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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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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 시가 어렵다구요? 천만에······
원광대학교 오하근 명예교수의 영랑 시 전편 해석

영랑 시가 어렵다구요? 천만에······

 

원광대학교 오하근 명예교수의 영랑 시 전편 해석

해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영랑 시를 산문화, 수필형식

지금까지 나온 어떤 영랑 시 해설집 보다 뛰어난 ‘금자탑’ 세워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오하근 평론가(현재 원광대학교 명예교수)는 책머리에 “영랑은 산문에서도 언어를 대하는 결벽증의 흔적을 엿볼 수 있을 정도로 긴축된 언어를 사용했다”며 “그는 시인으로서 당연한 행사로 함축된 의미를 시에 새겨 넣었다”고 말하고 “그래서 그런지 영랑의 시는 해석상 많은 오류를 불러일으킨 듯 하다”고 말했다. 결국 이 말은 필자의 말대로 예스런 표현과 향토색 짙은 방언이 한 몫을 하기도 했지만 맛깔스런 낱말을 골라 갈고 다듬는 시어법이 영랑 시의 난해성을 부추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까다로운 시어는 구태여 해석이 필요치 않는 듯 비껴가기 일쑤이고, 다만 그 시어를 형성하고 있는 음성적인 특질이 율격에 기여하는 정도를 추상적인 언어로 지적하면 모란이 지면 한 해가 다 가고 말 듯 영랑 시의 논의는 다 끝난 줄 아는 듯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영랑 시의 설움의 한 원인이라고 개탄해 마지않는다. 또 영랑은 일제 강점 말기에 난다 긴다 하는 작가들 거의 대부분이 친일문학에 허리를 굽힐 때 누구보다도 격한 저항시를 쓰다가 아예 붓을 꺾어버렸고, 가장 서정적인 시인이 가장 저항적인 시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몇 안 되는 시인인데도 저항시인이 아닌 서정시인으로만 인식되었다는 점도 기가 막힐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영랑은 지지자들에게는 의미를 망각하고 음악성만을 추구한 시인으로 남아 있고, 반대자들에게는 조국의 현실에 눈 감고 달콤한 순수서정의 세계에만 몰입한 시인으로 인식되어 제대로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시인으로 남았다는 사실은 바른 평가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 시대에 영랑의 시가 해독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듯싶다”고 말한 저자는 “그래서 평설이니, 해설이니, 감상이니 하는 이름을 버리고 ‘해석’을 택한 것은 해독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며 “시를 산문화하는 정도의 수필형식으로 서술했다”고 밝혔다.

영랑 시 87편을 모두 해석한 이 책은 첫 장에 나오는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에서 나오는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이란 구절에서 책의 제목을 뽑았다. <엔듯(가슴엔듯) : 에인 듯. 가슴엔 듯 : 가슴에 있는 듯>, 빤질하다(빤질한) : ‘빤질거리다(거죽이 매우 매끄럽고 윤기가 흐르다)’의 변개어(變改語)> 이렇듯 어휘 하나하나를 해석하면서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은 ‘가슴에 있는 듯도 싶고, 눈에 있는 듯도 싶고, 또 핏줄에 있는 듯도 싶게’란 의미로 마음이 그 가운데 어느 한 곳에만 있는 듯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마음은 그 모든 것에 숨어 있다고 시원스럽게 자상하게 손에 쥐어주듯 설명하고 있다.

오하근 평론가는 전북 김제 출신으로 전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전남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한 문학박사이다. 「현대문학」평론 부문 추천완료를 1981년에 했고, 스토나부록 뉴욕주립대학, 연변대학 교환교수를 지냈다. 목정문화상 문학부문, 김환태평론문학상 수상으로 평론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현재 원광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며 「김소월 시의 성상징 연구」「김소월 시어법 연구」「한국현대시 해석의 오류」「전북 현대문학(상·하)」등이 있다.

그는 이미 김소월에 대해 깊이 연구한 사람답게 “북에 소월이요 남에 영랑이라 했던가. 그런데 소월은 ‘나’를 ‘내 몸’으로 표현하기 예사이고, 영랑은 이를 ‘내 마음’으로 대신하기 일쑤였다. 소월 시에는 ‘내 몸의 상처받은 맘(엄숙)’ ‘내 몸은 생각에 잠잠할 때(묵념)’ 등 ‘내 몸’이 20여 군데 있고, 영랑 시에는 ‘내 마음을 아실 이’ ‘꿈 밭에 봄 마음’ 등 50여 군데에 ‘마음’이 있다”며 “아마도 소월의 시는 짙은 이별과 상실 등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행위가 잦고, 영랑의 시는 옅은 동정과 애수 등의 정서가 마음에 고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김소월의 시와 영랑의 시를 비교 분석해 놓았다.

