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고사성어 10
김현임(수필가)
식지동(食指動)
창밖엔 함박눈이 펄펄 흩날리고 따끈한 아랫목에서 깜빡 잠이 든 우리의 코끝으로 스며드는 고소한 참기름냄새! 우리는 군침을 흘리며 벌떡 일어났다. 내 고향 강진산 백미로 뽑은 떡살에 고흥 석화와 백, 황으로 얌전히 나눈 계란고명을 얹고, 마지막으로 기름기 잘잘 흐르는 고금도 김을 흩뿌린 후 텃밭에서 갓 캐온 대파 송송 썰어 참기름 둘러 완성시킨 떡국 냄새에 우리 형제들의 식지(食指)도 자공처럼 절로 움직였을까.
주나라 정영공 원년, 초나라 사람이 커다란 자라를 영공에게 헌상했다. 공자인 자공과 귀생이 참내(參內)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순간 자공의 식지(食指), 즉, 음식을 집어 먹는 두 번째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러자 자공이 곁에 있던 귀생에게 제 손가락을 내보이며 말했다.
“내 손가락이 이렇게 움직일 때는 어김없이 맛있는 걸 먹게 되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요리사가 커다란 자라를 요리하고 있으므로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영공이 까닭을 묻자 여차저차 하였노라고 아뢰었다. 영공은 요리가 완성되어 나오자마자 자공을 심부름을 핑계로 내보냈다. 미식(美食)에 앞서 자공의 식지가 움직인다는 것을 무효화 시켜보고 싶은 영공의 단순한 장난기 발동이었다. 졸지에 김이 모락거리는 요리상 앞에서 따돌림 당한 자공은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자라를 요리한 솥에 손가락을 넣었다(染指-염지는 다 된 일에서 실패하다, 혹은 따돌림을 당하다는 뜻으로 굳어짐.) 뺀 뒤 손가락을 핥으며 부리나케 퇴궁해버렸다.
그 말을 전해들은 영공은 건방진 태도를 보인 자공을 죽여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공 역시 영공의 그런 성격을 익히 아는지라 선수(先手)를 치고자 귀생에게 의논했다.
“늙은 짐승 죽이는 것도 꺼림칙한데 어찌 주군을....”
귀생이 망설이자 그렇다면 귀생, 당신이 벌인 그동안의 비리를 낱낱이 폭로하겠노라는 지공의 협박에 못 이겨 입을 꾹 다물었고 결국 영공은 자공의 손에 살해되고 말았다. 만종(萬鐘)의 녹(祿)은 사양하다가도 한 그릇의 콩국 앞에서는 제 낯빛을 잃는 게 사람이라던가. 옛 말 이르기를 콩 반 쪽 차별에도 서러운 눈물 쏟아진다 했으니 먹을 것이 빚은 원한이란 그리도 큰 것인가 보다.
눈 쌓인 겨울들판에 새들이 바쁘다. 비틀어 말라빠진 풀 대궁이를 툭툭 건들어 보는 참새 떼들, 볏 동가리조차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 논에선 멧비둘기 무리가 분주하다. 먹을 것 찾아 종종거리다 종아리에 가래톳이 섰다는 흥부네 집 쥐 식솔 뿐 아니다. 맨 사료는 거들떠도 안 보고 마른 하품을 하던 우리 집 개들이 겨울의 삭막함과 지루함 탓인지 시도 때도 없이 밥그릇에 매달리는 탐식증에 걸렸다. 때 아닌 한파에 폭설이 겹쳐 채소값 폭등에다 경기침체로 그 어느 때보다 엥겔계수가 높은 요즘, 제 배 채울 먹거리에 대한 근심이 우리라고 별다르랴. 이웃 중국에서는 호르몬제, 수면제, 중금속제 성분이 섞인 속성돼지고기에 특수사료를 먹여 한 달 보름 만에 출하되는 닭고기 파동으로 떠들썩하다. 더구나 고도성장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크게 확대되면서 빈부 간의 소득불평등을 계측하는 지니계수가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났었던 청나라 말 때와 비슷해졌다는 아우성이다.
더 빨리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도처에서 부메랑이 되어 출현하고 있다. 탐욕은 파멸의 지름길이다. 평생을 외출 한 번 않고 영지버섯 속에서, 그 불로초만 먹으며 살다간다는 살짝수염벌레의 수명이 고작 한 달, 만물을 창조해 서로 어울려 살라 지구에 풀어놓으신 하늘은 제 배 부풀리기에만 혈안이 된 인간을 그대로 두실 리 없다. 도로에 뛰어든 짐승을 피하려다 세 사람의 아까운 목숨이 잃었다는 뉴스보도도 예사롭지 않게 읽힌다. 산천을 누비던 짐승들에게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마구잡이 개발을 한 폐해려니 풀 한 포기 자라지 않게 말끔히 제초된 밭, 깨끗하게 정비된 하천, 시원하게 뚫린 길이 갈수록 오싹하게 다가온다. 각종 병균과 바이러스, 기생충, 유전자 조작 작물에 이어 휴대폰 전자파, 주변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이제껏 익숙하던 길을 잃은 꿀벌들의 군집붕괴현상이 날로 심각하다니 이런 생태계 교란의 결과야 불 보듯 뻔하다.
나는 사람들의 말이
나는 사람들의 말이 무섭다
이것은 개라 하고 저것은 집이란다
여기가 시작이고 저기가 끝이란다
그들의 말은 너무도 분명하다
사람의 감각도 무섭고, 조소어린 장난도 두렵다
사람은 있을 일이며 있었던 일을 모조리 안다
어느 산에 대한 경탄마저 이제는 없고
정원과 정원이 신(神)과의 접경이 되고 있다
나 언제나 경고하며 지키나니,
멀리 떨어져 살지어다
내 즐겨 듣는 사물의 노랫소리
허나 너희들이 손을 대면
사물은 굳어 입을 다문다
내 주변의 온갖 사물을 죽이는 사람들이여.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일찍이 간파했다. 기름진 음식 한 접시에 식지동하여 제 주군을 저버리는 포악한 속성을 지닌 게 인간이니 제 탐욕을 위해 그 무엇을 주저하랴. 조삼모사(朝三暮四), 아침에 세 덩이, 저녁에 네 덩이 주던 먹이를 조사모삼(朝四暮三)하겠다 했더니 환호성을 내질렀다는 원숭이. 우리야 말로 우선 잘 먹겠다고 나중엔 빈 밥그릇 긁는 신세도 마다 않겠다는 작정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원숭이를 흉보는 손가락도 식지(食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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