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 (35)
굉게 멍게한 말을 다 물어보네
군동면 화방마을
오덕심(88세)
군동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고개를 하나 넘으면 화방마을이 나온다. 명산이라는 화방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일명 기지개를 켜는 산 또는 기상이 솟구치는 산이라 부를 만큼 웅장함 한 가운데 평화로운 마을. 기자가 지난 1월 9일(수)자 초고령화 취재를 시작하면서 찾았던 마을이다. 그곳에서 아흔 살의 윤주봉 할아버지를 만나 1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며 웃었던 생각을 하며 화방마을을 찾았는데 안타깝게도 윤할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9년 동안 치매를 앓던 할머니 뒷바라지에 너무 힘들었다던 윤할아버지. 신문 나오면 꼭 한 부 보내 달라 하시던 말씀. 그 뒤 한번의 전화통화에서 감사하다고 여러 번 반복하시던 윤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삼가 윤할아버지의 명복을 빕니다.
“성은 오가고 이름은 덕심이요. 그런디 왜 물으요?”
풍수지리학상 기세가 등등하다는 화방산을 병풍처럼 바라보고 있는 오할머니 집은 입구부터 티끌하나 없이 깔끔하다. 텃밭에 가꾸어 놓은 채소 또한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으며 어느 것하나 비뚤어짐 없이 반듯하다. 그렇게 정갈하게 가꾸어놓은 주변 못지않게 오할머니 성깔이 보통 아님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89살인디, 민정나이로 해야재 그란게 88이재.”
얼른 한 살을 깍아 내리는 오할머니가 묻는 말을 여지없이 되받아친다. 이웃마을인 덕천에서 18살에 윤씨집안 22살인 셋째아들에게 시집왔다. 친정이 잘살아서 독선생까지 두고 한글을 배웠던 오할머니였다. 시댁에서는 셋째아들에게 모시밭4평을 떼어주어 제금 나왔다.
“어린자석들 데고 사는게 고생이다 그라제 뭔 고생이겄어.”
33살에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이후 4남매를 키우기 위해 미싱바느질로 동네 사람들 옷을 만들며 살았다. 친정에서 배웠던 바느질 솜씨와 남편이 사주었던 미싱이 오할머니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었다.
“모시삼고 미영삼고 구식시상에는 모다 그러고 살았재.”
바느질 솜씨는 이웃 동네까지 소문이나서 한복, 양복, 수의복까지도 주문이 들어왔고 밤을 세워 옷을 만드는 일이었다.
“바느질 했으먼 뭣해?”
오할머니는 또 되받아친다.
“어느 세월로 넘어간지 어쩐지 몰라, 그저 남이 산께 산 시상이제 통 몰라.”
혼자 힘으로 4남매를 잘 키워내기 위한 생각뿐이었다는 오할머니의 말투는 마치 세상에 대한 강한 방패처럼 느껴졌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패는 살아가기 위한 삶의 수단이었을 까. 시시각각 닥치는 힘든 삶에서 혼자서 방어해야 하는 외로움과의 싸움은 끊임없이 쓸고 닦는 일일지도 모른다.
“개똥도 묵으라치먼 묵을것이제.”
원래 술은 못했고 담배도 안한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개똥도 묵으라치먼 묵는다는 말에 담배가 개똥보다는 낫지 않느냐 했더니 오할머니는 담배를 조금 피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없어서 못 피우지 라며 다시 말을 되받아친다.
“지금 담배 줘봐? 못핀가? 있으문 지금이라도 피재.”
말투에서 사람의 살아온 이력이 보인다. 오할머니는 사는 것이 고생이다. 라고 말한다.
“굉게멩게한 말을 다 물어보네.”
살아온 세월을 어찌 단번에 말 할 수 있을까. 남이 사니까 그냥 따라서 살아온 세상이라고 말하는 오할머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말과 말투에서 한 사람의 일생을 엿 볼수 있지 않을까. 장남 부부인 윤종율(63) 임금화씨와 함께 살고 있는 오할머니는 평생 다부지게 살아온 성격만큼이나 지금도 대쪽같다. 장남 아들 내외의 말 한마디가 거슬리게 들리면 며칠동안 밥도 안 드시기도 하며 의료원에 입원한다. 그러한 자신의 성질을 인정하는지 오할머니가 우리 장남아들 내외가 퍽 애쓴다며 처음으로 웃는다. 이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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