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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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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고사성어 18
비육지탄(髀肉之嘆)

이야기가 있는 고사성어 18

 

김현임(수필가)

 

비육지탄(髀肉之嘆)

 

신문에 실린 봄 들녘의 풍경이 상큼하다. 농부와 소가 한 조가 되어 쟁기질하는 사진 속 둘의 장딴지는 팽팽한 긴장감이 역력하다. 겨우내 눈꺼풀에 무겁게 매달렸던 졸음을 떨치고 만물이 소생의 기지개를 켜는 봄, 여명이 채 가시지 않은 둔덕에서 무려 60여 명의 여인네들이 묘삼(苗蔘)을 심는 조춘(早春)의 정경이라니! 힘 좋은 남정네들은 아낙들이 거쳐 간 자리에 덮을 짚다발을 나르느라 연신 지게질하는 활기 넘치는 노동현장의 정경은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그들의 일원으로 몇 날 며칠 새 인삼밭을 조성 중인 내 오라버니 삼전거사(蔘田居士)께선 밤마다 장딴지깨나 당겨하시는 눈치다. 하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비육지탄(髀肉之嘆), 자신의 살찐 넓적다리에 저절로 터져 나오는 탄식을 그 분께선 결코 하실 일이 없으실 것이니 말이다.

후한 시대의 건한 원년, 모사꾼 조조는 헌제가 도읍을 옮겨 낙양에서 허창으로 떠나도록 일을 꾸민 다음 자칭 대장군이 되어 조정의 실권을 잡았다. 이 때 유비는 인품과 용맹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조조의 간계로 여포와 원술의 합동 공격을 받고 오히려 조조에게 의탁하는 비루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니 한나라 황실의 후예로서 자나 깨나 한나라의 부흥을 이룩하리라 벼르던 유비의 심사가 오죽했을까. 그는 장수 동승과 더불어 간신 조조를 죽일 계획을 세웠으나 그만 탄로되어 위기일발, 간신히 탈출해 겨우 목숨을 건진다. 이는 이미 삼국지에서 널리 알려진 얘기니 더 이상 거론할 건 없고.

어쨌든 조조가 숱한 세력을 제압하고 하북 일대를 장악할 때, 유비는 거주로 여남으로 전전하며 6년이란 세월만 덧없이 흘려보낸다. 조조에게 쫓겨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니 비운의 허송세월이다. 근근이 자기 기반이나 유지할 뿐 천하를 넘보는 데는 태부족인 유표 밑에서 일개 객장(客將)으로 머물고 있는 유비의 울적함이라니! 어느덧 나이도 50을 바라보기에 이르렀다.

“언제 말 위에 올라앉아서 천하를 호령하고 한실(漢室)을 재건할까”

어느 날 유표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무심코 자신의 다리를 만졌다. 그러다가 안쪽 복숭아뼈에 도톰히 살이 올라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유비의 눈에서는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문자 그대로 비육지탄의 눈물이었다. 연유를 전해들은 유표도 가슴이 저렸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세월을 고심참담하던 유비가 원기를 회복하고 권토중래(捲土重來), 질풍노도(疾風怒濤)의 기세로 쳐들어왔을 때 한가로이 붓글씨를 쓰고 있던 조조는 너무 놀라 그만 들고 있던 붓을 떨어뜨렸다던가. 이런 일화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건 며칠 전, 아들의 취업문제로 근심하던 지인의 힘없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아서 일게다.

눈 먼 거북이가 물에 뜬 나무를 붙잡는다.(맹귀이목盲龜易木)

배고픔이 심한 자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기자이위식飢者爲易食)

목마른 자는 탁한 물이라도 먹는다.(갈자이음渴者易飮)

이 모두 취업난에 허덕이는 요즘 시대의 젊은 층의 심정을 대변한다. 그 뿐 아니다. 큰 그릇을 작은 용도로 쓴다는 대기소용(大器小用)이라던가 천리마에게 겨우 쥐잡기를 시킨다는 사기포서(使驥捕鼠) 등등, 이런 고사성어들 역시 미처 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최저임금 수준의 아르바이트에, 기약 없이 비정규직에 머물고 있는 억울한 청춘들을 이르는 말이다.

