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납세자 카드 버리고 싶다는 기업인들
박 수 호
매일경제신문 기자
“모범납세기업으로 선정한 지 얼마 됐다고 세무조사를 하는 건가요?”
늦은 저녁 자리에서 불쾌해진 얼굴의 A기업 대표가 기자에게 털어놓은 불만이다.
사정은 이랬다. 국세청은 매년 납세자의 날(3월 3일)에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사회공헌까지 열심히 하는 기업들 중 모범납세기업을 선정한다.
훈장 등 정부포상·국세청장 표창 이상자는 포상일로부터 3년간, 지방국세청장ㆍ세무서장 표창 수상자는 2년간 세무조사를 유예해준다. A기업 역시 여기에 포함됐다.
하지만 올 초 이 회사는 세무조사를 받았다. 어떤 사정일까.
국세청 관계자는 “모범납세기업이라 할지라도 조세 탈루 혐의가 구체적으로 포착되면 예외적으로 세무조사를 할 수도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A기업의 세무조사 결과는 어땠을까. ‘혐의 없음’이었다.
“세무조사 한 번 나오면 사실 중소기업 입장에서 업무의 상당 부분이 그쪽으로 쏠리게 돼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하기 힘듭니다. 이럴 거면 애초 상은 뭐하러 준 겁니까?”(A기업 대표)
다른 모범납세기업 사례도 있다. 지방국세청 직원이 하루는 예고도 없이 조사를 나왔다기에 “모범납세기업 선정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고 항의하자 “윗선에서 무작위로 돌리다 보니 착오가 있었나 보다”며 되돌아갔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자 돈 많은 회사 눌러 서민 표 얻으려는 행보 아니냐”는 소문이 괜히 도는 게 아닌 듯싶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 모범납세자들은 VIP 대접을 해주겠다고 공언했다.
모범납세자 카드를 발급하고 공항 출입국 전용심사대, 승무원 전용 보안검색대를 이용해 출입국할 수 있는 혜택도 제공했다. 올해도 국세청 차원에서 ‘올해의 모범납세자상(가칭)’을 신설하는 등 성실 납세자들을 제대로 대접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인들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앞서 소개한 두 회사 대표 역시 모범납세자 카드를 갖고 있지만 ‘버리고 싶다’란 게 솔직한 심정이란다.
최근 국세청은 전방위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 문제 있는 기업에 대해서라면 당연히 조사를 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다만 국세청이 상을 만들어 줘놓고 해당 기업 가슴에 대못 박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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