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 윤재준(주)선도소프트 사장 회고록 11

l 4.19 민주화 저항

내가 대학에 입학 할 때는 이승만 정권이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나이 때문인지 아첨하는 무리에 둘러 쌓여 세상과 국정에 어두운 듯 싶었다. 3.15 부정 선거가 자행되고 이것을 규탄하는 저항이 거세지면서 부마사태가 일어났다. 이것이 서울로 옮겨 오면서 4.19 가 터졌다. 일반인들의 데모가 대학생으로 번지고 고등학생들까지 들고 일어났다. 이승만 정권의 퇴진 운동이였다. 데모대가 경무대(지금 청와대)로 진격하고 경찰들은 목숨을 걸고 이것을 막아야 했다.

급기야는 발포가 벌어졌다. 동료가 쓸어지고 피를 본 데모대는 흥분하기 시작하면서 이성을 잃었다. 이제는 적과 적의 대결이였다. 데모대는 우선 각 경찰서에 처들어 갔다. 오후까지는 서울에 있는 경찰서 반수 이상이 데모대에 의해 점령 되었고, 이제는 데모대도 무기를 소지하게 되었다. 4월19일이 되기 전부터 많은 대학과 고등학교가 데모에 참가 하느라 학교 일정이 마비 되었다. 서울대학교 각 대학들도 데모에 참가 했다. 서울공대는 4월19일 수업을 끝내고 대 강당에 모였다. 모든 대학이 데모에 참가하는데 아직 참가를 못했으니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내일 4월20일 공대 캠퍼스에 모여 데모에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헤어졌다. 그 당시 서울공대 캠퍼스는 지금의 서울산업대학이 차지하고 있는 공능동에 있었다. 돈암동 하숙집까지 오려면 중랑교까지 30~40 분 버스로 와서 다시 선설동까지 30~40 분 그리고 돈암동까지 20~30 분을 와야 했다.

중랑교에서 신설동으로 오자니 서울시내는 무법천지가 되었고 교통이 자주 차단 되었다. 트럭이 크락션을 두들기며 지나는데 트럭위에는 데모대가 구호를 외치며 야단이였다. 머리에는 피가 묻은 수건을 두르고 피가 묻은 와이셔츠를 휘둘러 대며 전속도로 지나가곤 했다. 시발택시에도 마찬 가지였다. 택시 속에 6~7 명 택시 지붕에도 5~6 명이 올라타서 사람덩어리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몇 시간만에 겨우 하숙집으로 돌아와서 내일 데모에 참가 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하숙집은 성북 경찰서에서 대각선으로 건너편에 있었다. 밤10시쯤 되었을까 밖에서 총소리와 자동차소리 다시 총소리가 요란했다. 성북 경찰서는 데모대가 장악하지 못한 경찰서 중 하나였다. 버스에 가득 올라탄 데모대는 경찰서를 함락시키기 위해 차를 몰고 경찰서로 돌진하면서 총을 쏘아댔다. 경찰서 담 뒤에 배치된 경찰들도 일제히 대응 사격을 했다. 밀고 당기고를 한참 하는 동안에 사상자가 발생했는지 사람 죽는다는 소리를 지르고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하숙집 건너편 4~5 층 짜리 건물에 새로 병원이 들어설 계획이였다. 데모대가 부상자를 끌고 와서 문을 열지 않는다고 병원을 박살 내 버렸다.

나는 궁금해서 하숙집에서 나와 담벼락에 찰삭 붙어서 상황을 살폈다. 그렇지만 어두워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침 일찍 데모를 하려고 하숙집을 나섰다. 아뿔싸 서울시내에 군인을 투입해서 질서를 잡아가고 있었다. 버스고 사람이고 일체 통행이 금지 되었다. 데모는 커녕 밖에 나갈 수가 없고 하숙집에만 틀어 박혀 있어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서울공대생은 4.19 데모에 참가하지 못한 학생이 되어 버렸다.

l 들뜬 4.19 세대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국민담화를 발표하고 하와이로 하야길에 올랐다. 이 대통령 밑에서 거의 정권을 휘둘러대던 이기붕 의장은 온 가족이 고등학생 이였던 둘째 아들 이강철에 의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정권을 넘어뜨린 4.19 세대는 세상에 무서울게 없는 듯 제멋대로 였다. 가장 민주적이였던 장면 정권은 이렇듯 혼란스러웠다. 모두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학교 수업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억눌러 공부만 했던 학생들이 대학교에 오니 공부 하라고 채근 대는 사람도 없고 자유 스러웠다. 대개의 교수들은 강의 준비도 되지 않았고 강의 방법도 몰랐다. 퇴색된 강의 노트를 3년이고 5년이고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외국서적을 딱딱하게 직역한 교제 읽기에도 힘들었다. 자연 강의 듣기가 싫으면 어느 한 놈이 수업하지 말고 야외로 나가자고 하면 군중심리에 모두 책가방을 싸들고 집에 가 버렸다. 한번은 국어시간 김정숙 여자교수 시간이였다. 어느 학생이 뱀을 잡아 강의실 문에 걸어 두었는데 교수님이 문을 여니 뱀이 떨어지자 기겁을 하고 울면서 교무실로 가 버리고 수업도 없어졌다.

미국 옆집에서 같이 살았던 김철규는 전자공학과 전공으로 나하고 같은 반이였다. 내 사촌 박동실도 같은 반이였다. 모두들 수업시간을 빼먹고 다음날 등교하면 김철규 혼자 수업을 받은 사실을 알곤 했다. 시골에서 부모가 고생하면서 학비를 조달하시는데 수업을 빼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였다. 물리학 교수님은 수업을 빼 먹은 학생 모두를 D 학점을 주셨다. 내 평생 D 학점은 처음 이였고 공부 잘하는 박동실 형도 D 학점을 받았다. 이렇게 성실한 김철규는 결국 미국 Stanford University 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아직도 미국회사에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