‘하늘의 기러기도 쌀과 수수를 찾아 날아간다’는 시구로 당대의 권력자를 향해 한 자리를 읍소(泣訴)한 건 시성(詩聖) 두보요, 기득권의 부패로 영재들의 재능을 써먹을 자리가 없는 부조리를 개탄하며 ‘독소(獨笑)’, ‘홀로 웃는다’는 시를 읊었던 다산선생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어느 부서의 장(長)에게서 들은 얘기에 따르면 요행 어쩌다 빈 자리 하나가 생기면 그 자리를 겨냥한 이력서 뭉치가 자루로 담을 만큼 쌓인단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이 시대에서 취업이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란 말 밖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차피 죽을 만큼 힘이 드는 게 인생이니 이 모두 신이 준 뜻이라고 생각하고 순응하며 즐겁게 살도록 노력하라 충고하지만 너나없이 모수(毛遂)가 되어 나설 수 밖에다. 청년 실업자, 그들의 사연이 어찌 그 옛날 모수만큼 절박하지 않겠는가. 평원군의 식객으로 머물기 3년, 제 스스로 자신을 추천하는 모수자천(毛遂自薦)이라는 고어의 출원(出源)이다. 한 밤중 방문을 두드리며 자신을 써주길 간청하는 모수에게 평원군이 물었다.

“여보게, 뾰쪽한 송곳은 아무리 호주머니에 넣어 감추려 해도 결국 밖으로 드러나는 법(낭중지추囊中之錐), 자네가 그토록 뛰어나다면 어째서 삼년이란 세월에 이르도록 단 한 사람도 그대를 내게 천거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르신께서 단 한 번이라도 저라는 송곳을 어르신의 호주머니에 넣어보신 적이 있으셨나요?

평원군은 드디어 모수를 발탁해 큰일을 맡긴다. 수백 명의 군사가 해낼 일을 세 치 혀로 명쾌히 해결한 모수, 신뢰해 준 평원군에 대한 보답이다.

구직난에 궁여지책, 부모에게 얹혀산다는 캥거루족의 증가는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사토리 족(族)이 기승을 떨친단다. 도통(道通)에 이른 듯 자가용이나 명품 구입은 아예 사절, 음주나 여행도 삼가며 일체의 탐욕(貪慾)을 상실한 깨달은(?) 세대를 이른다. 최근 일본을 강타한 극심한 경제난에 적응하려는 고육지책에서 나온 현상으로 젊음의 전유물인 소비욕망을 상실한 채 오로지 절약의 생활화만이 합리적 선택이라는 초식성(草食性) 청년들, 그 사토리 족이 증가일로란다. 경제대국이라는 미국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학위 쟁쟁한 고학력자들이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고. 이 모두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경기불황의 여파다.

이른바 백락의 눈에만 보였다는 명마다. 평원군과 모수 사이에 얽힌 백락일고(伯樂一顧)의 사례는 이제 고사 속에서나 존재하는가. 말(자가용)을 타고 대지(도로)를 내달려 천하(경제)를 호령해야할 사나이(젊은이)가 속수무책에 빠졌다. 도대체 몸은 무겁고 퉁퉁 살 오른 다리를 바라보노라니 제 스스로도 한심하다. 새파란 청춘이 자신을 펼칠 기회를 못 만나 허구한 날 신세타령이나 늘어놓는 꼴은 예나 지금이나 볼썽사납다. 팽팽히 긴장된 젊은이의 장딴지에 나라의 미래가 걸렸건만 도약(跳躍)의 봄은 아직도 요원한가. 새삼 다가오는 비육지탄의 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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