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김 씨 성을 가진 포목장사꾼이 있었다. 그는 포목을 장흥, 강진, 병영 등에서 구입하여 만주로 가져가 팔았다. 이따금씩 도적떼들에게 물건을 뺏겨 손해를 보거나 저승길로 갈 뻔 하기도 했지만 그 만큼 수입이 짭짤하여 목숨을 걸만 했다. 어느 날, 장흥에서 물건을 사고 나서 목이 출출하여 포목 짐을 벗어 그 위에 전대를 놓고 쉬고 있었던 때였다, 김 씨는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대접에 따라 마셨다. 그때 도포를 입은 나그네가 잠깐 옆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는데, 그냥 저 갈 길을 가는 것 같아 신경 쓰지 않고 마저 술을 다 마셨다. 그리고 다시 짐을 챙기고 출발하려는데 포목짐 위에 있어야할 전대가 없었다. 김 씨는 사람 의심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아무리 짐작해도 범인은 도포를 입은 나그네 밖에 없었다. 그 커다란 도포 자락에 전대를 집어놓고 시치미를 뚝 떼고 지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김 씨는 나그네의 뒤를 쫒았다. 그리고 얼마 안가 자신의 돈을 훔친 것이 분명한 범인을 찾을 수 있었다. 김씨는 다른 사람들처럼 화부터 내지 않고, 침착하게 “여보시오 손님 말 좀 물읍시다.”하고 운을 떼었다. 그동안 온갖 도적떼나 화적 떼 같은 인간 군상들에게 시달려본 장사꾼으로서 쌓아온 경험에서 우러나온 행동이기도 했다.
나그네는 그런 김 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 전대 말이오.”라고 말하고는 김씨 앞에 전대를 내던졌다. 김 씨는 도둑과의 대화치고는 너무 순조롭게 끝났다며 안도했다. 그러니 이제 전대를 들고 돌아가면 될 일인데 돌연 무슨 용기가 쏟아났는지 나그네에게 나그네를 멈춰 세우고는 “성함 좀 물읍시다.”라고 물었다. 나그네는 김 씨를 의미 모를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당신이 만주로 포목 장사 다니는 김 아무게지요.” 도로 되물었다. 김 씨는 나그네가 자신을 처음부터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으나, 나그네는 그런 김 씨가 무슨 반응을 하던지 관심 없다는 듯 “다음부터 만주로 물건을 붙일 때 짐에다 당신 이름을 크게 써서 부치시오.”라고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동안 김씨는 나그네가 사라진 자리를 보고서 멍하니 서있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던져 준 전대를 주워 되돌아왔다. 그때부터 김씨는 무언가에 홀린 듯 나그네가 시킨 대로 부치는 짐에다가 자기 이름을 크게 써서 붙였다. 그 뒤로 기묘하게도 다른 장사꾼들은 물건이 모두 없어지거나 손해가 생기는 일이 발생했는데도 김씨의 물건은 항상 없어지지 않았고 장사도 순조롭게 이뤄졌다. 도대체 누구였을까? 애초에 사람이기는 했을까? 김 씨는 부자가 된 이후에도 나그네에 대해서 생각해봤지만 그 정체는 영영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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