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설핏 지고 있다 서녘이 타고 있다 먼 길 동행한 그림자마저
떠나가고 옷깃을 파고든 삭풍 문풍지처럼 떨고 있다
강물로 밀려오는 천릿길 뿌린 눈물 후드득 한우寒雨가 등걸잠
적시는데 큰샘* 옆 느티나무 아래 사로자며 꿈을 꾼다
먹장구름 빠르게 빈 하늘 뒤덮고 자줏빛 가슴이 찢겨져 흩어진다
비릿한 휘파람소리 폐부를 관통한다
인기척에 실눈 뜨고 별 하나를 쳐다본다
거기 뉘시오 뉘신데 그렇게 한데서 고꾸라져 있소 몰골을 보니
상거지가 따로 없네 그려 어서 들어오시요 나를 거뒀다가 큰 화라도
당하면 어쩌시려고 참견을 하시는 거요
무슨 놈의 화는 화요 게딱지같은 소리는 하지도 마시요
사람이 죽어가는 데 못 본채 하는 그런 인정이 시상에 어딨다요
다산이 주모를 만나 우주 속으로 걸어간다
*큰샘 :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돼 첫 밤을 보낸 주막 옆의 큰 우물.
주모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이곳 주막에서 4년을 보내며 후학을 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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