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진만 햇발 >
곡성 문화답사기
조선대부속중 교사·문학평론가
오 화 숙
서울에서 호남고속도로와 국도를 따라 5시간 달리면 전라북도 남원과 이어진 곡성에 다다른다. 곡성은 그 이름만큼 전체의 74％가 산지일 정도로 산과 골이 많다.
오곡이니 죽곡, 석곡 하는 고을 이름만 봐도 그러한 산세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곡성군의 군명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골짜기가 많아 곡성(谷城),
삼기면에서 곡성읍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곧 괴티재에서 산적이 이 재를 넘어가는 사람들을 해쳤기 때문에 곡성이 끊일 날 없었다 하여 곡성(哭聲) 등등.
그러나 곡성 주민들은 곡성 객사 현판이 곡성관(谷城館)이라 쓰여 있는 것과 연관시켜 곡성의 옛 이름은 곡성(穀城)이었다고 믿는다. 곡성(穀城)이 곡성(谷城)으로 변한 것은 이름만 보고 세금을 책정, 곡성은 곡식이 풍부한 고을이라 하여 세금을 더 많이 내게 했다는 것이다. 이에 한 목민관이 벼곡(穀)자와 음이 같은 계곡곡(谷)자를 차용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고을민들이 곡성수(穀城樹)라 부르는 고목이 군청 앞마당에 자라고 있다.
여느 고을과 달리 곡성의 강은 순자강과 보성강 둘 뿐인데, 짧고 폭도 좁다.
하지만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곳곳마다 절경이다. 특히 두 강이 만나는 오곡면 압록은 중국 호북성 양자강 좌안에 있는 명승지 적벽에 비유될 만큼 빼어나다. 압록에서 죽곡면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왼쪽으로 이어지는 강줄기는 맑은 물과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드라이브 코스로 그만이다. 곳곳의 의미도 재미있어 옛날 북을 싣고 가던 나룻배가 물에 빠진 곳을 ‘북소’라 하는데 곳곳이 강원도 산골을 연상케 한다.
죽곡면에 자리잡은 태안사는 동리산파의 본산지로 고려시대에는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대찰이었다. 요즘 대부분의 사찰 입구 도로가 포장됨으로써 산사의 정취가 사라져 애석한 점이 많으나 이곳은 비포장도로를 따라 좌우측으로 계곡이 번갈아 가며 있다. 이곳을 지나면 도시생활로 찌든 마음의 때가 씻어 내리는 듯하다.
굽이치는 계곡, 나무다리와 누각이 청정한 마음과 예스러움을 느끼게 하고, 나무다리 위 능파각은 교량과 누각 그리고 금강문의 기능을 겸비하여, 이 다리를 건너면서 세속의 번뇌를 던져버리고 불가에 든다는 의미가 있다.
통일신라시대인 742년 동리산파를 일으킨 혜철이 세운 것으로 알려진 태안사는 6·25전쟁 때 대웅전을 비롯하여 부속건물 15채가 불타버렸다.
보물 제273호로 지정된 혜철의 부도(적인선사조륜청정탑)와 광자선사를 기리는 탑과 비가 이끼만 낀 채 남아 있을 뿐이다.
태안사와 더불어 곡성 불교를 말해주는 사찰은 도림사다. 동악산 기슭에 자리잡은 도림사는 원효가 창건하고 도선국사가 중창하였으며 고려시대 때 지환대사가 3창하였다. 곡성읍에서 서남쪽으로 4㎞ 되는 곳에 위치한 동악산(631m)은 신라의 명승 원효가 이 산에 길상암과 도림사를 창건할 때 산이 성서롭게 움직이며 노래가 울려 퍼졌기에 동악산(東樂山)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도림사는 작고 초라하지만 1683년 제작된 괘불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계곡이 유명하다. 흔히 ‘도림사 골짝’으로 불리는 이 계곡은 널찍하고 평평한 반석 위를 맑은 물줄기가 마치 비단을 펼쳐놓은 듯 퍼져 흘러 일찍부터 ‘수석의 경관이 삼남에서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맑고 풍부한 물줄기가 연중 쉼 없이 타고 흐르면서 그 바닥을 방바닥처럼 반질반질하게 다듬어 놓았으리라.
오곡면 압록리는 섬진강 물줄기 중에서도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이곳 압록유원지는 은빛 실모래가 넓게 펼쳐진 모래밭과 맑고 깨끗한 물이 어우러져 은어, 쏘가리, 황어, 잉어 같은 민물고기가 많이 잡혀 여름철이면 낚시꾼을 비롯하여 유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은빛 모래밭에서는 모래찜질을 할 수 있고 강물에 몸을 담그기도 하며 은어회나 쏘가리매운탕을 먹을 수 있어 한더위를 잊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의 은어회는 호남의 명물로 꼽히는데 여름철이면 광주시와 전라북도에서 그 맛을 즐기려는 이가 줄을 잇는다. 갓 잡아 올린 은어를 비스듬히 썰어 여릿여릿한 들깻잎에 싸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은어회쌈은 그 맛이 담백하면서도 고소할 뿐더러 살이 연해서 입에서 녹을 정도. 쌀과 섞어 은어죽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소금을 뿌려 숯불에 구워 먹기도 하며, 말렸다가 구워 먹기도 하는데 어떻게 먹든 그 맛이 담백하고 은은하다. 압록리 사람들은 강가에 평상을 내다놓고 소금구이한 은어를 소주에 곁들여 먹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
전남과학대학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만취정이라는 노인정에는 전남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어 있는 목각신상이 안치되어 있다. 본래는 옥과 성황당에서 보관하고 있었으나 여러 차례 옮겨다니던 중 현재의 만취정에 모시게 됐다. 500여년 전 제작된 남상은 입상이고, 여상은 좌상이다.
마치 사찰 같은 외양을 하고 있는 인근 옥과미술관에는 아산 조방원 화백이 기증한 그림 6300여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앞으로 지역 문화예술 전시관으로서 큰 역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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