저자의 전라방언의 시원시원한 해석은 백미이고, 소설작품, 시조, 속담·격언, 두보의 시를 비롯한 중국의 유명한 시인, 또는 이름 있는 시인의 시를 비교 분석했는가 하면, 그리스로마 신화, 가사문학, 세계명작, 고전문학, 외국 시, 외국 동화 등을 비교 분석했으며 영랑의 시를 그야말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저자의 박식한 지식이 총 망라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애매모호한 어법을 창출하여 저마다 갖가지 아이러니를 빚어내어 각가지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지적도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의 마지막 시 소개는 ‘한오월五月恨’이다.

모란이 피는 오월 달

월계月桂도 피는 오월 달

온갖 재앙이 다 벌어졌어도

내 품에 남는 다순 김 있어

마음실 튀기는 오월이러라

 

무슨 대견한 옛날였으랴

그래서 못 잊는 오월이랴

청산靑山을 거닐면 하루 한 치씩

뻗어 오르는 풀숲 사이를

보람만 달리는 오월이러라

 

아무리 두견이 애달파 해도

황금 꾀꼬리 아양을 펴도

싫고 좋고 그렇기보다는

풍기는 내음에 지늘껴건만

어느새 다 해진 오월이러라

 

저자는 이 시를 일컬어 ‘영랑 절명의 시’라고 명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하고 있다.

오월은 모란이 피고 월계가 피는 달이다. 모란과 월계는 둘 다 화사하고 탐스럽기 이를 데 없는 꽃이다. 그리고 대부분 정열적인 붉은빛이다. 그런 꽃들의 유혹에 의젓할 수만 없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이 있고 성이 있어 시기와 질투와 싸움이 그치지 않는 재앙, 그리고 연애를 연습하는 양 애들조차 바람나서 짓궂게 장난치는 지양의 달이 또한 오월이다. 그러나 화자에게는 사랑과 미움이 교차하고 사랑이 오고가고 했어도 아직 품속에 다순 김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다순 김은 임의 체취인지 사랑의 추억인지 또 다른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다순 기운이 응축되어 악기를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원이 되어 가슴속 심금을 울린다.

무슨 대견한 옛날 일이 있은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런 일 때문에 오월을 못 잊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일이란 다 그런 것으로 잊고 잊히는 것이다. 오월은 옛날에 있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청산을 거니노라면 하루 한 치씩이나 무성하게 자라는 풀숲 사이를 풀만큼이나 무성하게 뻗어 오르는 보람이 이어가며 달려오는 오월이 여기 있기에 나는 오월을 잊지 못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오월은 보람의 계절이다.

오월의 꽃이 모란과 월계화라면 오월의 새는 두견과 꾀꼬리이다. 아무리 두견이 옛날이 서러워 애달파 울고 황금빛 꾀꼬리 짝짓기 하는 아양을 펼쳐도 그것이 좋네 싫네 하고 내 입맛에 맞추기 이전에 이미 새의 소리와 새의 몸짓에 흠뻑 젖고 오월의 향취에 오히려 싫증이 날 정도로 지치도록 취하여 지내왔는데 어느 새 오월은 지나가 버렸다. 오월은 그렇게 한이 많은 계절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는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하고 한탄했는데, 여기 「오월한」에서는 그 보람이 나의 것이 아니라 오월 자체의 것이라 하였다. 오월은 그렇게 내가 느끼고 판단하기 이전에 이미 스스로의 보람을 펼치다가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영랑도 이 마지막 시를 쓰고 가버렸다. 영랑은 시작품으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서정의 세계로 복귀했다. ‘내 품에 남는 다순 김 있어 마음실 튀기는 오월’ ‘청산靑山을 거닐면 하루 한 치씩 뻗어 오르는 풀숲 사이를 보람만 달리는 오월’ 등의 시어와 ‘온갖 재앙이 다 벌어졌어도’ ‘무슨 대견한 옛날’ 등의 일상어를 조합하여 그가 가장 좋아하던 계절인 오월의 아름다운 서정을 마지막까지 펼치고 영랑은 그렇게 불의에 갔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이란 영랑의 시 해석집이야말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만의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펴는 순간, 이제 비로소 영랑의 시에 감춰진 속살에 대해 한 마디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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