수많은 지관(地官)들이 수암산을 헤매고 있다고 하는데······명당이 따로 있을까? 바로 103살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는 윤병현 할머니의 집터가 명당이 아닐까 기자는 생각해 본다.
마당에 들어서니 탐스러운 국화봉우리들이 깔끔하게 매어놓은 콩밭을 빙 에워싸고 있다. 때 아닌 국화꽃향기가 솔솔 느껴졌다. 국화봉우리의 국화잎을 어루만지며 취해있을 때 방문이 열렸다. 마당에 피지 않은 국화꽃. 그렇다. 국화꽃은 방에 있었다는 것. 윤할머니는 한송이의 국화꽃을 닮았다.
“애기를 안나부렀어, 시집? 시집은 갔재.”
윤할머니는 강진읍 봉덕마을에 살다가 40대에 수암마을로 이주해 왔다. 머슴을 두고도 동네의 4가구를 일꾼부리며 먹여 살릴 정도로 넉넉한 살림살이였다.
“니떡 너묵었냐, 내떡 나묵었냐 하고 살았어. 요즘사람들 내외가 서로 장난치는 것을 보면, 저라고 산 것이 좋은 것인디·······나는 저런 시상을 못살았구나 싶기만 혀.”
수줍은 듯한 표정에 고운 말투다. 귀도 밝은 윤할머니는 집에 찾아온 사람이 고마워서 별 이야기를 다하고 있다며 웃는다.
“넘들이 아무리 잘났다고 혀도 내 맘엔 안들었어······ 둘이 별라 혀도 안혔지만 좋은지 나쁜지 영감하나만 안 게로 제대로 헌지 어쩐지 몰라······아이구 차말로 열없소······내 별 야그를 다하구만.”
윤할머니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생기지 않았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도 아이는 없었다. 10년을 한 방에서 잔 여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일해 주던 이웃마을의 여자로 윤할머니보다 한살 어린 20살의 여자가 있었단다. 남편이 있던 그녀는 밤이 되면 윤할머니집에 찾아와 한 방에서 잠을 잤다. 할아버지가 가운데 눕고 두 여자가 양쪽에서 잠을 잤다.
“어느땐가는 어찌 잠자는가 허고 여수어봤는데, 어찌께나 눈꺼풀이 무거운지 결국 한번도 보들 못혀 부렀어.”
그녀는 새벽녘에 일찍 가버리곤 해서 아침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낮에는 집안일을 같이하기도 하며, 식구처럼 한방에서 자고 살았지만, 하루 종일 일만하고 지쳐 떨어져 잠들어 버렸다는 윤할머니.
“그 각시 친정이 부자되어부렀어. 쪽빠지게 가난헌것들이 집도 크게 짓고 까끔(전라도사투리:나즈막한 마을 앞의 산)도 사고 논도 사고 그랬다요.”
결국 살림은 점점 없어지고 빈털터리 되다시피 하여 친지들이 살고 있는 수암마을로 이사하게 되었다. 여자에 대해서는 다시 시집을 가서 3남매를 낳았으며 모두 서울로 떠난 뒤 소식을 모른단다.
“사람을 미워혀서 뭣헌다요, 그저 어디가서든지 자식들하고 잘 되아라 하고 바라는 마음뿐이요.”
모든 재산을 잃고 수암리로 온 뒤 남편은 알 수 없는 병이 들어 10여년을 시난고난 하다 돌아가셨다. 요즘도 꿈을 꾸면 남편과 여자가 보인단다.
“꿈에 둘이 달걀같이 집 짓어 가고 삼시로 밥도 묵고 웃는디, 저승에서 둘이 만나서 산가 모르겄소.”
양자를 하나 들여 결혼까지 시켰지만 사고로 죽었다는 윤할머니, 손가락이 휘어지도록 일하여 모은 돈으로 조부, 조모,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묘를 보기 좋게 해 놓았으며, 자신이 누울 자리까지도 스스로 만들어 놓았단다. 그 많던 재산을 다 없애고 지금은 영세민이 되었다면서도 편안한 미소를 짓는 윤할머니는 온화하고 낙천적인 성품을 지녔다. .
“사랑이 없이 살았응께, 좋은시상을 못살았재······사람들이 그러더만, 봉덕할머니 편한 마음인 줄 알았더니······속으로 다 삼켰소.”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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