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 다산도자기 대표 강기성 씨

보람 있는 삶의 가치를 찾아 노력하며 청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행복으로 아는 사람
뉴스일자: 2020-01-01

다산도자기 대표 강기성 씨

고려청자의 특징은 푸른 하늘을 나는 학 무늬와 변화무쌍한 구름무늬가 있다. 부드러운 허리 곡선으로 되어있으며, 규칙적인 잎 무늬로 안정된 하부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려청자의 특징은 비색(翡色)으로 표현된 색깔, 상감 기법처럼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기법 그리고 고려 사람들의 생각과 취향이 반영된 무늬와 형태에 있다고 설명된다.  

고려 청자는 중국의 청자 제조기법을 받아들여 제작되기 시작했다특히 송나라 청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전하지만 고려청자는 이러한 영향을 받는 가운데 독자적인 방향으로 발전한 도자기라고 할 수 있다당시 중국에서 만들어진 청자의 푸른색은 비밀스러운 색깔이란 뜻에서 비색(秘色)으로 불리웠다그러나 비취빛이 감도는 고려청자의 청녹색은 중국의 청자 색깔과 크게 달라, 별도로 비색(翡色)이란 독자적인 말로 표현됐다

당나라(618~907) 때는 인도·페르시아·이집트로 수출되었다. 이들 색채는 유약을 입히기 전에 바르는, 철분이 많이 함유된 묽은 점토액으로 인해 나타나는데, 구워지는 동안 점토 안의 철분이 유약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그러한 색채가 생겨나는 것이다. 청자는 비교적 뒤늦게 유럽에 소개되었는데, 그보다 훨씬 전부터 동양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이 자기가 그토록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그 아름다움 때문이고, 청자접시에 독이 든 음식을 담으면 깨지거나 색깔이 변한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중국인들에게는 이것이 옥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청자는 한대(BC 206~AD 220)에 처음 만들어진 월요자기(越窯磁器), 이것의 유약은 올리브색 또는 갈색을 띤 녹색이다.

오늘도 청자 속에 살면서 고려청자의 그 빛을 찾아가는 사람을 소개한다.

강기성 씨는 누구?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함께 가기를 원하며 설치지 않고 내 삶을 아침 햇살로 꿈꾸며 사는 사람

강기성 씨는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남에게서 나쁜 사람으로 오해 받기를 싫어하며 내 삶을 아침 햇살로 꿈꾸며 노력하는 사람이다. 보람 있는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알고 찾아 노력하며 자기만을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남과 함께 거기에다 더하여 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옳지 않는 길은 바라보지도 않는다. 남보다 먼저 설치거나 앞장서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정이 많아서 싫다는 말을 못하고 나중에는 피해를 고스란히 혼자서 떠안고 가는 사람이다.

강기성 씨는 오직 청자가 좋아서, 그냥 청자를 바라보고 사는 것이 좋아서 외길로 그 길을 살아왔다. 고려청자가 탄생한 그 자리에 태어나서 눈에 보이는 것이 청자였고 청자파편들이었다. 어렸을 때 비가 많이 오면 그 홍수가진 물위로 떠다니는 청자들을 보고 자랐다.

그때만 해도 그것이 그렇게 우리의 독창적 문화예술로서 역사적 의미와 세계유산인 것을 몰랐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항상 청자가 그립고 왠지 마음에 끌리는 일이었다. 크면 그것에 대한 그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은 막연한 생각들이 있었다. 그것은 청자도공의 혼이 그에게 암시적 영혼을 일깨웠던 것이리라 생각 된다. 도공의 후예로서 그에게 그 창조적 가치를 다시 일깨워 새롭게 재탄생 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도공의 핏줄로 태어났고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일에 그냥 끌리고 해야만 했던 운명이었다고 본다.

프랑스국립예술협회살롱전 루브르박물관 까루젤루브르 르노트르홀 전시초대

강기성 씨는 2019년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카루젤 루브르 르노트르 홀에서 개최되는 프랑스국립예술살롱전((Salon des Beaux Arts 2019)에 고려청자로 초청되었다.

2019 Salon SNBA 프랑스국립예술살롱전 전시회가 지난 2019. 12. 12. - 2019. 12. 15.까지 프랑스루브르박물관 까루젤 루브르 르노트르홀에서 프랑스국립예술협회(Société Nationale

Nationale des Beaux Arts. SNBA.)주최로 7개국 4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가운데 한국관 (Délégation de la République de Corée  한국대표부 세계평화예술인협회

APA 회장 김정순)에 한국도자기분야 강기성 씨의 고려청자 매병이 초청 전시되어 프랑스와 유럽인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국립예술살롱전은 매년 프랑스대통령의 후원으로 개최되는데 16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살롱전이다.

