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 시대 37회(신전면 논정망ㄹ 운점례할머니(87세))

지금은 초고령화시대(37회)

신전면 벌정리 논정마을 윤점례 할머니(87)

윤점례 할머니는 해남에서 태어나 19살에 논정으로 시집왔다. 시집의 보잘 것 없는 살림살이를 본 새색시는 한없이 눈물만 흘리고 말았다. 가난한 집으로 시집보낸 중매쟁이와 부모가 미웠다. 3남1녀를 두었던 시아버지는 혼자되어 남의집살이로 근근이 밥이나 얻어먹으며 아이들을 길렀으며 그렇게 남의집살다 자식들을 결혼시켰다.

“시집온게 넘의 접방살이 하고 있더만, 어매가 밉고 중매쟁이가 어찌고 밉던지말여·······참말로 눈물만 났제.”

25살 남편은 결혼 후 바로 각시를 큰 집에 놔두고 남의집살이를 갔다. 남편도 없는 집에서 윤할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늦은 저녁때가 되면 남편이 돌아온다. 그때 시아버지는 잠잘 방을 비워주기 위해 마을로 나갔다.

“방하나 정제하나, 사랑 한 칸 정제하나 있더만, 큰방은 큰아들 며느리가 잠자고 사랑 칸은 시아버지가 잠자는 방이여, 그랑게 남편은 고입(남의집살이)가 부렀제.”

시아버지는 3년간을 밤마다 방을 비워주며 지냈다. 방 한 칸 없는 집에서 남편마저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살지 못했을 거라는 윤할머니. 평생 베개 없이 살 정도로 팔베개를 해주던 남편이었다며 아쉽게 먼저 간 할아버지가 불쌍하다며 눈물짓는다. 어린 색시가 낮 동안 온갖 궂은일에 시달려 투정을 부려도 남편은 한번도 화를 내지 않고 토닥거려주었다.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가 아이를 낳은 후 찬 곳에 누웠다가 죽었다는 사실이 늘 마음아파 각시한테 만큼은 손을 안대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속이 실겁다며 그것이 정스럽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큰 동서의 시집살이는 견디기 힘들었다. 잠시도 쉬는 꼴을 보지 못했다. 자기 빨래까지도 모두 맡기지만 남편의 빨래를 해주지 못하게 했다. 그 이유는 남의집살면 그 주인집에서 빨래를 해야지 왜 빨래를 집에서 해주냐는 것이었다.

“큰동서도 서럽게 살다왔는 갑디다. 그랑게 인정머리가 없어, 마눌을 데려다 놨으면 빨래라도, 수건이라도 빨아주게 해야제······부모같으먼 얼른 빨아주라고 헐턴디 말이요.”

그래서 부모시집살이와 동서시집살이는 다르다고 말한다. 부모 밑에서는 시집살이를 해도 절대 해롭게는 하지 않지만, 동서는 여지도 없다는 것이다. 남편은 각시를 맡겨놓은 죄로 보리농사 때가 되면 보리 한가마 씩을 갖다 주곤 했다. 논도 밭도 아무것도 없었던 시댁살림은 윤할머니의 부지런함으로 조금씩 낳아졌다.

“살림은 아무리 남자가 잘 벌어도 안에서 여자가 잘하지 않으면 도레미타불이여.”

윤할머니는 3년간 큰동서와 함께 살던 중 똑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한 집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어 남의 접 방으로 나왔다. 남편이 집한칸 마련하지 못하게 남의집살이를 10여년 넘게 계속했으니 그 이후도 옹색한 큰집에서 일만 해주며 살았다. 그럴 때마다 부모가 원망스럽고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신랑이 온 날이었다. 동서끼리 싸움이 생겼다. 남편이 보는 데서 동서끼리 싸웠던 일이 못내 마음에 걸리고 슬퍼져 죽고만 싶었다. 그때 죽어버리자고 마음을 먹고 남편이 잠든 사이 밖으로 나왔다. 치마에 독을 담아 저수지로 향했다. 그러나 가는 길에 비치는 보름달이 왜 그리도 밝던지·······그날 밤 달은 너무도 밝았다. 훤한 달빛만큼 자신의 그림자도 크게 비치었다. 달빛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가 너무도 처량하고 불쌍하여 울고 또 울었다. 그러나 처연한 달빛에 마음은 점점 고요해졌고 달빛에 훤히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볼수록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차마 죽지 못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날새벽 남편이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었고 윤할머니는 마실갔다 왔다고만 대답했을 뿐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어디 갔다 왔냐고 물읍디다. 그래서 마실갔다 왔다고 그렸제, 그란시상을 일일이 고상허고 산일을 다 말 못해.”

