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73회)
강진읍 남포마을
김을례할머니(85)
“저녁 먹을 것이 없다가도 갈치 한 아쿠만 팔면 보리쌀 2되는 금방이제”
일제시대에 간척지를 막은 남포는 아직도 염기가 많은 땅이다. 그래서일까 남포에는 아직도 젓갈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 반농반어의 마을로 남포사람들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해왔고, 남포항의 발달로 상업도 동시에 발달한 마을이다. 간척지를 막기 이전에는 바닷물이 회관 앞까지 찰랑거렸으며, 제주도나 추자도, 여수, 부산, 통영 등에서 오는 50t급의 각종 배들이 수십 척씩 정박해 있던 포구였다.
김할머니는 도암에서 22살에 남포로 시집왔다.
“아이구 나이 묵은 사람이 더 못해.”
젊은 나이에 떠난 남편나이가 몇 살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더니 한 열 살 차이가 난 것 같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 표정 또한 별로 못마땅한 표정이다. 논 12마지기 정도가 있었으나 그마저 남편이 팔아 맘대로 처분해버렸으니 먹고사는 일이 막막했다.
“내가 벌어서 묵고 살었재. 하루하루 내가 번대로 먹고 살재. 어쩌겄어.”
다행히 남포항에는 고깃배들이 들어와서 쉽게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매일 같이 수도 없이 들어오는 고깃배에는 생선이 가득 실려 있었고, 언제든지 외상으로 내다 팔아 현금으로 만들 수 있었다. 남포로 들어온 고기들은 순천, 보성, 광주 등 남부지역으로 유통되었으므로 남포항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들끓었다. 남포가 어류 유통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젓갈생산지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6.25전쟁이후 가난과 배고픔에 얼룩진 사람들이 하나 둘 남포로 모여 들었다. 그 이유의 한 가지가 쉽게 생선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배에서 받은 갈치 궤짝을 머리에 이고 강진장에 나가면 그래도 배는 채울 후 있었다. 현금이 아니더라도 보리쌀과 쉽게 맞바꾸어 끼니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쌍허고 짠한것도 없어, 옛날인게 살었어 지금세상 같으먼 안 살어.”
김할머니는 대뜸 남편에 대한 미운마음을 쏟아낸다. 그도 그럴것이 집안 식구 먹고 살 것은 생각안하고 생기면 생긴 대로 술로 먹어버리던 남편이니 오죽이나 미웠을까.
“바란적도 없어, 돈 생기면 술로 쓰고 내가 술 값 안줘도 날마다 술친디.”
선착장은 말구루마로 넘쳐나기도 했다. 고깃배가 들어오면 말구루마가 고깃배 앞으로 줄을 섰고, 발 디딜틈 없이 사람들이 밀어닥쳤다. 말구루마 상인들은 생선들을 칠량이나 병영, 성전, 도암장 등으로 내갔다. 그 외에도 김할머니처럼 머리에 생선을 한아쿠씩 인 아낙들은 강진읍 장으로 향한다. 문조리 같은 물고기는 팔다 남으면 배를 따고 말려서 다시 판다. 전어는 창 젖을 딴 다음 팔고 창은 다시 젓갈을 담아서 팔기 때문에 큰 소득이다.
“껍닥을 팔면 본전은 했으니까 창은 다 내것이지.”
봄에는 멸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넘쳐난다. 멸치젓갈을 담아두기 위해서다. 그래서 가난하지만 굶지는 않는 곳이 남포였다.
“저녁 먹을 것이 없다가도 금방 저녁 먹을 것이 생겨나, 갈치 한아쿠만 팔면 보리쌀 2되, 3되 떨어진디.”
남포에서 장에까지 한 아쿠씩 이고 갈 때면 머리통이 깨지게 아프지만 이일마저 못하면 6남매가 당장 굶을 생각을 하면 이를 악물고 쉬지 않고 걸어간다. 그러다가도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배꼽을 잡고 웃다보면 시름도 금방 가신다. 팔리지 않는 날은 한 아쿠를 다시 이고 오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보리쌀이나 수수쌀 콩 등이 생기기 때문에 장사에는 그런대로 재미를 느꼈다. 때로는 재수가 좋아 부잣집에서 한아쿠를 내려놓고 보리쌀을 한 말씩 주기도 한다. 그러나 한꺼번에 지고 올 수 없어서 여러 날을 져다 나른다. 잘 아는 집에 맡겨놓고 조금씩 나르지만 그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것이다.
“옛날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특별히 차이가 나불어. 고거 갖고 올라면 고녁이어도 웃음나지.”
김할머니의 웃음에서 지나온 고뇌가 짙게 묻어났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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