강기성 씨는 1986년 강진청자사업소 도예에 입문하여 오다 1990년에 강진 다산요를 설립 했다. 1990년 전남 공예품경진대회 다수 입선을 시작으로 2003년 제3회 강진청자공모전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 후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각종 공모전에 특선 및 초대전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40회를 넘는 경력을 갖게 된다. 그 하나로 2013년에는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 특선을 받기도 했다. 일본 훗카이도 전시회 등 많고 화려한 경력을 갖게 된다.

그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대한민국 신지식인증을 한국신지식인 협회로부터 제34

신지식인에 선정 되었다. <다산도자기 강기성 대표(인증번호 19-042)> 본인에게는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강기성 씨는 대구면 사당리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자라서 군대를 갔다 와서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며 30년 동안 청자에만 몰입하며 열정을 다해 살았다. 처음 도자기를 배울 때에는 많은 것을 스스로 찾아서 노력했다. 당시 이용희 실장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자문도 구하였다.

처음 다산도자기를 설립했을 때는 기술적인 면과 주변의 시선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생산적인 면에서 분업화를 시도했다. 효율성도 고려해서 새롭게 모든 제작을 진행 했다. 공동체로 협업화의 길로 가기위에서 사람들과 함께 전 직장에서 나와서 새롭게 칠량에다 문을 열었다. 세상살이가 그러하듯이 모든 것이 자기의 뜻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에게 새로운 시련이 다가왔다. 책을 좋아했으나 책을 사서 볼 수 없었고 힘든 삶이 계속 되었다. 칠량에서 다시 사당리 당전으로 왔으나 그전에 두었던 자재는 온데간데없고 투자했던 시설비가 많아 힘든 상황이 되었다. 빈손으로 다시 모든 것을 시작했다.

당시 1억이 넘는 큰돈이 투자되었다. 그만 빚으로 떠안고 만 것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서 했던 길이라서 도중에 그만 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오직 인내와 자긍심 하나로 그 길을 갔다. 그냥 버티어 왔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남의 빛을 13억까지 안고 살아야 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생각하지 말아야할 것까지 생각했던 시기를 겪는다. 생각을 고쳐먹고 그 죽을 용기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급식비를 주지 못해서 가슴 저린 아픔을 안고 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서 밤이 지날 때까지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가면서 빚을 갚아 나갔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또 벌어졌다. 얼마 남지 않는 원금에서 막무가내로 경매로 넘겨버린 채권자의 행포를 겪어야 했다. 집이 경매까지 나왔다. 그냥 경매로 넘기기에는 그동안의 흘리던 땀과 노력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가장 가까운 주변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는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않아서 인지 알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부족한 금액을 빌려서 원금을 상환하고 정리를 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간에 머물게 되었다.

꿈은 꾸는 자에게만 이룰 수가 있듯이 강기성 씨는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으로 키워나갔던 것이다. 평소에 덕을 많이 쌓고 남을 배려했던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만든 청자상품이 잘 팔리고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는 그 꿈을 새롭게 가꾸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강기성 씨는 강진청자협동조합장이 되어 운영함에 있어 조합원들이 서로 돕고 공존해 가는 길을 선택했다. 자기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보다는 조합원들의 이익 창출과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의 우선으로 삼았다. 조합원들을 위해 동분서주 노력하여 군에서 보조를 받아 냈다. 조합장으로서 투명한 운영으로 청자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청자를 빚는 조합원들이 신상품을 만들어 냈을 때 천만 원을 보조 받도록 했다. 그 다음이 조합원들이 대도시에서 개인 전시를 하면 천만 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종합전시장에서 쓰는 포장재에 천만 원을 보조를 받았다. 조합원들도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해야 새로운 경쟁력이 생겨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추진하고 노력했던 그였다. 사무실 근무자에게 처음에는 사비를 들여서 급여를 주었다. 근무하는 사람에게 인건비를 개인이 개인 돈으로 지출한 것이다. 그는 원활한 조합의 운영을 위해 그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조합의 전시판매장을 보수공사를 위해서 1억을 보조를 받아 성과를 거양하는 일들을 해냈다. 조합이 성장하려면 시기나 질투가 아니고 오직 공동체로서 협력하고 새로운 개발 작품들을 많이 생산해서 보다 더 발전되는 청자가 되도록 노력을 기우렸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관에서 인적자원을 양성하는 기획과 꾸준한 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건의도 했다. 그렇게 해야만 후계양성과 꾸준한 발전이 이루지기 때문이다.

강기성 씨는 아내가 힘들었던 시기에도 곁에서 용기를 보내주고 함께 도자기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여 지금까지 올 수 있게 해주어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아내는 장밋빛 순간과는 달라 오래오래 곁에 두어도 싫지가 않다. 가슴으로 품어도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다. 어지러워도 당신의 눈부심에 의지하면 나의 영혼조차 안식으로 변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강기성 씨는 아내를 말 없는 미소로 바라보고만 있다. 오늘도 함박꽃으로 가는 길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넉넉하고 후덕한 그 모습을 그가 만든 청자 속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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