흘린 눈물만큼 부지런했던 윤할머니는 마을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고운 심성도 그렇지만 어떤 일을 맡겨도 내일처럼 해주기 때문이다. 어려운 살림에도 시아버지 생일 때면 어떤 일이던지 다 제쳐두고 새벽 장을 보아다가 상을 차렸다. 시아버지는 그러한 며느리를 예뻐해 주었다. 또한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1년 동안 상복을 입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 새벽이면 맑은 물을 떠다 놓고 곡을 했다. 윤할머니는 배운 것이 그런 것이라, 효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만 알아서 그랬노라고 말한다.

천성이 일을 보고 가만있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동네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앞치마 두르고 나가 자신의 일처럼 했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보리가락 국수나 감자대 밖에 없어도 배고픈 사람을 그냥 보내지 못해 자신은 굶어도 먹여서 보냈다. 그래서인지 인심을 잃지 않고 살림도 조금씩 불려 나갈 수 있었다.

“총각 때 논 네 마지기 사 놓았는 갑디다. 한해 벌고 나락 석 섬 넘어 애기가 3살 될 때 약천으로 이사 갔다가 나중 다시 왔제, 운이 있었던가 해마다 논이 사집디다. 내가 같이 벌고 헌께 살림이 조금씩 더 불어나기도 허고.”

키가 크고 날씬한 몸이었던 남편은 상가집 상여소리에 불려 다닐 만큼 목청이 좋아 상가가 나면 언제든지 불려가 초성을 했다. 그래서 여느 상가고 부르는 상가에 가서 댓가도 없이 상여소리를 해주었다. 그러한 남편이 상복을 얻어오면 윤할머니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만큼 입을 것 먹을 것이 부족한 세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친구 집에 가서 치상을 치르고 온 뒤로 아프기 시작했다.

“넘보기엔 괜찮아도 그렇게 안 좋읍디다. 1년을 시난고난 일하다 그냥 가셨어요. 말도 못허게 맘이 아프지. 내가 미치게 생겼으먼 미치제, 대들보 같이 산께.”

윤할머니는 바다에 나가 꼬막도 잡고 석화도 까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낮에 잡아놓은 갯것을 짚으로 만든 옹뎅이에 담아 이고 새벽에 도암장이나 신전장 좌일장까지 걸어가서 팔고 오면 점심때가 된다. 그럴 때마다 남편 있는 사람은 남자가 이고지고 가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럽기만 했다. 남편이 남의집살이 할 때는 집에 없어서 그랬고, 후에는 일찍 가버려서 힘들게 살아가는 자신이 슬펐다.

“아부지 닮아서 이삐요. 우리 큰아들(이나규64)이 고생 많이 했어, 해양대학교 마치고 배타고 장남동생들 뒷바라지 많이 했어요.”

2남 5녀를 둔 윤할머니는 자식들이 잘 살아주니 고맙단다. 결혼시키면 서로 불편하게 살 필요 없이 저희끼리 잘 사는 모습 보는 것이 좋은 것이라며, 살아온 세월을 돌이킬 때 눈물을 흘리던 윤할머니가 자식들 애기에 얼굴이 밝아진다.

“오만 유랑 다 허고, 하와이까정 갔다 왔어요. 막내 사우가 비행기를 탄디 큰딸이 어매 모시고 갔다 오라해서 갔다 왔는디 하와이는 거그 온 사람들한티 전부다 꽃다발을 걸어줍디다.”

윤할머니가 살아온 삶은 한 시대의 역사 아닐까. 처절한 고생에도 나이에 비해 귀도 밝고 목소리도 정확하며 정정한 모습의 윤할머니는 평생 소식을 했다고 한다. 어떤 음식도 한번 입에 대어 안 당기면 다시는 손대지 않는 음식습관이셨다.

“나이를 먹어도 명대로 살다 죽어야 쓴디, 순서대로 가야할 것인디······젤로 걱정이 그것이요. 궂은 꼴 볼까봐·······내가 먼저 가야 쓸것인디 그런 생각만 든당게.” (이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