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길목에서 이훈
선물과 뇌물사이
이훈(목포대학교인문대학장 국어국문학과교수)
언젠가 읽었던 <뇌물>이란 제목의 글이 생각난다.
‘뇌물과 선물을 구분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 우선 받고 잠이 잘 오면 선물이고, 안 오면 뇌물이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서도 받을 수 있으면 선물이고, 그렇지 않으면 뇌물이다.’(전문)
좋은 선물을 받으면 오히려 잠이 잘 오지 않는 것 아닌가? 기쁘고 고마워서 말이다. 그래도 결국에는 상대방의 좋은 마음이 잠을 달게 해 줄 것이다. 그런데 뇌물은 어떨까? 그런 걸 받으면 위에서 얘기한 대로 양심에 거리낄뿐더러 걱정이 되기도 해서 잠이 잘 안 올 것 같다. 다른 편으로 생각하면, 뇌물을 받을 정도가 되면 여러모로 뻔뻔해져 있을 테니까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편하게 잘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치인은 뻔뻔해서 오래 산다는 냉소적인 말이 있는데 오래 살자면 우선 잠을 잘 자야 한다.
둘째 문장은 조금 그럴듯하다. 자리를 옮겨서도 계속 선물을 한다면 대가에서 자유로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옮겨간 자리가 더 높은 데라면 인간관계가 중요시되는 우리 한국사회에서 대가를 생각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래서 참말로 그럴듯해지자면 자리를 떠나서도 여전히 받을 수 있는 것을 선물이라고 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도 따지고 들자면 한이 없다. 자리를 떠난 이보다는 그가 맺는 관계를 겨냥해서 하는 선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선물 여부를 가리는 기준으로서 일관성이나 지속성을 내세울 수 있을 것 같다. 받는 이의 지위에 관계없이 시종여일하게 보낸다면 그것은 선물로 치는 게 좋다는 말이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는가? 그냥 고마워서 보내고 받으면 부담이 없이 기쁘기만 한 그런 선물이 있는가? 지금 내 나이로서는 그런 판정을 내리기에 많이 이르지만, 지금까지를 기준으로 치면 내게는 있다. 물론, 마음이 좁은 나는 받는 쪽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가가 있을 리 없고 거기다가 잊지 않고 보내온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내가 보내는 것이 선물이 되도록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계속 보내겠다는 마음도 먹어 본다. 아! 그러고 보니, 선물 여부는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결정되는 것이다. 선의가 시간의 마모성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너무 무거워진 느낌이다. 저런 기준으로 보면 선물이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선물은 참으로 많다. 나무들, 강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길, 가끔씩 보내오는 제자의 편지들, 만날 때마다 웃는 얼굴, 이런 것들이야말로 무상의 기쁨을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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