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단편소설 박민규의 ‘깊’을 읽고.
김한얼(강진고3)
우리는 항상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 무언가를 가지고 싶고 성취하고 싶고 이뤄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목적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 된다.
5명의 디퍼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실험에 임했었을까. 현실에서 뼈아픈 실패를 겪은 드미트리는 5년 여 간의 심리 치료 끝에 목적을 찾고자 하는 이유로 실험에 지원했고, 달에서 제 2세대 인류 소피는 항상 동경해왔던 ‘지구’의 마음을 찾고자 한다. 셈피는 ‘이것은 우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코끼리의 울음입니다.’ 라고 말했듯이 지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왔고, 크리스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싶은 모험심을 가지고서 임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공이라는 실험자만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서 실험에 임한다.
이 5명 중 목적이 없는 사람이 유일하게 공이었다. 공은 삶의 의미 자체도 알지 못했고 살아야할 이유조차도 알지 못했다. 50년 전 자살 붐을 불러일으킨 최초 우주 자살자인 자신의 아버지 부안 리의 우주선에서 튀어나온 탈출선에서 40년간 냉동상태에서 보내다가 10년 전에 우주쓰레기 청소부에 의해 겨우 발견된 공은 ‘실어증’마저 앓고 전혀 의욕이 없다.
실험의 총 책임자이자 지휘자인 마담 ‘얀’은 이들을 자식처럼 생각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듯이 얀은 자신이 디퍼를 창조했다고 믿었다. 그 동안 실험을 통해 자신이 던진 수많은 주사위 뼈들이 부러지는 것을 보아온 그녀는 실험자들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보인다. 마치 ‘어머니’라도 되는 듯 그녀는 항상 그들을 어루만져주고 격려하라고 한다.
실험의 목적은 인간의 몸으로 19251m 라고 추정되는 지구의 시작이라 추정되는 유트러스 해구의 바닥까지 닿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지구의 끝까지 닿는 것일까. 깊의 세계에서 인간은 우주까지 진출했고 아직도 끊임없이 팽창한다. 그러나 정작 인간은 우주로 진출했지만 지구 내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아무 것도 몰랐고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구의 틈’이 발견됐으니 오죽했을까. 인간은 단순히 발견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인간은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엉청난 압력이 가해지는 수심의 압력 속으로 진출하기 위한 실험까지 진행한다.
갈 수만 있다면 가야만 하는 속성을 가진 게 인류라고 생각한 얀처럼 대항해시대를 만든 서양인들처럼 어쩌면 인류는 어디로든 개척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게 아닐까?
마지막 실험에서 공과 소피는 죽는다.
공은 처참한 시신이 되어 죽음의 상징이 되어 버렸고 소피는 몸은 멀쩡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마음조차 얻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살아남은 3명은 마지막으로 빛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빛은 바깥의 빛이 아닌 물결을 통한 수십 미터 위에서 흘러나오는 빛이었다. 그들은 이미 평범한 뭍 위의 사람들과는 달랐다.
결과는 너무나도 순조로웠다. 그토록 죽어나간 실험자들의 희생의 결과인지는 몰라도 19251m 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오차범위 내에서 닿는다. 바닥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고요하고 어두운 심연만이 그곳에 존재할 뿐이었다. 이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그들은 단 한 가지만을 깨달았다. 이제 그들은 ‘인간’이 아닌 디퍼라고. 지상을 편하게 여기는 인간이 아닌, 이 깊은 심해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디퍼라고. 그들은 실험의 목적은 이뤘다. 그러나 그 자신들이 원하던 그 목적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어쩌면 목적은 이미 이뤄줬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마지막에 우물을 발견한다. 19251m는 끝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 더 깊은 심해의 시작이었다. ‘얀’은 그들을 계속해서 돌아오라고 종용하지만, 최후의 디퍼 세 명은 이 깊이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지구의 시작을 향해 다가선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죽는다.
그들은 죽었다. 죽은 그들은 서로 만난다. 그들은 죽어서 마음이 되었고 자신들만의 마음을 발견한다. 살아서 생전에 발견해지 못했던 그 소중한 ‘마음’을 말이다.
박민규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던 의도였을까? 사실 이 소설을 두 번 읽었지만 아직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참신한 상상력과 구성 그리고 허무한 결말. 어쩌면 박민규가 말하려 했던 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팽창과 욕망’이 아니었을까? 더 이상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니게 된 디퍼들의 이야기를 통해 박민규는 이러한 허무감을 전하려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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