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식인들은 어떻게 글을 썼을까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은 어떻게 다른가
뉴스일자: 2017-09-14

송나라 왕안석과 소동파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왕안석은 과감한 개혁을 시도한 재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례>를 비롯한 유교경전울 재해석해서 왕학(王學)’이라 불리는 학파를 창시한 인물로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또한 당송팔대가의 하나로 꼽힐 만큼 뛰어난 문장력을 갖고 있었다.

대신 소동파는 가장 적극적으로 왕안석의 제도를 반대했다. 과거에 시문(詩文)을 없애고 경전의 이해수준만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두 사람은 사회적 지위로 보나 나이로 보나 상충된 점이 많았는데도 왕안석은 소동파가 지은 표충관비의 글을 읽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사마천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문장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왕안석이 문장을 보는 식견이 밝았기 때문인데, 글에 대해 공평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공평하게 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태백은 중국 최고의 시인이었는데, 그가 최호와 같은 사람에게 머리를 숙인 것은 최호의 시가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유종원은 한유를 사마천에 비유하면서 전한 시대의 학자이자 문장가인 양웅의 글은 그릇과 재주가 좁고 작아 이치와 법도에 밝지 못했다. 자유분망하고 거칠 것 없는 한유의 글만 못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왜 나오는 것인가.

문장은 유달리 정밀하고 미세하며 변화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능숙해진 다음이라야 그 묘미를 잘 알 수 있다. 그러한 수준에 이르지 않고서는 문장의 묘미를 쉽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문장이란 이런 것이다 보니 문장을 잘 모르는 사람은 돌멩이를 가리켜 옥이라고 우긴다. 비단옷을 입고서도 촌스럽다고 해도 분간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장을 잘 아는 사람은 저울로 달고 자로 재는 것처럼 정확하기 때문에 그를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다. 장유는 조선의 문신으로 효종비 인선왕후의 아버지이고 우이정을 지냈다.

장유 <계곡만필>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은 정해진 바탕이 있다

정리=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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