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춘호 - 엄마 같은 언니

한국전쟁 때 먹을 것을 구하려고 큰 언니, 둘째 언니, 엄마가 구파발로 길을 나섰다.

금반지 한 개를 젖가슴에 차고 갔다. 그러나 그날 불행하게도 엄마와 둘째언니가 미군 폭격기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엄마는 큰 딸에게 어린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 날 이후 나의 큰 언니는 우리 집의 엄마가 되었다. 스스로도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덤으로 사는 운명이라 여기고 아버지와 동생 다섯 명의 엄마가 된 것이다. 내가 다섯 살 때에 부산 피난 중 맹장수술을 했는데 그 당시 나는 “언니, 언니, 나 좀 살려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의사선생님이 이 아이는 엄마가 없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에도 집에 와서 언니가 있으면 나는 친구와 밖으로 놀러만 나갔다. 언니는 직업이 의사였기에 매일 바빴고 나는 언니의 거머리였다. 결사적으로 언니 치마를 붙들고 다녔었다. 언니가 가는 친구 집은 물론 시장이나 극장, 병원까지도 치마끈을 안 놓고 따라다녔다. 우리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에게 언니를 엄마냐고 물었다. 처녀인 언니는 그때마다 엄마가 아니고, 언니라고 설명을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혼자 마음이 상하곤 했다.

나는 졸지에 엄마 없는 고아가 된 기분이었다. 남한테 불쌍해 보이는 것도 싫었다. 어린마음에 언니를 약간 원망했지만 사실이 언니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월이 흘러 언니는 60세 가까이 되었고, 나는 40살이 넘는 중년이 되었을 때, 나는 언니의 딸을 자청했다.

그동안 내 인생의 큰 빚을 진 언니를 즐겁게 살도록 도와주어야 했다. 우선 집부터 나의 집 옆으로 이사를 하게 하고 매일 하루에 한번 얼굴을 보았다. 결혼할 때에는 남편에게 나의 언니는 내 엄마니까 시어머니랑 똑같이 대우하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약속했다. 그 덕에 나는 23년간 시어머니와도 함께 잘 살았다. 언니와 함께 한 인생의 여정은 여행을 함께 다니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산책과 운동을 하면서 20년 정도 친구로 살았다. 나는 그래도 키워준 빚은 약간 갚은 것 같아 지금도 흐뭇한 마음이 든다. 언니는 70살에 돌아가셨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더 적은 나이에 언니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의사로 평생 일했던 언니는 우리 형제들에게 상당한 액수의 유산도 남겼다. 그 덕에 나의 노후까지도 여유가 생겼다.

단지 소원이 있다면 내가 죽으면 언니와 함께 묻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야 내 아들딸들이 나를 찾아오면 언니 성묘도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것도 욕심일까?

언니의 그 헌신적인 마음이 나에게 전달되었을까. 나는 하느님 말씀대로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면서 살고자 노력하게 됐다. 인과응보의 인생철학이 몸에 습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