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生涯) 마지막 승부(勝負) (2)
행복(幸福)의 조건(條件)
삶이 지루한 것만은 아닐테지요. 또 권태로운 것, 괴로운 것과 슬프고 애닮은 아픔도 아닌 그런대로 신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어느 땐 사랑이 가득히 샘물처럼 넘치듯 하지요. 짜릿한 감정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에 느껴봤던 날들이 종종 있었기에 지금은 나더러 한사코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 해도 부르는 것이 오히려 마음에 전율(典律))처럼 따뜻이 다가오는 때가 많아져버린 완연한 노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내 바로 코앞에 다가선 팔순 줄이 빛바래고 주름진 어쩔 수 없는 착실한 노인이랍니다. 그래서 이젠, 마음을 다 열어놓고 다시금 처음부터 배우는 자세로 돌아앉아 있습니다. 짙은 가을 다 베어버린 논둑을 아내와 둘이 손잡고 걸어가던 칠량면 뚝 길, 먼발치의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아낙들을 보며 하찮은 세월의 뒤안길에서 어처구니없이 지는 듯 살아가야하는 아픈 마음을 달래는 한 노인이랍니다.
그래서 가끔은 대학 젊은 시절에 보았던 스팩타클한 영화 ‘콰이강의 다리’나, 애정의 ‘황혼(黃昏)’ 영화 마지막 길 언덕을 터벅터벅 넘어가던 주인공 ‘로랜스 올리비에’를 동경하기도 하고, 젊음을 다시 보듬고 싶어 읽었던 ‘좁은 문’소설도 기억해 봅니다. 다 그것이 어쩌면 행복의 조건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살아가다 보니 어쩌면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행운과 고난의 연속 드라마였던 사실을 가끔씩 기억 해 보면서 홀로 웃음지어 봅니다. 내 인생살이 사전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旅行)이랍니다.
그런 속에서 2012년 6월 뜻하지도 않게 대장암(大腸癌) 2기로 수술을 받고 신음하는 내 곁에 오직 아내만이 나의 손을 잡고 아픔을 함께 하던 때, 혹시나 해서 아내도 내시경을 해본 결과 위암 초기로 수술을 받아 오히려 아내의 곁에서 이승을 넘나들던 고난의 기간 동안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더 살다 오라고 몸을 보링 시켜 주었습니다.
산다는 거 그것이 불시에 닥치는 이런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 살아가다 보면 누가 나에게 섭섭했다 해도 과거 내게 베풀어줬던 고마움으로 행복을 바꿔 버려야하겠지요. 다 재주껏 살아가는 것이기에 남이 잘산다고 배아파 하지도 말고, 사촌이 땅을 사도 축하 해줄 줄 아는 것이 행복일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세상은 그런 것 다 잊고 마음 비우고 털털하게 사는 재미도 오히려 쏠쏠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당당하게 처신하며 살아가는 용감한 정신의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루 세끼 탈 없이 먹고 남 같이는 못 입어도 헐벗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그 정신이 또한 행복한 것이지요.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배려(配慮)는 타인의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가 됩니다.
양보하고 배려한다는 것이 원만하고 매끄러운 처신의 윤활유(潤滑油)랍니다. 윤활유 하니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필자가 젊은 시절 대한석유공사 윤활유직매소 담당 판매부장까지 하고 나왔으니 말입니다. 회사 일로 물 불 가리지 않고 뛰어 다니던 시절이 과연 좋았던 날들이라고 이제와 느끼게 됩니다. 어느 직장에서나 사려(思慮)가 깊은 사람은 그만큼 매사에 신중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기 때문에 좋은 평을 받는 것이지요. 조직 사회에서 때로는 당신도 언젠가는 리더가 되어 통솔하는 직위를 갖게 될 때가 오기 마련이니까… 그런 때 아래 사람 들에게 너그러운 배려야말로 참된 예의(禮義)가 되며 존경받게 되겠지요. 가식적인 예의는 금세 표시가 나게 마련입니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에게 공손하게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때로는 자기의 감정이나 표현을 접어둘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은 아름다운 얼굴보다 낫고, 아름다운 행위는 훌륭한 예술품을 감상하는 것과 갔습니다.
행복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는 게 아니라 내 자신에게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요즘같이 수시 뉴스에 나오는 일가족 교통사고라든지, 고층 옥상에서 세상을 비관해서 자살하는 일이나 가정을 버리고 이혼을 밥 먹듯 해야 하고, 눈 깜작 할 사이 남의 등골을 빼먹는 세상 가운데 그래도 무슨 배려가 통할 수 있겠는가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달콤한 이기주의 팽배하는 세상. 나날이 아픔을 겪고 살아가야 하는 새가슴이 다 찢어진 허파사이로 숨을 쉬고 사는 서민들의 어진 민초(民草)들. 썩은 열매는 이번 모진 태풍에 스스로 떨어지고, 탐스런 열매만이 살찌우는 빈익빈 (貧益貧) 부익부(富益富)의 현실 사회임일 개탄합니다. 이들도 할 말들이 많아 선거철만 되면 철새들이 어디서 그리도 잘 날아 오는지? 세상인심도 하도 많이 변한 듯 어제가 옛날 세상이 돼 버렸군요. 결국 아사리판 세상에 살아가다 보니 가슴이 다 찢어져 갈 곳을 모르고 방황들을 합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이겨야한다는 프랑카드를 들고 용감히 싸워 살아가야 합니다. 버리고 갈 것에 불과한 이 몸뚱이 썩어갈 가죽에 불과한 것을…
사는 동안 탈 없이 몸 잘 쓰고 하나님께 돌려드리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 가장 현명(賢明)한 생각이겠지요. 어쩌다 수필 작가가 되어 마음의 산책인 인생의 향취와 더러운 오염의 구린 냄새를 함께 범벅 시켜 마시며 그림을 그려보는 중이랍니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