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처럼 체험하고 싶다”
눈 오는 날의 사의재 주막
북풍이 하얀 눈 휘몰 듯이 나를 몰아붙여
남쪽 강진의 주막까지 밀려 왔네.
다행히 낮은 산이 바닷빛을 가리고
좋을씨고 대숲이 가는 세월 알리네.
장기(瘴氣) 때문에 옷이야 덜 입지만
근심 때문에 술이야 밤마다 드네.
나그네 근심 덜 일 하나 있으니
동백꽃이 설 전에 활짝 피었네.
<객지에서의 회포>
신유년(1801) 동짓달 하순의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다산은 강진으로 귀양 왔다. 역적의 누명을 쓴 신세였으니 누가 반가워하고 잠자리를 주겠는가. 더구나 가는 곳마다 모두 문을 부수고 담장을 무너뜨리면서 달아나버렸으니 다산의 처지는 한없이 방랑거지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다산을 측은히 여겨 자신의 집에서 묵게 한 사람이 주막집의 주모였다. 집이라고 해봤자 겨우 허리 하나 눕히면 꽉 차는 방이었지만 그러나 다산에게는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사의재(四宜齋)는 다산이 귀양살이 하며 살아가던 방을 가리켜“네 가지를 마땅하게 해야 할 방”이라고 정한데서 나온 말이다.
현재 복원된 사의재가 바로 다산이 머물렀던 주막집이다. 다산은 4년간 주막집에서 기거했으므로 주막집의 주모야말로 강진군에서 동상을 세워주고도 남을 만큼 칭송받아야 마땅한 인물이다.
사의재 주막의 주모 이 을미 문화관광해설사
“사의재에서 자고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산의 슬픔을 직접 체험해보겠다는 것이지요. 문의도 많이 옵니다”
사의재 주모 겸 관광해설가로 일하는 이을미씨의 말이다, 그는 다산을 흠모한 나머지 1년 3개월 째 사의재를 맡아서 일하고 있다. 관광객이 일단 사의재를 방문하면 이을미씨로부터 해설을 듣게 된다. 어떤 관광객은 “주모 계시오”하고 찾아오기도 하는데 그만큼 ‘주모’가 주는 어감이 포근하고 정겹기 때문일 것이다. 이을미씨는 “토요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이 일하지만 다산을 가슴에 품고 지내며 사명감 하나로 일합니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갈수록 사의재 주모가 존경스러워지는 것은 그 누구도 받아주지 않은 다산을 먹여주고 재워준 용기와, 다산선생과의 대화가 현대여성 뺨칠 만큼 식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라고 한사코 주모를 치켜세웠다.
“밥 한공기에 반찬이 세가지인‘일식삼찬’을 먹으며 사의재에서 하룻밤 자고 갈 수 없겠느냐는 사람들이 많아요. 숙박을 시키려면 전혀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신분이 확실한 사람들은 괜찮을 것 같아요.”
이을미 주모의 말대로 추운 겨울 눈 내리는 날이면 다산이 강진에 유배 온 첫날을 더욱 체험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감상적인 생각만은 아닐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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